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아빠들은 다 일찍 오는데...
황성초등학교 3학년 6반 일기장
1999년 5월 4일 화요일 날씨 비
제목: 우리 아빠 맨날 늦게만 들어오시고 놀기만 한다.
우리 아버지는 매일 늦게 들어와 우리들과 놀아 주지도 않는다.
오면 피곤하다고 잠자고...
나는 커서 아빠처럼 놀지 않고 빨리 집에 와야겠다.
또 아빠에게 빨리 좀 집에 와서 놀아주세요.
다른 아빠들은 다 일찍 오는데...
퇴근한 아빠를 기다리는 내 맘도 모르고 10시가 넘어 집에 오시는 우리 아빠. 아빠랑 놀 생각이 가득했는데 오시자마자 코를 드르렁 골며 잠들어버리는 우리 아빠. 일기에서 아빠에 대한 서운함이 한가득 묻어 나온다. 어른이 되면 절대 아빠처럼 늦게 오지 않고 일찍 집에 들어가겠다고 다짐한다. 빨리 와서 놀아달라고 기도하고, 일찍 오는 다른 아빠를 가진 친구를 부러워한다. 사실 아빠가 늦게 오시는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했다. "밖에서 놀기만 하다 늦게 오신다"라고 지레짐작할 뿐.
직장을 다녀보니 아빠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주 5일 근무가 도입되기 전 주 6일 근무가 당연했던 시절. 주 52시간 근무 같은 건 상상조차 하지 못하던 때였다. 하루 앞날을 알 수 없던 IMF 시대의 한 복판에서 아빠는 직장에서 열심히 사투를 벌이고 있었을 것이다. 하루하루 버텨내는 것이 그시대 모든 아빠들의 숙명이었으리라. 물론 10살의 나에게 울 아빠는 그저 '노는 아빠'처럼 보였지만.
올해 초 아빠는 30여 년의 직장 생활을 마무리하시고 정년 퇴임을 하셨다. 며칠 전 자그마한 회사에 두 번째 직장을 구하셨다고 한다. 다음 주부터 제2의 출발을 하신다. 지금 내 나이 무렵 처음 직장생활을 하실 때의 떨림과 불안이 예순이 넘은 우리 아빠에게 다시 한번 다가올 것이다. 30여 년 열심히 달려오신 만큼 이번 직장에서 만큼은 일찍 집에 들어오시고, 여유를 즐기며 지내시길 바랄 뿐이다. 아빠 성격에 그러시지는 못한다는 걸 잘 알면서도 말이다. 아빠의 새 출발을 응원한다.
20년 전엔 내가 늦게 들어와 놀아주지도 않는 아빠를 원망했는데, 이제는 아빠가 나를 원망하고 있지 않을까 죄송한 생각이 든다. 새로운 부처 출입을 하게 돼 바쁘고 피곤하다며, 주말에는 서울에서 중요한 약속들이 있다며 온갖 핑계를 대며 아빠가 계신 경주에 한동안 내려가지 못했다.
"곧 경주 갈게요." 무뚝뚝한 아들은 아빠에게 전화를 걸고 늘 뱉는 의례적인 말로 대화를 마무리 지으려 한다. 아빠는 "새 부서 가서 마이 바쁘제. 집에는 적응되고 천천히 시간 될 때 오면 된다"라고 괜찮지 않으면서도 괜찮다는 투의 말을 건넨다. 경상도 아빠 아니랄까 봐 무뚝뚝한 말투로 속마음을 감추는 건 여전하시다. 어릴 땐 늦게 오는 아빠가 무척 미웠는데, 아빠도 오랫동안 집을 찾지 않는 내가 많이 미우실까? 열 살 때나 서른 살 때나 나는 늘 불효자이니 죄송한 마음이 가득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