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말자 초심
아이들은 금방 자란다
기나긴 아이들 방학이 끝났다. 정말 길었다. 오랜만에 글을 써본다.
그 사이 우리 가족은 호주에 여행을 다녀왔고, A형 독감, B형 독감이 두 번이나 우리 집을 휩쓸었다. 여행 출발 전까지도 박물관을 서너 군데 다녔다. 첫째는 3학년 2학기까지 예습을 마쳤다. 둘째는 성공적으로(?) 유치원을 졸업했다.
여행은 아이들을 불쑥 크게 만드는 듯하다. 어머 얘가? 싶도록 성장이 느껴진다. 마냥 아기같던 둘째는 첫째 같아졌고, 첫째는 갑자기 10대로 들어가버린 듯, "왜 꼭 그래야 하는데?"를 시전하며 자아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변화는 늘 갑작스럽고 낯설다.
그깟 파마가 뭐라고
설 명절을 끼고 여행을 다녀온 탓에 뒤늦게 양가에 방문했다. 시어머님은 원래 미용실 원장님이셨던 터라, 아이들은 할머니댁 뒤꼍의 '할머니 미용실'을 매우 좋아한다. 아이들 커트비가 공짜이니 나 역시 반갑고 감사하다. 그런데 이번은 달랐다.
갑자기 첫째가 상의도 없이 파마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너무 길어서 좀 다듬어줄까 하는 말에 허리까지 기를거라며 절대 싫다던 녀석이라 당황스러웠다. 좋게 말해 삼단같고 사실 물미역처럼 숱많고 긴 생머리를 나름 아이의 트레이드마크처럼 생각해온 터라 거부감이 먼저 들었다. 아이를 설득할 새도 없이 하겠다고 밀어붙이는데 시댁이라 함부로 말할 수도 없어서 난감하고 불편했다. 부쩍 커버린 첫째는 아주 막무가내였다. 게다가 이내 단발머리 둘째까지 쫓아와 파마를 하겠다는 것이다.(둘째는 원래 막무가내여서 낯설진 않았다.) 좋게 설득해볼 수도 있었을텐데, 협상이 불가능함을 깨닫자마자 내 입에서는 날 선 소리가 나왔다.
"몰라 니들 맘대로 해!"
아이들 머리를 할 수 있는 기회라니 할머니는 신이 나서 아이들 손을 잡고 나가셨다. 어머님이 하시던 잡채를 마저 섞어놓고 방에 들어와 앉았는데 머리가 띵했다. 내 화를 걷잡을 수가 없어서였다. 스스로도 왜 이렇게까지 화가 나는지 이해가 가지 않고, 시댁이니 표출은 할 수 없고, 지금이라도 쫓아가서 하지 말라고 애들을 끌고 나올까, 새학기에 파마를 하고 새 선생님을 만나다니 이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아이가 파마를 하고 나오면 나는 아이를 예뻐할 수 없을 것 같다, 도저히 그 얼굴을 못 보겠다, 파마를 했다는 이유로 아이를 박대하는 것이 맞나? 아이에게 트라우마를 남기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러면 안되는데, 왜 내가 이렇게 격렬히 분노하는 걸까, 별의 별 생각을 하다 급기야는 눈물까지 찔끔 터졌다.
최선을 다해 차근히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학생답지 않다는 나의 명분은 사실 그닥 설득력은 없었다. 학생에게 좋지 않다고 내맘에 안 든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 생각이 구식이라는 건 스스로도 인정하기 때문이다. 두피나 건강에 안 좋다는 말도 명분은 안 된다. 애들 할머니는 구입할 수 있는 최상품을 쓰시고 그마저도 두피에 안 닿게 아래쪽만 전문적으로 말아주시기 때문이다. 시댁이라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는 상황 자체가 배알이 꼴렸을까. 이 편이 제일 설득력이 있었다. 내게 아이를 말로 눌러 드잡이를 할 시간적 공간적 여유가 있었더라면 파마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 이게 다인가. 못난 삽질을 하다 하다 시어머님이 내 아이들을 데려다 '당신 마음대로 하신다'라는 생각까지 이르러서야 깨달았다. 내가 아이들을 마음대로 하고 싶었던 것이라는 것을.
더 비상식적인 부분도 있었다. 둘째는 이미 할머니와 한번 파마도 했고, 단발도 잘랐다는 것. 둘째가 파마를 하는 것에는 이정도로 화가 나지 않았다는 것. 오히려 귀엽다고 생각했던 것. 이 부분도 스스로 납득이 가지 않았다. 대체 나는 미친것인가. 첫째의 미역머리에 나는 왜 이렇게까지 비정상적으로 집착하는 걸까. 애 머리는 애 것이니 내가 반대할 명분이 없는 것을. 왜 없지. 왜. 왜.
나는 첫째를 나의 페르소나로 삼고 있었던 것 같다. 아버지가 나에게 그러던 것. 나를 병들게 했던 그것. 그 짓을 내가 내 아이에게 똑같이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걸 깨달으니 눈물이 멈췄다.
내 자식이니 날 닮았다는 착각
첫째와 둘째는 각각 날 닮았다. 읇어보자면 이렇다.
첫째는 책을 좋아하고 논리적으로 따지기 좋아하는 점이 닮았다. 그러면서 나와 다르게 마음에 구김살이 없(어보이)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자존감이 높다. 나와 달리 성실하고 한번 마음먹은걸 꾸준히 해내는 장점도 가졌다. 내가 되고 싶었던 이상향, 나를 더 잘 키워줬더라면 나도 이랬을까 내가 이렇게 되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 적도 여러 번일 정도다.
