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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ozu Mar 15. 2020

[Movie] 컨택트(Arrival, 2016)

정해진 운명을 포용할 용기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드니 빌뇌브 감독의 SF 영화 컨택트는 정해진 운명 앞에 선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화는 12개의 외계우주선이 각국 상공에 나타나면서 시작된다. 영화는 보통의 sf처럼 외계 생명체의 지구 침공을 다루기보단 외계 생명체와 인간의 소통에 주목한다. 각국의 정부가 외계 생명체에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때, 미국 정부는 언어학자 루이스와 천체학자 이안을 통해 그들이 지구에 온 목적을 알아내려고 한다.


영화 컨택트 속 외계우주선


  영화의 주요 줄거리는 주인공인 언어학자 루이스가 외계 생물체(이하 햅타포드, 7개의 발)의 언어를 분석하고 그들과 소통하게 되는 것이다. 영화에선 언어가 우리의 사고방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흔히 '사피어-워프 가설'이라 불리는 언어학적 가설에 따르면, 사용하는 언어가 생각하는 방식을 결정하고 사물을 보는 시각도 바꾼다고 한다. 햅타포드어의 가장 중요한 특징 두 가지는 다음과 같다.

1. 햅타포드어에는 시제가 없다.

2. 햅타포드어의 문자에는 앞뒤의 방향이 없다. (비선형 철자법)



  즉, 사피어-워프 가설에 따르면 햅타포드는 시간을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는 방향성이 있는 선형이 아니라 순환하는 원형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햅타포드는 시간을 과거 현재 미래와 상관없이 동시에 인식할 수 있으며(즉, 미래를 볼 수 있으며) 그들이 지구에 온 목적은 미래에 자신들에게 도움을 줄 인류에게 미리 도구(그들의 언어이자 미래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를 선물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루이스 역시 햅타포드어를 배우게 되며 그들처럼 사고할 수 있게 된다. 루이스가 영화 초반부터 계속해서 꿈꾸고 떠올리는 딸과의 추억은 과거가 아닌 다가올 미래였던 셈이다.



  문제는 루이스가 보고 있는 그 미래가 결코 달콤하지만 않다는 것이다. 루이스가 이안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 한나(Hannah)는 희귀병으로 인해 고통스러운 투병과 죽음을 겪게 되며, 그 과정에서 딸의 미래를 알면서도 딸을 낳는 선택을 한 루이스를 이안은 이해하지 못하고 떠나버린다. 만약 당신이 루이스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고통스러운 끝을 알기에 딸을 낳지 않는 선택을 할 것인가, 아니면 그 모든 고통을 수용하면서도 정해진 운명을 받아들일 것인가?


  루이스는 모든 아픔과 이별을 알면서도 자신의 운명을 안고 가기로 결정한다. 누군가는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인 루이스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역시 루이스와 같은 삶을 사고 있다. 회자정리 거자필반 생자필멸 사필귀정. 불교에서 윤회사상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사자성어이다. 모든 만남엔 이별이 있고 모든 생에는 멸이 있다. 우리는 우리 모두 언젠가 죽음의 순간에 도달하게 될 것을 알고 있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질 때에도 그 사람과 영원히 함께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 순간에 열렬히 몰두하게 된다. 오히려 끝이 두려워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하는 것이 불행 아닐까? 그 끝에 고통이 있더라도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고 사랑을 하게 된다. 결말을 알고서도 시작할 수 있는 용기, 정해진 운명을 포용할 용기를 내는 모든 루이스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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