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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피플 Dec 19. 2024

달리기 좋았지

가을 운동회를 앞두고 팔이 부러졌다. "쫄았지?" 팔이 얼마나 아픈지도 모르면서 다짜고짜 놀리는 친구들이 얄미웠다. 친구들은 깁스를 하고 있는 나를 보고도 걱정을 하기는커녕, 장거리 달리기에 나가지 않아도 되는 좋은 핑계가 생겼다며 비꼬았다.


나는 사실 중학교 3년 내내 장거리 달리기만큼은 1등 타이틀을 한 번도 놓친 적이 없었다. 그래서 고등학교로 올라가서도 당연히 1등을 할 줄 알았지만, 마라톤을 전문적으로 배우는 친구가 있어 1등을 넘겨주게 되었다. 당시 나는 5등을 차지했는데 2학년 선배들과 함께 뛰는 시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것도 만족스러운 성적이었다. 정작 내 성적을 받아들이지 못한 건 내가 아니라 친구들이었다. 내가 장거리 달리기 1등을 하지 못한 건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나 뭐라나.


그렇게 1년이 지나 가을 운동회가 돌아왔다. 학교의 모든 관심은 나와 그 친구의 달리기 대결로 쏠렸다. 물론 나도 올드보이의 오대수처럼 군만두의 힘으로 멋지게 복수를 해내는 주인공이 되고 싶었지만, 깁스를 하고 있는데 어떻게 장거리 달리기에 출전할 수 있겠는가. 친구들은 그런 내 속을 모르는 건지 성질을 박박 긁었다. "인이 너 1등 못할 것 같아서 일부러 다친 거지?" 라며 말인지 방귀인지 모를 소리를 늘어놨다. 나랑 조금이라도 친한 친구라면 내가 승부욕이 얼마나 강한지 모르고 있을 리가 없었다. 도전도 하지 않고 미리 포기를 하는 건 내게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친구들은 그런 나를 너무 잘 알고 내 승부욕에 기름을 부었다. 결국 나는 잔뜩 약이 오른 상태로 장거리 달리기에 출전했다.


사실은 나도 내가 깁스를 하고 얼마나 달릴 수 있을지 궁금했다. 깁스 따위가 나에게 그 어떤 장애물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나는 그렇게 운동장 15바퀴를 전속력으로 달렸다. 달리는 내내 단 1초도 쉬지 않았다. 그 순간 나에게 내일은 없었다. 그저 목구멍으로 차오르는 호흡을 최대한 가다듬고 발을 차례대로 구르는 일에만 집중했다. "할 수 있어. 인아, 너 진짜 할 수 있어."라는 말을 되뇌며 계속해서 나를 다독였다. 처음 속도 그대로 끝까지 달리는 나를 보며 사람들은 처음엔 환호성을 지르다 나중엔 경악을 했다. 관중석에 앉아 있던 친구들의 아주머니들은 손으로 입을 막고 나의 안녕을 묻기도 했다. "인이 괜찮은 거니?" 그렇게 1등으로 결승선에 도착하니 사람들의 박수 소리와 함께 하늘이 노래졌다. 나는 그대로 양호실로 실려갔고, 침대에 누워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인아, 너 1등 상 내가 대신 받았다!"



허리 수술을 하고 병실로 돌아오니 가장 먼저 이런 생각이 났다. "아, 이제 달리기는 평생 못하겠네." 골반의 뼈를 잘라내고 미세 현미경을 집어넣어서 허리 디스크를 제거했으니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침대에서 누워 있던 몸을 똑바로 일으켜 세우는 일도 힘들었다. 허리 보호대를 착용하지 않으면 상체와 하체가 뒤틀릴 정도로 흔들렸다. 심지어 밥을 먹기 위해 앉아만 있는데도 힘을 빼는 순간 허리가 휘청거렸다. 당시 내 몸은 블록 하나만 빼도 당장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젠가처럼 불안정했다. 발걸음 하나를 옮기는 일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침대에서 화장실로 가는 길은 한국에서 영국으로 가는 길만큼 멀게 느껴졌고, 그렇게 조금만 움직이고 나면 온몸에 땀이 줄줄 흘러 진이 빠졌다. 달리기는 고사하고 걸을 수나 있으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나는 평생 달리기를 할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나에게 달리기를 할 수 없다는 말은 달리기만 할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그건 내가 원하는 삶을 향해 더 이상 달려 나갈 수 없다는 말이었고,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자유를 잃어버렸다는 뜻이었다.


