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오르는 잠자리 연필을 따라

동묘에서

by 전정희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을 때, 가끔 동묘 풍물시장을 찾아간다. 딱히 찾는 것이 있다기보다는 그저 한 바퀴 휘 둘러보는 정도이다. 하지만 이곳을 찾을 때마다 공연히 설레는 마음이 든다.

아무렇게 쌓아둔 CD 더미에서 산울림의 10집 앨범을 찾아내고는 몹시 흥분했던 적도 있었고, 두꺼운 해설서가 포함된 클래식음반 전집을 사고서는 낑낑거리고 들고 오면서도 무척 행복해했던 적도 있었다. 그런 좋았던 기억들이 무언가 생각이 잘 풀리지 않을 때에 이곳으로 발걸음을 돌리게 한다.

지난번 토요일 역시, 며칠 동안 씨름하던 일을 밀쳐두고 머리도 식힐 겸 동묘로 향했다. 빽빽하게 붐비는 지하철을 벗어나 출구를 빠 져 나오자 왁자한 소리의 물살이 공기를 가르며 밀려왔다. 빠르게 움직이는 걸음들 사이로 구두며 가방, 그릇들이 새 주인을 기다리며 얌전히 앉아 있다. 그렇게 물건들을 고르고 흥정하느라 복닥거리는 곳을 지나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요즘은 보기 힘든 축음기가 놓여 있
는 곳을 지나가던 순간이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 멈춰 섰다.
빨간 란도셀 가방. 어쩌면, 하얀 토끼가 커다란 앞니를 드러내며 웃고 있는 모습까지 똑 닮은 가방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다.


가방 양옆에 마치 핑킹가위로 잘라낸 것 마냥 지그재그로 되어있는 부분까지 똑같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외할아버지께서 등에 메어주시던 딱 그 가방이었다. 하얀 카라를 단 처음 입어보는 검은색 교복에 손수건을 직접 달아주시던 외할아버지. 너무도 흐뭇하게 바라보시던 그
눈길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학년이 바뀔 때면, 떼어놓았던 지나간 달력 종이를 뒤집어서 교과서마다 싸주시고는 약간씩 떨리는 글씨체로 외손녀 이름을 큼직하게 써주셨다. 란도셀을 메고 논둑길을 마악 달려 등교할 때나, 집으로 향할 때면 책가방 속의 그 책들이 왈가닥 거리는 소리가 얼마나 경쾌하던지. 그때는 태반이 책 보따리를 하고 다녔던 까닭에, 공연히 쑥스럽고 무언가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외가에서 자란다는 생각에 움츠려들던 마음을 그 빨간 란도셀 가방이 많이 다독여주지 않았던가 싶다. 아니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외할아버지의 넘치는 사랑이 있어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않았을까 싶다.

비단, 가방뿐만 아니었다. 책상에 앉아 필통을 열면, 뾰족하게 깎은 연필들이 가지런히 얼굴을 내밀었다. 외할아버지께서는 학교에서 쓰고서는 그대로 넣어둔, 잠자리가 그려진 노란색 연필을 저녁마다 도루코 면도날로 모두 깎아 넣어주셨다. 그 극진한 사랑이 지금까지도 나를
지탱해 주는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국어 1-1, 산수 1-1라고 쓰여 있는 교과서뿐만 아니라 국어, 산수라고 써진 공책 앞장에도 역시나 큼직하게 이름을 써주시고는 몇 번이고 들여다보셨다.

외할아버지께서는 온천장 논둑 옆으로 집을 두어 채씩 지어서 팔리면 다시 짓고 하셨던, 그 당시 표현으로 ‘집 장사’를 하셨다. 그 덕분에 외가에서 자라면서도 물질적으로는 풍족하게 자란 편이다. 그런데도 그 잠자리가 그려진 노란 톰보우 연필들이 닳아서 몽당연필이 되면 버리지 않고, 다 쓴 모나미 볼펜대에 끼워서 주셨다. 하기는 그때 개구쟁이들 중에는 누구의 몽당연필이 더 짧은지 서로 내기를 걸고 연필을 맞대보며 쉬는 시간을 온통 시끌벅적하게 만들었다. 어느 집이나 예외 없이 모두 근검절약하던 때였기에 그런 몽당연필도 놀이에 한몫을 하지 않았나 싶다.

