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 부인 세 명이 1억짜리 옷 세 벌을 샀다

엄마는 네가 명품이면 그걸로 충분하단다.

by 조르바


황성초등학교 3학년 6반
1999년 8월 23일 월요일 날씨 맑음.

제목: 옷

장관 부인 세 명이 1억짜리 옷 세 벌을 샀다.
IMF시대에 국민들은 어렵게 사는데
그 돈으로 수재민 돕기를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나도 IMF 시대에 비싼 물건을 사지 않고
1억이나 되는 것은 절대 사지 않겠다.


1999년 '옷 로비 사건'은 내가 10살 때 벌어졌다. 유명 대기업 회장 사모님들이 호피무늬 코트 같은 명품 의상으로 검찰총장의 부인에게 로비를 한 의혹이 발단이었다. 사모님들은 나란히 국회에 출석했고, 의원들은 "IMF 시대에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며 크게 호통을 쳤다. 새하얀 옷을 입은 앙드레김이 증인으로 나온 모습도 기억난다. IMF 시대에 국민들은 금 모으기 운동을 하는데, 값비싼 명품 옷들을 로비하다니! 티브이에서 청문회를 본 기억이 아직까지 생생한 걸 보면 권력층의 세태에 분노를 금치 못하는 '어린 깨시민'이었나 보다.


나는 또래에 비해 명품에 관심이 없는 편이다. 엄마로부터 물려받은 후천적 영향 덕분이다. 오래전부터 엄마는 명품이 없었다. 이유를 물어볼 때면 엄마는 늘 같은 말을 하셨다. "엄마는 네가 명품이면 그걸로 충분하단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진짜 명품을 싫어하는 줄만 알았다. 취업을 한 뒤 감사한 마음을 담아 구찌 가방을 하나 사드리려고 하자 여전히 같은 말을 하셨다. "이런 가방 없어도 없어도 된다. 엄마가 명품이면 되지"라며 웃으셨다.


"그래도 꼭 하나 해드리고 싶어요." 기어코 가방 하나를 선물해드리자 "앞으론 절대 사지 마라"며 시큰둥하신 것 같았던 우리 엄마. 막상 가방을 받자 아기를 낳은 것처럼 좋아하신다. 2년이 지났는데 아깝다며 큰 행사나 기념일이 아니면 잘 쓰지도 않는다. 안방 거치대 위에 살포시 전시만 해두신다. 아들이 사준 거라며 자랑은 여기저기 하시면서. 알고 보니 엄마도 여자였다.


요즘 들어 갖고 싶은 명품이 눈에 들어온다. 내가 못나 보일 때가 많아서일까. 명품 하나 걸치면 좀 더 좀 더 당당해 보일 수 있을 같은데. 내가 다른 사람과 별반 다를 게 없는 SPA브랜드처럼 느껴질 때가 태반이다. 명품 하나가 나를 멋들어지게 바꿔줄 것만 같은 기분. 그럴 마다 엄마의 말을 떠올린다. "아들아 네가 명품이 되면 되지. 엄마는 그걸로 충분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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