그럼에도 내 삶이 멈추진 않았다. 야속하게도 시간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고 더욱 빠르게 흘렀다. 침대에 누워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상황도 변하지 않을 테니까.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지금의 나를 인정해야 했다. 달리기를 할 수 없는 나, 걷는 것도 힘든 나를 받아들였다. "인아, 그게 너야." 나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달리기를 완전히 포기했다. 그리고 갓난아이처럼 걸음마부터 다시 시작했다. 처음에는 워커(Walker)라는 보조 기구를 잡고 걸었고, 다음에는 부모님의 손을 잡고 걸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인 걷기만큼은 절대로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매일 걸었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덥든, 춥든, 날씨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1년을 걷고 나니 어떤 보호 장치 없이,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다음은 수영이었다. 수영은 물에서라도 달리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했다. 처음에는 25m를 가는 일도 버거웠다. 물속에서 호흡을 참는 것도 힘들었고, 손상된 신경 때문에 손과 발은 엉뚱하게 움직였다. 그럼에도 매일 하다 보니 이제는 1500m도 거뜬할 정도로 몸이 회복됐다. 다음은 글쓰기였다. 글쓰기는 정말로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저 빈 페이지라도 거침없이 손가락으로 달려 나가고 싶었다. 그런데 글쓰기는 다른 어떤 일보다 일상을 회복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내 안에 있는 트라우마를 세상 밖으로 꺼내고 나니 눈에 보이기 시작해 더 이상 두렵지 않았고, 그런 나를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11월 어느 날, 산책로를 걷는데 발에서 간지러운 느낌이 났다. 발바닥에서 새싹이라도 돋아나려는 것 같았다. 왠지 발걸음을 힘차게 구르고 싶어졌다. 한 걸음, 두 걸음, 평소보다 발을 더 세게 내딛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 순간, 나는 달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바람이 몸에 사정없이 부딪혀 펄럭이는 소리가 나는 걸 보니 내가 달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달리는 일은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얼마 전만 해도 허리 보호대 없이는 걷기도 힘든 나였으니까. 하지만 멈추고 싶지는 않았다. 어쩌면 이제는 정말 앞으로 달려 나가야 할 시간이 된 것 같았다. 저 앞에 보이는 구름다리까지만 달리자고 다짐했다.  

힘껏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지만, 몸은 마치 모래주머니를 단 듯 무거웠다. 그래도 계속 달렸다. 달리기를 하니 눈이 번쩍 떠졌다. 넘어지지 않으려면 눈을 크게 뜨고 앞을 봐야 했다. 그제야 내가 눈앞에 두고도 놓치고 있던 멋진 풍경들이 선명히 들어왔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발을 차례대로 내디뎌야 했다.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달리기에 집중하다 보니 정신이 맑아졌다. 그 순간 내가 얼마나 현재를 외면하려고 발버둥 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달리기를 하는 순간엔 누구나 영락없이 현재를 살아야 했다. 달리기는 과거에도 할 수 없고 미래에도 할 수 없었다. 어쩌면, 나는 그래서 달리기를 좋아했던 것 같기도 하다. 달리는 순간엔 오롯이 현재의 나로서 살아갈 수 있으니까. 나는 달리는 내가 참 좋았다. 그렇게 뛰다 보니 어느새 목표 지점에 도착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득 얼굴에 바람이 스치고 지나가는데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는 물방울이 귀 뒤로 날아갔다.


