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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피플 Dec 25. 2024

에필로그


용기를 내어 보낸 답장에 친구들이 한걸음에 달려왔다. 서울에서 안산까지 오려면 적어도 1시간은 넘게 걸리고, 일산에서 오려면 2시간은 족히 걸리는데, 정말 고마운 친구들이다. 친구들은 안산에서 제일 맛있다는 만두전골을 앞에 두고 내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줬다. 그림의 떡이 아니라 그림의 만두전골인 셈이었다. 그렇게 내가 그동안 얼마나 아팠는지를 말하다 보니, 만두전골은 금세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2년이 넘게 답장을 보내지 못했던 미안한 마음에 최대한 내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려고 애썼다. 그 사이 탱글탱글하던 만두는 흐물흐물해졌고 결국 '만두전골'은 '만두전'으로 해체되었다.


"그렇게 설명해 주면 난 다 이해해."


친구들이 하는 말을 듣고 나서야 내가 얼마나 이기적인 놈인지 깨달았다. 수술 이후 2년간 연락이 되지 않는 나를 두고 친구들 사이에서는 많은 말이 오갔다고 했다. 어떤 친구들은 잘 지내고 있을 것이라며 걱정하지 말자고 했고, 어떤 친구들은 건강이 나빠진 것 같다며 내 행방을 찾아보자고 했단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친구들에게 문자 한 통을 보내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을 알고도 보내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말하지 않아도 내 상황을 알아주는 사람이 친구라고 착각을 했던 것 같다. 무슨 친구들이 무당도 아니고, 말도 안하는 사람의 사정을 어찌 알겠는가. 친구들은 내가 영국에서 힘든 생활고로 잠수를 탄 것을 포함하면 이번이 투아웃이니 조심하라는 농담을 던졌다. 나는 그 농담을 웃어 넘기긴 했지만, 앞으로 친구들한테 만큼은 무엇이든 절대로 숨기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우리는 불어 터진 만두전골을 먹으며 옛날이야기를 나눴다. 함박눈이 내리던 날 눈송이를 택시에 던져 경찰서에 잡혀간 이야기, 여자 친구가 바람을 피웠다고 학교 창문을 주먹으로 부쉈던 친구의 사랑 이야기, 야간 자율 학습 시간에 몰래 노래방에 갔다가 담임 선생님에게 걸려 대걸레로 먼지 나게 맞은 이야기. 친구들과 학창 시절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김없이 시간은 거꾸로 흘렀다. 그 순간, 지금 이 시간이 내가 과거에 그토록 바라던 미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아무것도 못하고 침대에 누워서 천장만 보고 있을 때, 종종 친구들에게 온 문자들을 열어봤다. 그 문자를 보고 있으면 언젠가는 친구들과 다시 평범한 일상을 함께 나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예상보다 회복의 시간이 길어지자 어쩌면 다시는 그 평범한 일상을 누릴 수 없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불안하기도 했다. 그러니 지금 내가 그 상상만 하던 미래에 도착했다는 사실은 좀처럼 믿을 수가 없었다. 숟가락 위에 만두와 고기를 올리고 김치를 얹어 한 입에 베어 무는데, 문득 평범한 일상을 누리고 있는 지금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그건 화장실을 갔다가 마주친 친구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인아 우리 어제도 본 것 같지 않냐? 참 신기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고통의 터널을 건너고 있을 것이다. 먼저 고통의 터널을 지나온 사람으로서 응원의 말을 건네고 싶지만, 도무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위로와 응원의 말도 누군가에겐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더 조심스럽기도 하다. 당시 나도 그 고통의 터널이 정말로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 순간엔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분명히 좋아질 거야." 같은 말에 환멸이 났다. 터널의 끝에 조금이라도 빛이 보였다면 어떻게든 희망을 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 터널은 완전히 캄캄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가능하다면 내 전재산을 주고서라도 시간 여행을 하고 싶을 뿐이었다. 지금 당장 미래로 가서 이 고통스러운 시기를 끝내고 싶었으니까. 그러나 이 세상에는 아직 미래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인공지능 비서와 자율주행 자동차 등 상상만 하던 일이 현실이 되는 최첨단 과학 시대라고 하는데, 왜 시간 여행은 아직도 개발되지 않고 있는걸까.


