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투병일지를 시작하며
아버지가 암에 걸리셨다. 환갑 생신을 일주일 앞두고 췌장암 4기 진단을 받았다. 병원에 입원하던 날은 원래 환갑 기념으로 친구들과 해외여행을 가기로 예정되어 있던 날이었다. 아버지는 며칠 전부터 계속되던 복통이 너무 심해져서 그날 아침 여행짐을 들고 응급실을 찾으셨다. 그리고 그대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언니는 대학병원에서 전문의로 재직 중이다. 어머니는 반평생 넘게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로 재직하셨고, 정년퇴직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가까운 가족의 병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들이 신이나 무당이 아니니까 당연한 것이지만, 언니와 엄마는 시그널이 있을 때 알아차리지 못한 점에 대해서, 너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점에 대해서 자책했다. 아버지가 한 달쯤 전부터 배가 아프다 할 때 언니는 매번 CT를 찍어보라고 권했지만 당뇨 때문에 주기적으로 병원을 찾던 아버지는 굳이 그럴 필요성을 못 느꼈던 것 같다. 언니는 진단 결과가 정확히 나오기 전, 암이라고 예상한 시점부터 자책했다. 올해 초에 아버지를 건강검진받게 했더라면, 한 달 전에 배가 아프다 할 때 CT를 찍게 강요했더라면… 자책하지 말라고 말을 건넸지만 아마 언니는 오랫동안 저 생각들을 떨쳐버리지 못할 것 같다.
아버지의 시간이 1년 남짓 남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 나는 혼란스러웠다. 남은 시간 동안 아버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고, 내가 그동안 아버지를 대했던 태도가 잘못된 것인지 돌이켜보게 됐고, 내가 슬퍼할 자격이 있는 건가 스스로 의문이 들었다. 아버지와 나는 사이가 안 좋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원망했고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컸다. 아버지는 책임감 있는 가장이 되기 위해 노력했지만 가족들을 통제하는 가부장적인 인물이었다. 그리고 통제를 위해 폭언과 폭력, 특히 타인의 자존감을 깎아먹는 가스라이팅적인 말을 서슴지 않았다.
“너만 없으면 가정에 문제가 없다.”
“너는 엄마를 닮아서 사회성이 떨어지는구나.”
이런 말들을 들으며 나는 대들고 싸우기도 하고 아니라고 반증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으나 바뀌는 부분은 없었다. 평화주의자인 엄마와 언니와는 달리 반골기질이 강했던 나는 아버지와 항상 부딪히고 깨졌으며 그 과정에서 엄마와 언니도 내 편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뒤로 성인이 되어서는 가족들과 거의 왕래를 하지 않고 지냈다. 그랬던 내가 이제 와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온전히 슬퍼해도 되는지 의문이 들었다. 혹시나 내가 아버지를 원망하는 마음이 너무 커서 일찍 병이 생긴 건가 하는 미신적인 마음도 들었으며 앞으로 아버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가 가장 혼란스러웠다.
아직도 답은 없다. 이 시간들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글로 써 내려가면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아버지의 투병 기간을 기록으로 남기다 보면 뭔가 생각이 정리되지 않을까 싶어 일지를 써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