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사진

by 전정희


-당신, 괜찮아?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던 사무실을 일주일이나 가지 않자 남편이 묻는다.
-괜찮아.
나의 짧은 대답에 더는 묻지 않는다.

이틈에 하자 하고, 벼루던 책정리를 시작한 지 이틀이 지났다. 불과 얼마 전에 책장 세 개 분량만 남기고 다 정리했었다. 그런데 그새 난리도 아니다. 두 줄씩 겹쳐 책을 꽂고도 책장 문 앞에 동개동개 쌓여 있다.
이러고 뭘 한다고, 차암. 속상한 건 둘째치고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든다. 사실 남편은 며칠 집 정리를 못하고 어수선 해도 크게 불평하지 않는다. 내가 먼저 '미안해.'
그러면 '뭐가 또?' 하며 웃는다.
-아, 너무 어수선하잖아. 정말 미안.
'난 또.' 하고 또 웃는다. 그 말을 듣고는 나도 멋쩍게 따라 웃고 만다.

원래 남편은 꽤나 까다로운 편이다. 그런데 좀 더 까다로운 여자친구를 만나서 조약돌처럼 둥글어졌다고 볼 수 있다. 고집도 세어서 이삼십 대에는 거의 매일 전투를 치렀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려면 지금처럼 휴대폰으로 할 수가 없었고, 컴퓨터를 켜야만 했던 시절.

둘이서 한참 논쟁을 하다 하다 안되면 여기저기 묻거나 근처 도서관으로 갔다. 거기서도 누가 옳게 알고 있는지 알아내지 못하면 컴퓨터를 켰다. 286XP. 이 컴퓨터는 MS-DOS를 사용해야 켤 수 있었다. 하드가 없는 컴퓨터였기 때문이다. 5.25인치 크기의 2장짜리 도스 디스켓이 있어야 부팅이 되었다. 부팅디스켓을 넣고 스르륵스르륵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까만 화면이 파랗게 될 때까지 기다리며 비로소 둘 다 차분해졌다.

내가 지난 이야기를 하며 '아, 정말 피곤했어.'라고 하면, '재밌잖아.' 하며 또 웃는다.
-사는 게 힘들었으니까 당신 재미있으라고 그랬지.
-무슨 재미는? 더 피곤했지.
말은 그렇게 하지만 내심으론 고맙다. 많이 부딪히고 일방적으로 이별 통보도 수없이 받으면서도 굳건히 곁을 지켜주었다.

오늘 책정리를 하다 빨간색과 초록 색의 색동 무늬가 있는 상자를 두 개 찾았다. 하나는 오래된 편지들이 담겨 있었고, 다른 하나는 앨범에 꽂지 않은 사진이 들어 있었다. 둘 다 화이트 상의에 연청바지를 입고 식물원에 앉아 있다. 제주로 신혼여행 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사진 속엔 앳된 이십 대의 설렘이 묻어난다. 사진 속 새신랑은 제주에 도착하여 양복상의를 벗고 와이셔츠 윗단추도 두어 개 풀고서야 모텔방을 구하러 갔다. 제주도민인 것처럼 보여야 비싸지 않게 방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하고서도 젊은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참 많이도 주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대개는 일방적일 때가 더 많았다. 몹시 아픈 말로 이별을 강요하곤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내 곁을 떠나지 않는 사람. 참 고맙다.

남편이 퇴근하고 오는 새벽을 기다리며 사진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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