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한 시간은 얼마입니까

애 엄마와 시급에 관한 이야기

by 사대영역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이직하려다 첫 아이를 임신하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전업주부가 된 지 10년 만입니다. 그 사이에도 프리랜서로 간간이 일을 했지만, 시간을 정해두고 출근하기는 처음입니다. 둘째가 피아노학원에 다니고 싶다는데 지금 생활비로는 답이 없었습니다. 뭔가 이제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되는 것이 아닐까, 자신이 없는데, 불안한 상태로 관성을 견디기만 했습니다. 당근에 올라오는 아르바이트 자리를 염탐하기만 몇 달째, 갑자기 가정경제에 어려움이 생겼습니다. (그 사연은 언젠가 얘기해보기로 하고요.) 가만히 집에 앉아 돈 걱정을 하느니 나가서 일을 하자! 결심하고 지원을 하자마자 덜컥 일자리가 구해졌습니다. 식당 설거지에 지원해 합격한 날, 결혼전 하던 원래의 분야에서도 동시에 일자리가 생겼습니다. 마치 운명이 그럴 줄 알고 준비해 두었다는 듯, 갑자기 반 워킹맘의 세계로 들어왔습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대로 모시겠습니다.”


경단녀, 오후에는 일을 할 수 없는 미취학 아동의 엄마가 구할 수 있는 일자리는 한정적입니다. 아이를 보내고 세 시간, 네 시간. 11시 출근에 2시 퇴근, 10시 출근에 2시 퇴근. 당연히 최저시급의 일자리들입니다. 남의 일인 줄만 알았던 최저시급이 확 와닿습니다. 10,030원. 내년에는 10,320원으로 오른다지요. 내 시급이 오르는 게 희망적이긴 하지만 살림을 하는 처지에 달갑지만은 않습니다. 시급이 오르면 물가는 그 이상으로 올라버리는 것을 여태 많이 봤으니까요.

시급 3만원 벌러 가면서 버스를 타자니 차마 아까워서 못 쓰겠습니다. 밥때가 훌쩍 지나 집에 돌아오면서 참 허기가 지지만 뭘 하나 사 먹으면 1시간 시급이 나간다 생각하니 못 먹습니다. 식당으로 30분을 걸어서 출근하고 30분을 걸어서 퇴근합니다. 집에 오면 저와 비슷한 때 돌아오는 첫째를 맞이하고 간식을 먹여 학원에 보내고 둘째를 데리고 와서 간식을 먹이고 학원에 보냅니다. 그러고 나면 4시. 그제야 제 입에 무언가를 넣을 수 있습니다. 40분 뒤에 다시 데리러 출발해야 합니다. 시급을 생각하니 제 입에 들어가는 것도 아깝습니다. 식욕이 다 사라집니다.


시급의 딜레마


왜 내 능력은 이것밖에 안 되는 것일까. 문득 회의가 듭니다. 그래서 엄마아빠가 공부 열심히 하라고 했구나. 나름 열심히 했던 것 같은데 왜 이 나이에 최저시급일까. 내가 이것밖에 안 되나. 자괴감도 밀려옵니다. 어디서 읽었는데 인문학은 뼈 같은 존재라더라고요. 뼈가 없으면 사람 꼴이 되지 않고 뼈만 있으면 굶어 죽기 직전이라지요. 왜 인문학을 전공했을까. 왜 난 수학 과학에 소질이 없었을까 별의 별 삽질을 해봅니다.

일하는 시간을 늘려보려고 아이들의 스케줄을 이리저리 조정해봅니다. 유치원생은 오히려 하원시간이 늦건만, 초등학생은 학교에서 참 일찍 끝납니다. 태권도 학원 가는 날을 늘려서 집에 오는 시간을 늦춰볼까 하니 돈이 듭니다. 긴 겨울방학에는 또 어쩔까요. 아이를 오전에 하는 학원에 보내야 하나, 그 역시 돈이 듭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요. 내년에 둘째가 초등학교에 가면 또 어쩔까요. 아이를 픽업하는 일을 타인에게 맡기려면 최저 시급 이상은 드려야 할 텐데요. 워킹맘이었으면 이런저런 노하우가 있을 텐데. 지난 세월 전업주부에 엄마표 집공부 위주로 세팅되어 있다 보니 제 부재상황에 대한 노하우가 전혀 없습니다.


전업주부의 한 시간은 얼마일까요?


전업주부는 집에서 아무것도 생산하고 있지 않는 것 같은데. 나가서 세상의 돈으로 환산하면 최저시급 정도의 능력뿐인데. 가정에서 제가 기존에 하던 일을 대체하려면 돈이 훨씬 많이 듭니다. 제가 힘들다고 음식을 하지 않고 배달을 시키면 1만원으로 해결할 끼니를 최소 4만원은 쓰게 됩니다. 움직이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영어학원 수학학원 보내지 않고 집에서 스케줄표 짜 집공부를 시킵니다. 그게 아끼는 길이고 잘 사는 길이라고 믿었습니다. 무릎에 앉혀놓고 목이 터져라 책을 읽어주며 키웠습니다. 나중에 논술학원에 보내는 돈을 아낀다는 마음으로요. 집에서 제 생각보다 대단한 일을 하고 있었던 걸까요. 남편이 “그러니까 여보가 집에 있는 게 돈버는 길이라고 내가 말했잖아” 얄미운 소리를 합니다.

제가 하던 일이 이렇게 가치있고 비싼 일이었다면 왜 세상은 전업주부의 경제적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을까요. (심정적으로야 알아주겠지만 전업주부는 상환능력을 증명할 수 없어 은행 대출을 받을 수 없답니다. 전세대출 받으러 갔을 때 제 직업 물어보시더니 "네 집에 계시고요" 했던 은행 직원분, 못 잊습니다...) 제 시간은 세상에 나간 기준으로 최저시급으로 생각해야 할까요 아니면 나를 대체해 시켰을 때의 비용으로 생각해야 할까요. 제 한 시간은 대체 얼마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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