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끝났지만 위로는 남았다

2년의 연애가 끝나고 나는 스스로에게 여행을 허락했다

by Zov


*이 글은 브런치북 [기원의 증언] 시리즈의 첫 편입니다. 브런치 북으로 정리 예정입니다.


퇴근을 하고 무작정 속초로 떠났다.


2년 동안의 연애가 끝나고 한 달이 지나고 나서야 용기 내어서 한 일이었다.


사실 무작정 아무것도 알아보지 않고, 전날 숙소만 예약한 채 - 심지어 가는 차표는 퇴근 두 시간 전에 끊었다. 가기로 한 당일날에 주변에 먹을만한데가 없을까? 하고 찾아본 데는 아뿔싸, 죄다 휴업일 이거나 도착해도 시간이 아슬아슬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무작정 떠난 여행의 목표는 별거 없었다. 그냥 바다가 보고 싶었다. 부산에서 나고 자라 서울을 동경해서 상경했지만 유독 최근 따라 서울에 있는 게, 자취방에 있는 게 불편했다. 자취방에 돌아가는 길에도 사람이 복닥 거리는 서울을 탈출하고 싶었고, 애인과 함께 있을 때 우라 한번 어느 날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버스 타고 밤바다 보러 가자,라고 말했던 소원은 채 이뤄지지 않아 그 소원을 내가 스스로 이뤄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동서울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출발했을 때는 좋았다. 그날 날씨가 좋았고, 한강을 끼고 달리며 평일에 서울을 떠나 어딘가로 탈출한다는 감각이 기묘했다. 노을이 지는 한강, 그리고 하늘 위를 떼 지어 날아가는 새들을 보며 어딘가 눈물이 차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 기분은 오래가지 않았다. 시간이 애매해하고 차표가 싸다는 이유로 끊은 시외버스는 인제와 몇 군데를 거쳐서 밤늦게야 속초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람이 드문 시간대에 도착한 강원도 속초는 내가 혼자라는 사실을 더욱 드러내줄 뿐이었다. 설상가상으로 I 성향인 내가 게스트하우스의 룸메이트 - 처음 본 외국인애한테 같이 놀래?라는 말까지 할 정도였으면, 정말로 외로움이 극심했던 거 같다.


바다를 보겠다는 거대하고도 소소한 포부와 달리 나는 먼저 바에 가서 혼자 술부터 마셨다. 원래도 타지에 가면 먼저 바에 들려 바텐더와 그 지역 사람들을 만나는 게 소소한 재미라 그렇게 했다. 보통 술 마실 때는 먼저 밥 먹고 마시라는 아빠의 조언을 그날에는 무시해서 그런지, 칵테일 두 잔만 마셨는데 술기운이 약간 올라왔다. 끝끝내 마지막 잔은 전 애인이 좋아하던 방식대로 마시고 나서 는 마음이 버거워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충동적으로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음이 지나고 나서 - 정말로 긴 시간 같이 느껴졌지만, 내 전 애인은 전화를 받았다.


사귈 때는 하지 못했던 내 오래된 상처를 그에게 꺼냈다. 술기운을 빌려서 라는 정말 헤어진 전 애인이 할 법한 클리셰적인 말을 덧붙이면서. 그에 대한 상처는 아니었다. 다만, 헤어지고 나서 생각과 마음 정리를 하면서 왜 애인을 떠나보내지 못했는지, 회피형인 그 사람을 1년 넘게 참아가면서도, 매번 헤어지자고 말하는 애인에게 택시를 타고 달려가 헤어지지 말자고 매달렸는지. 자존심도 다 버려가면서 했었던 이유는 한 가지였을지도 모른다.

물론 사랑하니까 참았겠지,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나에게 처음으로 ‘실수해도 괜찮다’라는 말을 해준 사람이었다. 늘 실수를 하면 추궁당하고 실수하면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꼈던 나에게 그건 아주 큰 울림이었다. 헤어지고 나서야 그 사실을 깨달았고, 아주 어릴 적 상처를 오랜만에 마주하고 나서야 나는 그에게 털어놓듯이 속초의 어느 부두항에서 수화기 너머로 그에게 털어놨었다. 오빠는 모르겠지만, 내 인생에서 그걸 말해주는 사람은 처음이었고 나를 바꿔주었으니,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었으니까 오빠도 자랑스러워해도 된다고.


그도 잠시 망설이다가 스스로 자랑스러워해도 괜찮아?라고 내게 말했고, 나는 눈물을 참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수화기 너머로 우리는 오래도록 말을 이어갔다. 그 밤의 대화는 다음 글에 이어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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