황성초 3학년 6반 4번 일기장
1999년 8월 12일 목요일 날씨 흐림
<이동국>
이동국 형은 신세대 축구스타다. 그 형은 골 감각과 헤딩력이 뛰어나고 쉬지 않고 열심히 한다. 나이도 어린데 잘하다니... 나도 열심히 해서 축구 스타의 별 중의 별이 되겠다. 21세기의 축구는 내가 빛낸다. 또 동국이 형처럼 훈련을 잘하고 팀의 에이스처럼 나는 우리 반의 에이스로 이름을 떨치겠다. 동국이 형은 몸싸움에 약해 보강하고 있다. 나도 부족한 곳이 있으면 탄탄하게 보강시켜 동국이 형보다 인기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출처: 나무위키
아홉 살이던 내게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기억나는 유일한 장면은 이동국 선수의 슈팅이다. 당시 그는 만 19살에 데뷔한 앳된 최연소 국가대표였다. 후반전 교체 출전해 그라운드를 밟은 그는 강호 네덜란드를 상대로 강력한 중거리 슈팅을 날렸다. 5대 0 패배. 월드컵 1승조차 없던 대한민국 선수들은 한없이 위축돼 경기를 펼치고 있었다. 그 가운데 그의 슈팅은 비록 골은 아니었지만 자신감 가득했다. 빼어난 실력에다가 훤칠한 키, 구릿빛 탄탄한 허벅지, 미소년 같은 그의 얼굴을 보며 나도 이동국 같은 선수가 되겠노라고 다짐했다.
4년 뒤인 2002년 한일 월드컵. 슈퍼스타였던 이동국 선수는 히딩크 감독의 눈밖에 나며 국가대표에서 최종 탈락한다. 대한민국이 붉은 물결로 가득 차 23인의 선수를 향해 열광할 때 이동국 선수는 모든 관심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때 나는 잊힌 슈퍼스타 이동국 선수를 떠올렸다. 기분이 어땠을까. 어디에서 대한민국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을까. 아니 텔레비전을 켜고 한국팀 경기를 볼 수 있을까. 아마 이불을 뒤집어쓰고 펑펑 울고 있지는 않을까. 대한민국의 4강 진출이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이동국 선수에 대한 생각에 마냥 기쁠 수만은 없었다. 그래도 이동국이라면 이를 갈고 다음 월드컵을 준비할 거야. 꼭. 그런 잡념들이 머릿속을 지나다녔다.
2006년 독일 월드컵. 절치부심한 그는 월드컵을 앞두고 훨훨 날아다녔다. 독일을 상대로 한 평가전에서 멋진 발리슛으로 골을 넣으며 3대 1 승리를 안겼다. 역시 이동국이다! 그러고 말고. 절대 쉽게 포기할 선수가 아니거든. 그의 팬으로서 무척 자랑스러웠다. 그런데... 월드컵에서도 멋진 발리슛을 선보일 줄 알았던 그는 또 한 번 고개를 떨궈야 했다. 무릎 부상. 예상치 못한 부상이었다. 독일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은 52년 만에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원정 첫 승을 달성한다.
하지만 나는 월드컵 내내 이동국 선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02년 대표팀에서 탈락한 뒤 4년 뒤 그날만을 기다려왔을 텐데. 부상으로 또다시 월드컵에 나갈 수 없던 그의 심정을 감히 상상할 수가 있을까. 그의 축구 인생이 모두 흩날려 사라져 버리는 기분이 아니었을까. 2006년 그의 축구 인생은 이제 이렇게 끝나는구나 슬픈 확신을 했다. 아무리 멘털이 좋은 선수라도 버티기 어려운 좌절감일 테니.
2020년. 그의 나의 42살. 나의 예상대로 그의 축구 인생은 진즉에 끝이 났을까? 알다시피 그는 여전히 대한민국 최고의 공격수이자 최고령 현역 선수로 경기장을 누비고 있다. 축구 선수의 수명을 인간으로 따져본다면 그는 80살에 풀코스를 완주하는 그런 사람이 이동국이라고 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나와 이동국 선수를 포함해 지금까지 현역 선수로 뛸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을 것이다.
만약 이동국 선수가 2002년 히딩크 호에 발탁돼 월드컵을 뛰었다면 그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것은 알 수 없는 일이다. 분명한 것은 그가 인터뷰에서 말했듯 2002년과 2006년 두 번의 월드컵에서 겪은 좌절이 최악의 상황에서도 긍정할 줄 아는 법을 알려줬다는 것이다. 짧고 굵게 눈에 띄는 선수가 되기 못했지만 가늘더라도 아주아주 길게 축구 선수로 사랑받는 법을 체득한 자양분이 됐다. 1999년 나의 일기장을 보면 "동국이 형은 몸싸움에 약해 보강하고 있다"라고 쓰여 있는 것처럼 말이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닌,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모범 사례가 바로 이동국 선수 아닐까.
이동국 선수에게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지금 나는 그가 두 번의 월드컵을 나가지 못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를 경기장에서 볼 수 있는 것은 그때의 좌절 덕분이 아니었을까, 감사한 마음이 든 것이다. 축구선수로서든 대박이 아빠로서든 말이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는 나에게 많은 깨달음을 준다. 동국이 형은 여전히 나의 신세대 슈퍼스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