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없이 산다는 것
황성초등학교 2학년 5반 일기장
1998년 1월 25일 월요일 날씨 맑음
제목: 휴대폰
어머니께서 휴대폰을 사셨다.
처음에는 너무 신기하여 눌러보니 게임, 시간, 날짜 등 많았다.
또 자세히 보니 카멜레온 휴대폰이었다.
보라색이었다가 검은색, 검은색이었다가 무슨 색 또 노래도 특이하였다.
만화 노래도 있고 진동도 있고 많았다.
소리가 20가지가 넘었다.
엄마의 폰은 카멜레온색이었다. 보는 각도에 따라 색깔이 바뀌는 폰. 016으로 시작하는 엄마 폰은 16화음의 기본 벨소리들이 여러 곡 내장돼 있었고, 시덥잖은 게임도 할 수 있었다. 진동 기능도 있었다. 1998년은 삐삐에서 휴대전화로 통신 수단이 격변하던 시기였다. 엄마의 폰을 만져보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신기했다.
20여 년이 흘렀다. 이제는 폰이 없으면 신기한 시대다. 모든 전화번호는 010으로 시작한다. 16화음이니 64화음이니 하는 화음 경쟁 시대는 오래 전 끝났다. 휴대폰을 반으로 접을 수 있고 현실보다 현실 같은 게임을 구현할 수 있다. 찌이이잉, 찌잉~ 찌잉~, 지지지지징. 진동이 울리는 설정도 자유롭게 고를 수 있다.
'24시간 휴대전화 없이 살아보기' 체험기사를 쓴 적이 있다. 고작 하루인데 휴대전화가 없으니 ADHD에 걸린 것처럼 안절부절못했다. 카톡 알림음이 환청처럼 들렸고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느껴지는 착각도 했다. 회사에 전화를 하러 공중전화를 찾는데만 30분 넘게 걸렸다. 은행에서 현금을 찾는데만 1시간이 걸렸다. 단 하루였는데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다. 24시간 뒤 휴대폰을 켜 보니 수백 개의 대화가 진행된 카톡 대화가 쌓여 있었다. 저렇게나 많은 대화 속에 내가 짓눌려 있었다니... 새삼 놀랍다.
며칠 전 취재차 A 교수를 만났다. 명함을 교환하며 A 교수에게 연락처를 묻자 "휴대전화가 없어요"라고 했다. 처음에는 정말 농담인 줄 알았다. 아니면 A 교수가 나를 싫어해 연락처를 안 주려나 싶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A 교수는 정말 휴대전화가 없는 사람이었다. 2G폰이나 아이패드 같은 다른 전자기기도 없다. 유일한 세상과의 소통 방법은 학교 컴퓨터에서 확인하는 이메일이었다. 오랜 시간 메일 확인을 못할 때는 미리 양해 메일을 보내놓는다고 했다. 과학기술의 요람인 학교에 계신데다 학교 밖에서도 여러 직책을 맡고 있었기에 놀라웠고 믿기지 않았다.
처음에는 A 교수가 불편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다, 아니야 오히려 A 교수를 아는 지인들이 더 불편할 거야 생각이 들다가 마지막으로는 A 교수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담담하게 휴대폰이 없는 사실을 털어놓았는데, 이기적이라기 보단 단단한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요즈음 세상에 휴대폰 없이 산다는 것은 크나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 않는가.
밤 12시. 내 책상 바로 옆에 놓인 갤럭시10S 5G 스마트폰이 보인다. 카톡도 하고, 영화도 보고, 사진도 찍고 하루 동안 참 많은 것을 함께 했다. 손을 갖다 대자 폰이 핫팩처럼 뜨끈뜨끈하다. 15층 우리 집 창문에서 휴대폰을 확 던져버리는 상상을 잠깐 해보다가, 오늘은 전원을 끄고 자는 것으로 타협했다. 용기 없는 남자의 세상 문명을 향한 소심한 반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