나를 다시 달리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18개월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걸었던 것이 나를 달리게 한 걸까. 아니면 6개월을 누구보다 열심히 수영을 한 것이 나를 달리게 한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지금 이렇게 쓰고 있는 글이 나를 달리게 한 걸까. 물론 그 모든 것이 내가 달리는데 도움이 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결국 나를 다시 달리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나다. 내가 그토록 싫어하던 나 말이다. 왜 수술하기 전의 나처럼 살지 못하냐고 스스로를 증오하고, 왜 젊은 시절의 나처럼 건강하지 못하냐고 스스로를 원망하던 나. 그런 나라도 나였기에 지금의 내가 달릴 수 있게 된 것은 아닐까. 나는 나조차도 나를 믿어주지 못해 미안하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살아준 나에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나는 지옥 같은 나를 구해줄 누군가를 기다린 적도 있었다. "제발 앞으로 착하게 살 테니 저 좀 살려주세요." 매일 오지도 않을 누군가를 기다리며 기도했다. 그러다 응답이 없으면 욕을 하고 화를 내며 울부짖었다. 그렇게 얼마나 긴 시간이 지났을까. 결국엔 정말로 누군가 나를 구하러 왔다. 그건 바로 다른 누구도 아닌 나였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이 세상에서 나를 구할 수 있는 건 나 밖에 없다는 걸. 그러니, 어찌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제는 매일을 달린다. 11월부터 달리기를 시작했고, 매주 500m 씩 달리는 거리를 늘리고 있다. 11월 1주 차는 처음으로 2km 를 달렸고, 2주 차는 2.5km 를 달렸다. 달리고 나서 아침에 통증이 없는 걸 보면 몸이 많이 회복된 것 같다. 그래서 3주 차에는 3km 를 달렸고 4주 차부터는 3.5km 를 달리고 있다. 어제는 달리기를 하는데 건너편에서 달리기를 하는 사람이 보였다. 우리는 달리는 속도가 비슷해서 가운데에 안산천을 두고 평행사변형을 그리듯 나란히 달렸다. 앞을 보고 달리다가 종종 옆을 보면 그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그럼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을 들어 화이팅을 외쳤다.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 옆에서 함께 뛰어주니 신이 났다. 발걸음이 평소보다 훨씬 가벼워진 기분이 들었다. 그럼에도 목표한 3.5km 가 넘어가니 숨이 확 차올랐다. 오늘은 건너편 사람이 멈추기 전까진 더 뛰고 싶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할 수 있어, 인아. 정말이야! 널 믿어."라고 외쳤다. 나를 향한 응원이 마음에 닿아 벅찬 느낌이 들었다. 곧이어 건너편 사람이 멈춰서 인사를 하더니 이내 사라졌다. 달리기를 끝내고 기록을 보니 4km가 찍혀 있었다. 참 신기한 일이다. 혼자하면 어려운 일도 함께하면 이렇게나 수월하니 말이다.


내게 불었던 바람들 중에
너는 가장 큰 폭풍이었기에
그 많던 비바람과
다가올 눈보라도
이제는 봄바람이 됐으니

권진아_운이 좋았지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마치고 따뜻한 물을 데웠다. 루이보스 바닐라 차를 우려 마시며 무엇을 들을까 고민하다 <운이 좋았지>를 틀었다. 다시 달리기를 시작한 오늘은 정말로 운이 좋은 날이니까. 이 음악은 이별한 사람을 떠나보내는 마음을 가사에 담고 있다. 권진아는 떠나간 사람을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맙다고 인사를 건넸다. 당신은 내게 가장 큰 상처를 준 커다란 폭풍이었지만 그 폭풍 마저도 결국엔 따뜻한 봄바람이 되었다고 노래했다. 그런 당신 덕분에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그런 당신 덕분에 더 단단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이별한 사람도 없으면서 이 음악이 내 이야기처럼 들렸다. 내가 과거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처럼 읽혔다. 나도 권진아처럼 나를 괴롭히던 통증과 강박, 그리고 불안과 불면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보내고 싶어졌다. 그렇게 하면 정말로 그 모든 상처들과 이별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당신은 정말 지독하게 나를 괴롭혔고 미치도록 나를 몰아세웠다고. 그래도 당신 덕분에 나는 더 건강한 사람이 되었고, 당신 덕분에 더 나다운 사람이 되었다고 노래했다. 그 순간, 여자 노래라 키(key)도 맞지 않으면서 열렬히 따라 부르는 내가 조금 귀여운 것 같았다. 어쩜 이리도 사랑스러운 인간이 있을까. 내가 나로 살아갈 수 있다는 건 정말로 운이 좋은 일이었다.


처음은 엄마 뱃속에서 태어났다면, 두 번째는 알을 깨고 다시 태어난 것 같다. 그 알은 내가 수술을 하면서 나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처음에는 나를 보호하려고 만든 알이 사실은 나의 숨통을 조이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그 사실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세상 밖으로 나가기에는 너무 약한 존재 같아 계속해서 숨기만 했다. 오늘 달려보고 나서야 확실히 깨달았다. 나는 하나도 약하지 않았다. 아니 단 한 번도 약한 적이 없었다. 약한 사람이 어떻게 깁스를 하고 장거리 달리기에 우승을 할 수 있겠는가. 강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 큰 수술을 하고도 이렇게 다시 달릴 수 있겠는가. 나는 이제야 비로소 무엇이든 혼자서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러나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싶다. 이 넓은 세상을 혼자 외롭게 살아갈 필요는 없으니까. 그렇게 나는 오늘 처음으로 이어폰을 내려두고, 음악 너머의 세상으로 첫걸음을 내딛었다.



띵동,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4월 서울 하프 마라톤 참가 신청이 완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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