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을 나가야하는 화요일 아침. 전화가 왔다.
"아, 이사장님, 저 지금 데모중인데요ᆢ."
"뭐를ᆢ 해요?"
"데모입니다."
한 십 초나 지났을까.
'전정희씨 귀엽네' 하는 말소리가 연한 웃음소리와 함께 들려왔다. '그래, 언제까지 데모할건데?' 하고 물으셨고, 나의 데모는 싱겁게 끝이 나버렸다.
"잘했어."
남편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당신 나이에 귀엽다는 말을 어디가서 들을 수 있겠어? 잘했어, 울 마눌."
하긴, 적지않은 나이임에도 문학단체이기에 꽤(?) 젊은이 취급을 받는다. '그 나이만 해도 아직 글 쓸 날이 창창하지.'하는 말씀을 가끔씩 듣기도 한다. 그런데 열 살의 나이차이를 차치하고라도 정말 언니 같기도 하고, 여학교 시절의 선생님 같기도 하신 분이시라 많이 조심스럽고 어렵다.
"저 봐, 밤비도 좋아라 하지! 할머니 데모 끝난 줄을 아는 게야."
"아, 뭐야. 재미있으셔?"
볼멘 목소리로 말은 하면서도 속으로는,
'어차피 늦었으니 오늘은 쉬고 목요일에 봅시다' 하셨으니 산책이나 가자 하고 밤비 목줄이며 물통을 챙겨서 남편과 집을 나섰다.
8월 날씨라 그런지 아침 나절인데도 벌써 후끈거린다. 그래도 환한 낮시간에 남편이랑 나란히 산책한다는 것이 그냥 좋다. 자주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니던 직장이 IMF로 인해 중국으로 옮겨가게 되자 따라가지 않고 몇 년 쉬다가 지금의 직장에 몸을 담은 남편. 그 때부터 시작한 야간근무를 여태껏 하고 있다. 어쩌다 낮에 외출했다 집에 와 자고 있는 그를 보면 말할 수 없이 마음이 아파왔다. 햇살이 이렇게 환한데 ᆢ.
그런데 이삼 일 쉬고 난 뒤라 그런지 밤비와 산책을 가자며 나선다. 다리 건너에 있는 공원에 도착하자 남편은 '밤비, 밤비.' 하며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기 바쁘다. 둘 다 말이 많은 편은 아니다. 그렇지만 오늘처럼 기분이 좋을 때는 남편이 나보다 훨씬 말이 많다. 올해로 만여덟살이 된 밤비는 체중이 3킬로대의 갈색 포메라니안이다. 우리집 가족들이 다 A형인데 밤비도 사람으로 따지면 A형이 아닐까 싶을만치 까칠하고 예민하다. 착하고 눈치도 빠르고 속도 깊다(?). 이 사랑스런 존재가 밤이 아닌 환한 낮에 셋이서 하는 산책에 무척이나 신나 한다. 낮시간엔 거의 나랑 둘이서만 산책을 다녔었다. 토끼처럼 깡총거리며 뛰는 모습이 마치 통통 튀는 공 같다.
그렇게 사진도 찍고 물도 마시고, 벤치에 앉아 쉬기도 하면서 우리 셋은 공원 끝까지 갔다. 가는 동안 여름해가 하늘 꼭대기까지 올라오고 끈적한 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목줄을 풀고 밤비를 안아올렸다. 오늘은 왈왈 짖는 친구들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밤비, 이제 우리 집에 가자. 집이 젤 좋지~?"
"할아버지, 할머니랑 집에 가서 씻고 간식 먹자~!"
작은 털뭉치를 가슴에 안고 그 팔딱거리는 숨소리를 들으며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 그가 하는 유쾌한 말소리가 그의 키만큼이나 커다랗게 뒤를 지키며 따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