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지도 못했던 사랑에 대한 장례식에 관하여 完
서로 다른 세상에 살아가던 사람이 둘이 있다. 그리고 서로의 오래되고 스스로 조차 몰랐던 갈망들이 서로의 삶의 교차점에 마주쳤고, 마주친 순간들은 짧지만 강렬했다. 이게 장례식의 결론이었다.
어쩌면 나 스스로도 어쩌면 B의 가장 깊은 내면을 건드려 버렸고, 그건 나름의 방식대로 세상을 살아가던 B에게는 그게 사랑이 아니라 혼란이라 느껴져 그도 떠남을 선택했던 것 아닐까. 물론 나는 B를 찾아가 다시 잡을 줄 수 있었지만, 아직 그 조차도 자신의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것도 모르는데 무작정 나를 마주하라는 건 그에게 있어서 감정적으로 무례한 폭력이라 나는 그 애를 마주하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B가 떠난 자리에는 나 홀로 남아있었다. 그게 사실은 외롭고도 고독했고, 애가 나를 향했던 말들과 행동들의 파편들을 머릿속에서 아주 작은 것까지 긁어모아 작별을 한다는 게, 아무도 모르게 나 홀로 - 심지어는 그 장례의 주인공조차도 이별이 있었는지, 그리고 내가 그 애를 어떤 모양으로 사랑했는지 모른다는 게 더욱 서러웠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도망칠 수밖에 없었던 B가 스스로의 감정에서 자유로워지기를 바랐다. 그가 언젠가 사랑 앞에서 도망치지 않고 자기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삶이 있고 신이 있다면, 그리고 내 오래된 갈망과 염원이 그 애를 데리고 왔다면, 이제는 애정과 소망으로 부른다면 다시 그 애를 마주할 수 있을지 나는 상상했다. 하지만 내가 겪어온 인생이 그렇듯, 내 마음대로 안 되거니와 나에게 또 다른 장난을 칠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저 단념하는 수밖에 없다는 무력함 밖에 없었다.
그래도 언젠가는 이 편지를 그 애가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주 실낱같은 희망들만 남겨 놓을 수밖에.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묵념이고, 기도였다. 바라고 바라는 건, 다시 만나 그때 이루지 못한 가능성들을 실현시키고 사랑하는 게 아닌 -
너 조차도 알지 못하는 이런 사랑이 있었다고. 내가 너를 이렇게 생각했노라는 이별을 그 애의 얼굴을 마주 보며 속삭이고 싶었다.
이 장례는 이렇게 끝났고, 나는 그제야 겨우 내가 할 수 있을 만큼의 그 애를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익명을 빌려서만 세상에 조용히 말할 수 있었던 사랑이 언젠가는 그 애에게 닿길 바라며,
Сегодня я тебя хорошо чувству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