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갔다오니 어머니께서 계시지 않았다.
엄마의 외출
황성초등학교 3학년 6반
1999년 10월 6일 수요일 날씨: 비
제목: <엄마의 외출>
학교에 갔다 오니 어머니께서 계시지 않았다.
휴대폰을 해보니 외할머니 산소에 갔다고 하셨다.
'얼마나 보고 싶었으면 그까지 가셨을까?'
어머니께서는 "엄마! 보고 싶어요. 왜 이렇게 빨리 돌아가셨어요"하고 울었다고 하셨다.
엄마께서 오래 동안 내 곁에 계셨으면 좋겠다.
일기를 쓴 해는 1999년. 우리 엄마의 엄마, 그러니까 나의 외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지 3년이 됐을 무렵이다. 외할머니는 고혈압과 중풍을 앓으시다 일흔이 안 돼 세상을 떠나셨다. 일곱살이던 나는 장례식장에서 상복을 입은 엄마가 이모들과 곡소리를 내며 꺼이꺼이 울던 장면을 어렴풋이 기억한다.
외할머니 산소는 당시 우리 집에서 차로 2시간 반이 넘게 걸리는 영덕에 있었다. 엄마는 내가 학교 간 사이 빨간 티코를 타고 경주에서 산소가 있는 홀로 차를 몰고 떠났다. 엄마는 문득 외할머니가 보고 싶었을 거니까. 아니,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3년 동안 엄마는 단 하루도 외할머니를 잊고 산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엄마를 만나러 먼 거리를 홀로 다녀오셨을 거다.
어제는 외할머니의 제삿날이셨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어느덧 25년이 흘렀다. 외할머니 댁에 계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가 말했다. "액자에 있는 외할머니 사진을 오늘 찍고 왔다. 생전 모습 그대로더라." 그러고는 1999년 나에게 해준 말과 똑같은 말을 하셨다. "보고 싶어도 못 보고 이제... 살아 계시면 느그 크는 모습 보고 좋아하실 텐데. 외할머니 너무 일찍 돌아가셔서 마음이 너무 아프네."
수화기 너머 엄마는 한 동안 어떤 말도 잇지 못했다. 그렇다. 엄마는 1999년에도 2020년에도, 25년이란 세월 중 단 하루도 외할머니를 잊지 않고 살아왔음에 틀림 없다. 일 순간일지라도 엄마를 보고 싶은 우리 엄마의 마음. 엄마의 외출은 앞으로도 계속 되겠지. 이젠 가슴 시린 엄마의 외출을 내가 함께해줄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