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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용 Nov 06. 2018

서른 전에 깨달은 것들

나의 20대 회고

내년이면 서른이다. 여전히 젊은 나이다. 한 번쯤 뒤를 돌아볼 시기다.


누구나 20대는 혼란스럽다. 나는 진로가 여러 번 바뀌었다. 애초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다. 아버지는 취업이 잘되는 경영학과에 가길 희망했다. 열정이 이성을 넘을 시기지만, 나는 내 선택에 확신이 없었다. 그래서 절충했다. 취업도 그럭저럭이고 카메라도 만지는 신문방송학과를 선택했다.


대학 선배들에게 술을 잘못 배웠다. 실수도 많이 했다. 20대의 절반을 술로 보냈다. 배움이나 인생보다는 학교 동기와 술자리에 더 진지했다.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런 시간이 있었기에 달릴 수 있었다.


나의 관심은 전공보다는 다른 분야에 있었다. 한때는 '프로이트'에 매료되었다. 무의식, 꿈, 성욕, 리비도, 방어기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까지. 그의 이론은 세 모든 사람을 설명할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융과 라깡, 아들러를 읽으면서 그의 이론에 허점이 많다는 걸 깨달았다. 그 이후로도 르네 마그리트, 소쉬르, 카프카, 하루키, 왕가위 등 나의 관심은 다양하게 옮겨갔다.


사실 어느 것 하나 깊게 파지 못했다. 결국 얕은 지식들만 남았다. 나는 고민했다. 쉽게 질리는 내게 문제가 있는 걸까? 나는 전문가가 될 수 있을까? 나는 무엇을 되고 싶?


졸업하기 직전이었다. 나는 여전히 진로를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싱가포르로 교환학생을 떠났다. 고민 대신 더 많은 자유를 택했다. 교환학생을 마치고, 현지 한식 레스토랑에서 일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좋았다. 아르바이트 월급도 200만 원을 훌쩍 넘었다. 귀국할 시기가 다가오자 매니저가 물었다. '앞으로 뭘 하고 싶어? 목표 하나를 정하고 한 길로 나가야지.' 매니저는 내게 정식으로 잡 오퍼를 줬다. 무난하게 살 수 있는 기회였다. 앞으로 2-3년은 한국에 돌아갈 수 없었다. 결국 도망쳤던 질문과 다시 만났다.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


그러던 중 피부병이 도졌다. 어릴 적부터 나를 괴롭히던 병이었다. 싱가포르에 가져간 약이 다 떨어지자 몸 전체로 무섭게 퍼졌다. 발, 종아리, 허벅지, 등, 팔의 피부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피와 진물이 흐르고 가려움을 참을 수 없었다. 늘 맥주 6캔을 들이마셔야 잠에 들었다. 아침에 깨고 싶지 않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무기력증과 우울증이 함께 찾아왔다. 싱가포르 병원을 전전하다가 한 달이 지나서야 겨우 치료할 수 있었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현재 나는 여행 스타트업에서 마케팅을 하고 있다. 처음엔 또래의 뛰어난 사람들을 보고 망하기도 했다. 그만큼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었다. 여러 분야를 경험하기 좋은 환경이었다. 콘텐츠, 마케팅, 브랜딩, 조직문화, 기획, 사용자 경험, 논리적인 사고, 설득하기, 쓰기 등등 다양한 분야를 경험할 기회가 주어졌다. 회사뿐만 아니라, 남는 시간에도 틈틈이 여러 가지를 배우고 경험했다. 올해는 틈틈이 여행 에세이를 써 크라우드 펀딩도 시작했다.


그렇게 20대가 지났다. 나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묻곤 했다. "20대에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이 무엇인가요?" 아마도 엉성한 내 삶을 바로잡고 싶었던 것 같다. 나처럼 고민하는 사람을 위해, 내게 중요한 순간을 나름대로 정리해봤다.



1. '왜'라는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왜' 이런 문제가 생겼는지.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그 일은 '왜' 해야 하는지. 나는 그때 '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 이런 질문들을 시작하면서 현상을 직시하기 시작했다. 질문하지 못하면, 그것에 대해 모르는 것이란 걸 깨달았다. '인지'에 대해 '인식'하는 훈련은 내 사고에 큰 영향을 주었다.



2. 결국 '왜'라는 질문이 나를 구속다. 


어느 날 나 자신이 재미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돌이켜보면 이성적인 사고가 아니라 감정적인 충동으로 정한 선택이 인생에 더  변화를 가져왔다. 잊지 못할 추억은 계획하지 않은 것에서 나왔다. 생각 없는 행동은 맹목적지만, 너무 많은 생각은 공허했다. 나는 결국 '왜'라는 질문을 아끼고 내 감정에 솔직해지기로 했다.



3. 누구나 불완전하다는 걸 깨달았다. 


이 사실은 '''타인'에 대한 관용을 주었다. 나 자신에게 실망할 때는 누구나 불완전하다는 것을 떠올렸다. 타인을 이해하지 못할 때는 나 또한 불완전하다는 것을 떠올렸다. 나의 상식, 타인의 시선, 사회의 기준 모두 불완전하고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것이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은 내게 큰 힘이 되었다.



4. '무엇이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 언젠가는 내가 기획한 서비스도 만들어 보고 싶고, 사진집과 소설책도 출간하고 싶고, 전시회도 열어보고 싶고, 음악도 만들어보고 싶고, 영화도 찍고 싶고, 내 이름으로 된 맥주펍도 차려보고 싶다. 물론 무엇 하나 완벽하지 않을 수도 있다. 전문가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여러 분야를 옮겨 다니며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습득하고 즐기는 것에서 정체성을 찾기로 했다. 무언가를 시작하기 위해 더 이상 '왜'를 묻지 않기로 했다.




"세상의 어떤 것도 자신의 갈망을 채워주지 못한다면 그때가 바로 자신의 삶을 만들기 시작할 때다."  - 류시화


지난 10년 간 불안했고, 한편으로는 두려웠다. 앞으로 배워야 할 것도 많다. 존경했던 친할아버지가 남기신 말이 있다. '비겁하게 살지 마라. 비굴하지도 마라.' 나는 비겁하지도, 비굴하지도 않았음에 감사한다. 나의 30대는 자신의 길을 만드는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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