돌아가신 당신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나 또한 두 딸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입장이 되었다. 지금은 둘 다 직장에 다니느라 그전만큼 사다 나르지는 않지만, 여전히 청소를 하다 보면 이 방 저 방 굴러다니는 샤프며, 네임펜이며, 볼펜들을 볼 수 있다. 이면지를 가져다 놓고, 한 번씩 그어보면 대개는 말짱하게 잘 써진다. 이 아까운 것들을 왜 잘 안 챙기고 굴릴까 하는 생각에 딸아이들이 안 쓰고 버려둔 필통에 차곡차곡 모으다 보니 필통이 두 개나 가득하게 차고도 남는다.

그것을 볼 때마다 스스로를 돌아보며 반성을 하게 된다. 딸을 둘이나 낳아 기른 엄마가 되어서도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께서 내게 보여주셨던 근검절약하는 모습이 아닌, 행여 소비를 가볍게 생각하는 그런 모습을 나 도 모르게 자주 보이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드는 까닭이다.

-상태 좋아요. 일부러 찾아다니는 사람들도 많은데 잘 안 나오더니 운 좋게 나왔네요. 싸게 드릴게.
가방을 이리저리 만지고 서 있는 나를 향해 돋보기안경을 코에 걸친 난전주인이 말을 건넨다. 가다가다 한 번씩 메어보자는 친구들에게 크게 인심이라도 쓰듯 잠시잠깐 메어보게 했던 그 가방은 사 학년 올라갈 때까지 메고 다녔었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고이고이 보물처럼 간직했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불쑥 나타나 나를 오랜 기억 속으로 불러들이고 있다. 어쩔 줄 몰라하며 서있던 나는 가방을 사라는 낯선 목소리에 다시 흰머리가 희끗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어떡할까…. 아니야, 미니멀 라이프라는데…ᆢ. 가방을 이리저리 다시 한번 만져보고 쓰다듬으며 나는 잠시 망설이다 돌아섰다.

그리움이란 마음속에 자리를 잡고서 시간이 지나가면서 스스로 자라나는 것이어서, 그 어떤 엇비슷한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저 란도셀 가방을 사가지고 가서 한편에 고이 모셔둔다면 그리운 날의 기억이야 문득문득 환기를 시켜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린 날의 내 것이 아닌, 다른 누군
가의 손때가 묻은 것인 것을…. ‘굳이 사가라고 붙잡지 않아 참 다행이야’ 하고 쉬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막 돌아서는 맞은편에 얼음이 동동 떠있는 빨간 수박주스를 팔고 있는 리어카가 눈에 뜨였다. 아쉽게 놓아버리고 온 빨간 란도셀 가방 대신, 그보다 훨씬 빛깔이 고운 빨간 수박 주스를 손에 쥐고 동묘 역을 향해 돌아섰다.

검정 칠판 대신 스마트 전자보드가, 연습장 대신 스마트 메모 패드가 대신하는 시대. 무거운 교과서 대신에 컴퓨터와 같은 터치 패드가 그 자리를 잡고 앉은 요즘 같은 시대에는 과연 어떤 형태로 그 넘치는 사랑을 표현할 수 있을까. 사랑의 본질이야 어떤 형태가 되던 변함이 없겠지만, 몇 시간을 마주 앉아 달력 종이로 책 커버를 해주시고, 일일이 면도날로 연필을 깎고 연필심을 너무 뾰족하지 않게 갈아 주시던 그 아날로그 방식의 사랑을 대신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묵직하게 아려오는 눈가로, 그 옛날 필통 속에 가지런히 누워있던 노란잠자리 연필들이 엷은 날개를 활짝 펴고 눈앞으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뱅뱅 맴을 그리며 날아가는 뒤로, 란도셀을 메고 달려가던 모내기 끝낸 푸르른 논둑길이 뭉게구름 사이로 출렁거리며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