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초 2학년 5반 4번 일기장
1998년 1월 6일 수요일 날씨 맑음
제목: 달리기
나는 누나와 내 친구하고 달리기를 하였다. 첫 판은 내가 이겼다. 나는 16초, 내 친구는 19초, 누나는 21초로 내가 이겼다. 두 번째는 씽씽이 타면서이다. 또 내가 이겼다. 다음에는 내 친구와 누나에게 양보하여서 내가 져주겠다.
첫 번째 달리기 대결! 내가 1등이다. 두 번째는 씽씽이 킥보드 대결! 또 내가 1등이다. 만약 다음번 대결에서도 내가 1등을 했다면? 아마 친구, 누나와 나 사이에 벌어진 달리기 격차보다 더 큰 '마음의 거리'가 생겨버리지 않았을까. 다음 판에는 슬쩍 티 나지 않게 한판 져주겠다는 '용기'가 있었기에 우리들의 진한 우정도 쭉 이어졌던 게 아니었나 싶다. 어릴 적 나는 분명 용기 있는 꼬마였다. 그것은 질 줄 아는 용기였다.
어른이 되자 진다는 건 더 이상 용기 있는 행동이 아니었다. 패배를 용기라고 부르는 것은 패자의 비겁한 변명으로 치부됐다. 살아가며 겪는 모든 것들은 치열한 프로 스포츠 경기 같았다. 매일마다 승자와 패자가 나뉘는 이 경기장의 선발 선수로 나는 뛰고 있었고, 그 경기에서는 반드시 승리를 거머쥐어야만 했다. 위닝 멘탈리티를 품은 상태로 상대, 어쩌면 동료까지 눌러가며 이겨내야 한다는 삶의 방식을 체득해야 했다.
내가 체득한 승리는 마약과도 같았다. 남을 이겨먹고 올라서는 것은 해롭지만 짜릿한 기분을 안겨줬다. 수능 시험을 앞둔 수험생에게 옆자리의 친구도 모두 경쟁자였다. 학교 자습시간 MP3에서 '하나씩 머리를 밟고 올라서도록 해. 좀 더 잘난 네가 될 수가 있어'라고 부르짖는 서태지 <교실이데아>를 들으며 서글픈 가사를 현실로 받아들여야만 했다. 나는 그 결과 서울의 한 대학에 진학했다. 이곳에서는 나도 모르는 새 승리의 맛에 더욱 강하게 중독돼 갔다. 서로가 서로의 노트를 보여주려 하지 않는 캠퍼스를 거닐었으며, 옆에 앉은 지원자가 답변을 망설이길 속으로 바라며 면접장 자리를 지켰다. 그렇게 또 서울의 한 직장에 들어갔다.
마약은 짜릿하나 돌고 돌아 결국 파국으로 이어지듯 승리의 뒷맛도 그랬다. 평생토록 나의 곁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던 것들과 점점 멀어져 갔다. 마음을 나누던 친구들은 언제부터인지 말없이 떠났다. 서로 나눈 것이 없으니 전화 한 통에 작은 부탁을 하기에도 어색해진 사이가 됐다. 연인과의 티끌 같은 사소한 말다툼에서는 반드시 이겨야 적성이 풀렸다. 결국 사랑도 시들어버렸다. 무엇보다 나의 따스했던 마음을 잃었다. 배려, 양보, 협동, 사랑, 우정, 믿음, 신뢰 이 모든 가치들이 증발돼 버리자 정말이지 내 마음은 텅 비어버렸다.
첫판을 이기고도 두 번째 판을 이겼고, 세 번째 판에서도 꼭 이겨야만 한다. 네 번째, 다섯 번째 판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이 이기며 살아갈까. 나는 따스했던 나의 것들로부터 얼마나 멀어져야만 하는 걸까. 최종적인 승리의 끝에는 과연 무엇이 남아 있을까. 다시 되돌아가기에는 이미 너무 변해버린 건 아닐까. 때로는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성찰을 깨닫기에 나는 여전히 미성숙한 서른인가 보다. 승부의 세계에서 한 발짝 물러나 옆을 바라볼 줄 알던 그때의 용기가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