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는 내가 기자가 되는 걸 싫어하셨다.

by 조르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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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초등학교 3학년 6반 4번
1999년 8월 9일 월요일 날씨 맑음

제목: 꽁꼬지

나는 할아버지를 위해 콩꼬지를 만들었다.
이쑤시개에 콩을 끼웠다. 잘 잡수셨다.
할아버지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할아버지를 위하여 나의 힘을 마음껏 쓰고 싶다.
할아버지 다음에는 더 맛있고 특별한 것 있으면
제 손으로 만들어 할아버지를 깜짝 놀라게 해드릴 것이다.


할아버지는 내가 기자가 되는 걸 싫어하셨다. 고등학생이던 내가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하길 원하셨다. 별을 단 장군이 되길 바라셨다. 꿈이 명확하지 않았기에 할아버지의 뜻에 따라 육사 1차 시험을 쳤고 통과를 했다. 체력시험과 최종면접을 거쳤다. 결과는 최종합격. 할아버지와 부모님은 집안의 경사라며 기뻐하셨다. 큰 꿈이 없었던 만큼 장군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가입교를 해야 하는 1월이 됐다. 3월 정식 입교 전 훈련을 받기 위해 미리 입학을 해야 한다. 서울 태릉에 있는 육사에 들어가야할 시간이 된 것이다.


가입교 8시간 전이 되자 나는 고민스러웠다. 짧은 머리만을 6년 동안 하며 남중남고를 나왔는데, 군대까지 가서 더 짧은 머리로 평생 군대 안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른 대학에는 다 불합격을 했으니까. 가입교 5시간을 앞두고 "재수를 하겠다"라고 부모님께 폭탄 선언을 했다. 연애도 하고 술도 실컷 마시는 캠퍼스 생활을 하고 싶었다.


폭탄선언 뒤 할아버지 댁을 찾아갔다. 살갑게 맞아주시던 할아버지께서 무척이나 섭섭해하셨다. 최종합격을 했으니 당연히 갈 거라고 기뻐하셨던 만큼 실망감이 더욱 크셨다. 군사 정부 시절 힘있던 육사 출신 장군에 대한 노스텔지어를 간직하고 계셨다. 이후 눈치가 보여 할아버지 댁을 한동안 찾아뵙지 못했다. 존경해오던 할아버지가 나를 이해해주지 못한다는 섭섭함도 컸다.


서울에 올라가 1년간 재수를 했다. 사회와 모든 연락을 차단한 채 공부했다. 외로웠던 1년이 끝나고 꿈에 그리던 서울의 한 대학에 입학하게 됐다. 대학에 입학한 뒤에도 할어버지는 육사 졸업식을 티비에서 보셨다면서 "네가 그때 육사 갔으면 이제 소위가 됐겠다"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대학교 4학년 취업 준비 기간이 됐다. 나는 평소 관심이 생긴 기자라는 직업에 도전할 참이었다.


할아버지는 기자가 되는 것을 탐탁치 않아 하셨다. 아빠는 "할아버지가 젊은 시절 경주에서 사업을 하시며 기자들의 갑질 같은 좋지 않은 경험을 많이 하셨다"라며 이유를 말씀해주셨다. 할어버지는 내게 "고시를 해보면 어떻겠냐"고 조언해주셨다. 나 또한 고시를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 공부하는 것은 내 적성과는 거리가 있었다. "생각해 볼게요"라는 말로 둘러대고는 기자 준비를 했다.


2016년 바라던 기자가 됐다. 할아버지 댁을 찾아가 최종 합격을 했다고 인사를 드렸다. 할어버지께서는 "고생했다"고 말하셨다. 하지만 말투나 표정을 보면 크게 기뻐하는 것도 아니었다. 여전히 육사에 가 장군이 되거나 고시에 합격해 고위공무원이 되지 못한 걸 여전히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손자가 고생해서 취업했는데 마냥 기뻐해주시지 않는 할아버지가 내심 미웠다. 할아버지는 엄하셨고 누구보다 보수적인 분이셨지만 내게 늘 인생의 큰 가르침을 주신 나침반 같은 분이셨다. 내가 닮고 싶은 분 한 분을 꼽으라면 우리 할아버지였기에 나도 실망감이 컸다.


지난해 11월 할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셨다. 아프셔도 아픈 티 내지 않으시던 강인한 분이셨다. 누구보다 건장하신 분이었기에 예상치 못한 이별이었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할아버지의 친구라는 한 분이 내게 말을 건네셨다. "니가 할배 손자재"라며 등을 토닥여 주셨다. "할배가 니 자랑을 매일 같이 많이 하셨다. 손자가 신문사 기자됐다고 맨날 기사 보라 그랬거든. 맨날 신문 찾아서 오려서 가셨대이. 니한테는 티 안냈을 수 있어도 니 진짜 많이 자랑스러워하셨단다." 할아버지 친구분은 이 말을 남기시곤 장례식장을 떠나셨다.


장례식을 치른 뒤 할아버지 댁을 찾아갔다. 할아버지 침실 책장을 열자 두꺼운 스크랩 북이 꽃혀 있었다. 그동안 내가 쓴 신문 기사들이 한가득 모여져 있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아주 짧은 기사부터 큼지막한 기사까지 가위로 정성스레 나의 기사들이 오려져 있었다. "요즘 무슨 일 있나, 신문에 니가 쓴 기사가 며칠간 안 보이더라." 얼마 전 할아버지와의 전화 통화가 떠올렸다. "요즘 쓸 사건이 많지 않아서요." 별 일 아니라는 듯 툭 내뱉은 나의 말도 같이.


할아버지께 부끄럽지 않은 기자가 되고 싶다. 내가 쓴 기사를 하늘나라에서 스크랩하고 계실 우리 할아버지를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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