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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선 Mar 02. 2023

어머니  

내 일상에로의 초대(2022.2.6)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고향에 와서 내가 자란 집에서 오랜만에 어머니와 이틀을 함께 잔다.


그전 한 보름 여를 우리 집과 막내동생 집에서 보내시고, 설을 우리 집에서 보내시고 나서 지난 수요일에 막내동생이 고향집으로 모셔다 드린 후,  혼자 어떻게 지내실까 늘 마음이 노심초사였다.


이제 집 나이로 여든 아홉이 되신 어머니는 여전히 홀로 사시길 원하신다. 모시고 함께 살기를 내가 노래를 부르지만 아랑 곳 없으시다. 나도 그런 어머니가 시골에서 올라오셔서 아파트에서 감옥살이(?) 하실까 두려워서 감히 무리를 할 수 없다.


이제 치매 기운도 더욱 완연해지셔서 하루에 같은 것을 여러 번 물으신다. 금방 앞에서 한 일도 잊어버리신다. 이제 경도인지장애를 넘어서신 모습이다. 거기다 동맥류와 동맥경화 증세도 있으시다. 그러니 늘 걱정이다.


그러나 어머니가 원하시는 대로 좀 더 사시도록 하는 게 그나마 불효자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해서 지금도 어머니가 고향집에 사신다. 텃밭에 채소도 키우시고 자신의 마음대로 교회에 가셔서 사람들도 만나시고 예배도 드리시기에 어머니 입장에서는 더 마음에 드시나 보다.


그런 어머니가 설 세고 내려오신 후 둘째 동생이 성묘 왔다가 사다 드린 생선초밥을 드시고 갑자기 배탈이 나신 것이다.


스포츠센터 사우나에 있는데 막내동생이 이 소식을 갑자기 전해서 급히 와보니 요양 보호사 님이 병원에 모시고 가서 진료를 받고 옆집 농방 집의 젊은이가 차로 모시고 가고 모셔오는 일을 했다.


우리는 아들들이지만 다 객지에 떨어져 있다 보니 이웃과 도우미 분들이 아들들보다 어머니에게는 더 나을 때가 많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늘 마음에 송구함이 그분들에게 있다.


겨우 위경련이 진정되신 어머니는 눈도 못 뜨신 채 곡기를 끊으시고 누워계신데 그 와중에도 아들이 저녁 굶을까 봐 저녁을 준비해 놓으셨다. 그 모습을 뵈면 늘 마음에 아련한 슬픔이 있다. 그 사랑이 너무나 깊어서, 그 사랑이 너무 희생적이서 그렇다.


흰 죽물을 해서 겨우 입을 축이시게 한 후 약을 드렸다. 그러고 나서 여러 잔소리를 늘 그런 것처럼 주절거린다. "어쩌자고 일도 없는 겨울에 집으로 오셔서 그렇게 금방 탈이 나시느냐?" "저하고 우리 집으로 다시 가시자."....어머니는 한 마디 하신다. "아범, 걱정하지마, 내가 오늘 지내고 나서 내일까지 먹지 않고 지내면 이제 가라앉을 거야. 내일은 집으로 가. 뭐하려고 왔어. 저녁 먹고 내일 아침에 올라가게."


에 어머니의 잠결 신음소리를 들으면서 잠을 여러 번 깨다가 아침이 되어 함께 우리집으로 가시자고 권해 보지만 요지부동 이시다. 돌아 누우신 늙으신 어머니의 어깨가 너무 작아 보이시니 안타깝기만 하다.


다행히 주일 하루를 지내시면서 말씀대로 차츰 회복되어 가신다. 죽물을 드시고 저녁에는 잠도 조금은 편안해지신 듯하다. 고르게 쉬시는 어머니의 숨소리를 들으며 안도하게 된다. 내일은 링거를 주사해서 잡수시지 못한 채 어려워지신 섭생을 보강해 드리려고 한다.


주일 저녁에는 그래도 조금 회복되신 것 같으니 안도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눈에 텔레비전 화면이 들어오고 무엇을 말하는지가 들린다. 어제 저녁만 해도 하나도 보이지 않던 들리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들리는 것을 보면서 다시 일상으로 내가 복귀하는 것을 알게 된다.


사실 은퇴를 하고 나서 가장 마음에 둔 일 가운데 하나가 홀로 남으신 어머니와 함께 지내는 일이었다. 이제 얼마나 더 함께 지내시겠는가? 나 때문에 마디지신 손가락들과 거친 손, 구부러지신 허리, 이제는 뼈만 앙상하신 팔과 다리, 얼굴에 깊이 패인 주름들을 바라다보면 안타까움과 함께 깊은 감사가 절로 나온다. 그 모든 어머니의 모습이 내게는 놀라운 아름다움이다. 거기 인간 존재의 이유가 그대로 있기에.


이 주일 저녁 잠드신 이제 아주 왜소하고 작아지신 모습을 바라보며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어머니가 계셔서 너무 행복하다. 어머니가 계시기에 아직도 나는 아이이기 때문이다. 벌써 나이가 예순 다섯이나 되었지만 여전히 어머니의 품 안에 사는 아들이다. 그래서 행복하다. 이 세상에 내 일거수 일투족을 세밀하게 보시고 늘 안타깝고 살갑게 아들로 챙기시는 어머니가 여전히 날 돌보시고 계시기에.


이번 설에도 어머니는 "아범, 이거 얼마 안되지만 받아. 밥 사먹어."하고 세뱃돈을 주신다. 사양하자 늘상 그러신 것처럼 "이젠 자네 돈 벌지 않잖아."라며 다시 내미신다.


오늘 저녁 그렇게 주신 세뱃돈을 다시 한번 꺼내본다. 내가 여전히 사랑받는 아들임을. 어머니가 계시기에 이런 사랑을 받음을 이 깊은 저녁에 감사함으로 되새긴다.


이게 내 저물어가는 인생의 보배임을 생각하니 오늘도 너무나 감사한 하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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