사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숨겨둔 비밀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과학자들도 발명하지 못한 시간 여행을 하는 방법을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 방법으로는 돈이 한 푼도 없는 사람도 빠르게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국가, 나이, 인종, 성별, 언어 등 그 어떤 것도 제한이 되지 않기 때문에 누구든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방법이다. "에이, 세상이 그런 게 어딨어요?" 라며 의심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직접 그 방법으로 이 현재에 도착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어디 가서도 들을 수 없는 나만 아는 시간 여행 비법이니 눈을 크게 뜨고 보길 바란다. 그 방법은 바로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물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고통의 터널 안에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어렵다. 모든 것이 내가 잘못해서 일어난 것 같아 나를 미워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런 사람들은 보통 모든 일상이 지루하고 무료하며 시간은 느리게 흐를 것이다. 그럼에도 나를 사랑한다면 어떨까? 상황은 완전히 바뀐다. 나는 나를 사랑하기 시작한 이후로 모든 일상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밥을 먹으면서 하는 젓가락질 조차도 재미가 있었고, 운동을 하면서 느껴지는 호흡과 근육의 움직임에 살아있음을 느꼈으며, 책을 읽고 독서 모임을 하면서 쌓여가는 지식과 경험은 내게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이 모든 일상적인 순간들이 의미 있게 느껴진 것이다. 그렇게 내 일상을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우다 보니 하루하루가 순식간에 지나갔고, 어느 순간 고통의 터널에서 빠져나온 내가 보였다.



현대 미술은 과거의 그 어떤 미술보다 새로운 시각적 충격을 주려고 합니다.

정서연 _ 요즘 미술은 진짜 모르겠더라


정서연 작가는 현대 미술가들은 사람들에게 시각적 충격을 주는 것을 동기로 삼고 있다고 했다. 가령, 마르셀 뒤샹이 <샘>이라는 제목으로 남성용 소변기를 전시해 사람들에게 시각적인 충격을 준 것처럼 말이다. 소변기도 미술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신선한 발상은 현대 미술의 정의를 뒤 흔들어 놨고, 마르셀 뒤샹은 현대 미술의 아버지라는 타이틀을 안고 미술계의 거장이 되었다. 나에게는 음악이 마치 현대미술처럼 청각적인 충격을 줬다. 그리고 그 충격은 관성적으로 흘러가는 내 인생을 멈춰 세웠다. 음악은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지옥 같은 일상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했고, 일상 속 사소한 햇살과 바람마저 감사하고 소중하게 만들었다. 나아가 음악은 내가 혐오하던 나 자신을 다시 보게도 했다. 음악을 통해 천천히 들여다본 나는 제법 귀여운 면이 숨어 있었다. 그렇게 나는 음악으로 내 일상과 나 자신을 다시 사랑하게 되었다. 


통증은 없을 수도 없고, 없앨 수도 없고 하니까 담아놔요, 그냥.
이것도 내건데. 그런데 말이에요. 나중에 보면 거기서 심지어 향기도 나요.
그런 것들이 자기를 풍요롭게 만들 거에요. 

김창완 인터뷰


지금도 통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아직 고통의 터널 속에 갇혀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제는 통증이 터널이 아니라 그림자 같기도 하다. 세상의 빛을 완전히 차단하는 터널이 아니라, 세상의 빛이 내 몸을 통과하면서 생기는 그림자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내가 좋아하는 김창완전소중한 아저씨도 비슷한 말을 했다. 통증을 반가워 할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그 통증도 내거라는 말이다. 마음 한 켠에 작은 방 한 칸을 내어주고, 통증을 오랜시간 담아두면 향기가 난다고 자랑을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는 처음에는 어이가 없었다가 나중에는 기어코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내 트라우마가 담긴 이 <음악의 제곱>에도 좋은 향기가 나고 있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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