둘째는 나의 다른 면을 닮았다. 감정적이고 귀여움 잘 떨고 춤과 노래를 좋아한다. 놀기도 좋아하고 침대속에 늘어져있는것도 좋아한다. 기쁨도 크게 표현하고 슬픔도 크게 표현한다. 손재주가 좋고 만들기를 잘 한다. 나와 다른 점도 있다. 한껏 화내고 미운소리를 퍼부은 뒤 다시 와서 한껏 예쁜 말을 다시 해줄 줄도 안다. 단칸방에서 만들기하던 나와 달리 넓은 집과 풍족한 재료를 사용해 아주 스케일 크게 만들고 행복하게 논다. 둘째가 자유롭게 요정처럼 거실을 누비고 있는 것을 보면 내가 어릴적 사랑을 표현하는 부모 아래 넓은 집에서 컸더라면 나도 저랬을까 상상해본다.
첫째와 둘째는 각각 나를 닮았다. 내 세포를 갖고 나왔으니 외모나 체질이 닮기야 닮았을 것이다. 그러나 인격은 제각각이다. 그리고 각각의 면모들은 아이라면, 사람이라면 으레 갖고 있는 여러가지 측면중의 하나라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는 것일 뿐일 수도 있다. 내가 키워서 아직은 내 영향권이라 닮아보이는 것뿐일 수도 있다. 아이들의 특정 요소가 날 닮았다는 것은 오만이고 착각이다.
첫째도 귀여움을 받고 싶고 둘째도 성실하다. 나는 그것을 자주 잊는다. 내 마음대로 아이들에게 캐릭터를 부여하고 내 시선의 틀 속에 가두어 아이들을 본다. 내 마음대로 나와 연관지어 생각하고 날 닮아서 잘한다 날 닮아서 큰일이다 판단해버린다.
우리 아버지가 나에게 그랬다. 아버지에게 자식이란 나의 유전자를 이어 태어나 내 생을 한번 더 사는 것, 그래서 유전자와 교육을 통해 나의 생각과 사상을 이어받아 인생 2회차를 사는 것, 그것이 아버지가 생각하는 부모자식 관계였다. 아버지는 부모에 대한 그리움을, 인간이 자식을 키우는 이유를 그런식으로 이해해버렸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도록 요구받았고, 그 결과 나는 일정부분 병들었었다. 아들이 아니라 딸이었기에 아버지도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내가 서른이 다 되어 들이받고 나서야, 아버지는 자식은 본인이 아님을 이해하셨다.
함부로 페르소나 끼얹지 마세요
나는 첫째에게 나의 이상향을 끼얹었고, 둘째에게 내가 갖지 못한 자유로움을 끼얹었다. 첫째에겐 내가 못가진 성실성과 더 완벽한 모범생 상을 가지도록 한껏 서브했고, 둘째에겐 내가 못 누렸던 자유로움과 애정을 마음껏 퍼부으며 아기처럼 자랄 권리를 베풀었다. 아이들이 각자 가진 기질에 맞게 키우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내 결핍들을 채우려고 각자 캐릭터를 부여해놓고 인형놀이를 하고 있던건 아닐까 생각하니 소름이 끼쳤다. 아이 그대로를 보지 못하고 내 프레임대로 아이들을 보고 있었다. 내가 첫째의 머리카락에 집착을 보이며 둘째의 머리카락에 관대했던 이유는 이것이었다. 무의식중에 그 머리카락을 내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내 내면이 비명을 지른 거였다. "나는 파마하기 싫단 말이야!"
첫째가 열 살이니 우리 아버지보다 20년은 먼저 깨달아 다행이라고 생각해보기로 했다. 아이의 머리카락은 내 것이 아니다. 내가 키우지만 내 소유물이 아니다. 아이의 머리카락은 아이의 것이고 그 선택으로 머리카락이 엉키더라도, 다소 산발을 해 다니더라도 내가 도와줄 것은 헤어에센스를 발라주는 것이지 파마를 못하게 막는 것이 아니다. 아이의 인생은 아이의 것이다.
생명과 안전, 건강에 위협이 되지 않는 이상 아이의 삶에 참견하지 않고 존중한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세웠던 대 원칙을 좀 잊고 살았다. 최선을 다했지만 아이의 입장을 몰랐던 내 아버지보다 나는 한 단계 나은 부모가 되어야지. 그렇게 애써 키우면 내 아이는 또 한 단계 더 나은 부모가 되지 않을까. 나보단 뭐라도 낫겠지. 내 품에서 20년 남짓 있다가 세상으로 나갈, 나에게 맡겨진 존재들. 옥죄는 품이 아니라 키우고 돋워주는 품이 되어야지. 나를 끼얹지 말고 제 생긴대로 살도록 도와주어야지.
파마한 큰애는 결 좋은 직모라 금세 파마가 풀렸다. 고실고실한 코카스패니얼 같다. 제 머리가 마음에 드나보다. 친구들이 꾸미는 모습들이 내심 부러웠던 모양이다. 둘째는 시츄같아졌다. 아주 귀엽다. 반듯한 모범생은 아니지만 아주 귀여운 신입생으로 눈에 띌 듯하다고 고슴도치 엄마아빠는 연신 감탄했다.
파마머리에 발라줄 에센스나 사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