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rst Letter to Dear Me
이미 여섯 편으로 적어낸 last letter to dear B이지만, 마지막 에필로그로 만나러 왔습니다.
다시 B를 만났냐고요? 아닙니다.
사실은 저 또한 동화 같은 결말을 원했습니다. last letter to dear B를 적고 나서, 이 글이 우연히 B에게 닿아, 그 애가 다시 저에게 돌아오는 걸 - 아무리 제 안에 있는 B를 보낸다고 앞전에 글을 썼어도 - 아주 깊숙이 있는, 제 소망이자 갈망이었습니다.
B와의 만남은 인생이 주는 선물과도 같았습니다. 서로 시간대가 다른 도시에서 태어나 살다가, 우연히 같은 도시에서 마주치게 될 확률은 얼마였을까요? 그리고 서로의 외로움과 그림자가 닮은 확률이 또 얼마였을지.
그래서 그렇게 짧은 시간 동안에 주체 못 할 정도로 서로에게 급격하게 빠져들었고, B는 물러났고, 저 만이 홀로 남겨졌습니다.
사람이 구원이 되지 않는다는 게 제 모토였지만, 그와 다르게 그냥 저는 B를 구원하고 싶었습니다.
인생을 살아나가면서 수 없는 밤과 시간을 외로움을 견디면서, 스스로를 감당해 나가면서 스스로의 상처를 돌본다는 게- 너무나도 고독하고 외로운 일이라, 서로 닮은 상처를 가진 B를 봤을 때 손을 내밀고 싶었습니다.
마치 그 혼자 견뎌내야 했던 그 많은 밤들과 시간들을 - 그 쓸쓸함을 보상하듯이. 나는 너무 혼자였지만, 너만은 나와 같이 가자고.
누군가와 함께 살아간다는 게 쉽지는 않고 늘 장밋빛 미래가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같이 만들어가고 싶었습니다.
서로의 외로움이 서로를 알아봤고, 다른 모양의 아픔이지만 비슷한 그림자를 가진 사람끼리 이해를 해 가면서 상처가 가득한 유년시절, 불안했던 집 대신 그냥 새롭게 만들어 가고 싶었습니다. 서로에게 집이 되어주는, 그리고 미래를 그려나가는 관계가 되어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마무리는 급작스럽게 끝났고, 며칠의 단 꿈이라고 했지만 기대했던 시간들의 소실이 더욱 저를 아프게 했습니다.
B를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애의 이름 뜻을 생각하고, 그 이름을 지어준 부모의 고난함과 아이에 대한 기도를 생각할 수 있었을 까요.
그 보다 더, B와 이뤄갈 수도 있었던 시간들과 가능성들의 소실이 저를 더 아프게 했고, 관계가 끝났다는 걸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B를 왜 놓을 수 없는지 곰곰이 생각하다가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그냥 그렇게 외로웠던 B를 보면서 예전의 저를 투영했고, 그래서 손을 내밀고 싶었구나.
그래서 이 편지는 B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의 에필로그 이기도 하지만, 저에게 보내는 첫 편지의 프롤로그입니다.
아마 B는 살아가면서 스스로 설명하는 삶을 살았을 겁니다. 저 조차도 친구들과 가족에게 B를 설명할 때 단 하나의 단어로 설명하지 못했으니까요. 모국어는 한국어와 다른 언어, 성장한 곳은 또 다른 나라, 하지만 혈통은 한국인. 항상 이방인의 경계에 살았던 애.
그리고 저 또한, 누군가에게 제가 가진 아픔을 설명하지 못한 채 살아왔습니다. 말해봤자 그냥 ‘그때는 다 그러고 살았어’로 치부될까 봐. 유년 시절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어느 한 곳에 적응하지 못한 채 경계선에 걸친 채 살던 애.
B와 언젠가 마주친다면, B에게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사실 그게 실현되지는 않았기에 이렇게 멀리서나마 글로만 적을 뿐.
그리고 그 말, 이제는 저에게도 해 주려고 합니다.
너무나도 버티느라 고생이 많았다고.
그래도 여기까지 온 게 자랑스럽다고.
이 글을 올리는 날 자정, 오늘은 제 생일입니다.
사실 저는 이제 B를 거의 다 잊어갔습니다. 아쉬운 일이긴 하죠. B와 보냈던 시간들은 아주 짧고도 강렬해서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는 - 결말조차 내지 못해서 뒤를 돌아보게 되는 단편 영화였지만, 앞으로 살아가야 할 제 인생에서 이제는 이 이야기는 어느 목차 중의, 에피소드가 되겠죠.
그러니 이제 Last Letter to Dear B의 에필로그는 First Letter to Dear Me입니다.
생일 축하해. 오늘은 누구보다 더 너만을 위한 날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