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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선 Aug 06. 2024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지도자는

논객.com, <세상 돌아보기> [이주선 칼럼]


인류 역사에서 처음 발생한 제도는 아마 시장일 것이다. 자발적인 거래가 서로에게 유리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거래는 물물교환으로부터 시작되어 이커머스(e-commerce)로까지 진화했다. 아마 처음 물물교환의 거래 범위와 한계는 가까이 사는 사람들끼리 의식주 관련 일부 물건을 바꾸는 데 불과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점을 사람들이 금세 알게 되었을 것이므로 그 제도적 확산은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졌을 것이다.


그런데 교환 거리와 품목 수의 증가에 따른 거래비용(transaction cost) 증가는 결국 거래 제약 요인이 되었다. 이를 타개하는 수단으로 ‘돈’이 등장하여 지금까지 거래의 핵심이 되어 왔다. 그리고 마침내 인터넷과 사이버 공간이 거래를 전 세계로 연결하여 아마존·구글·애플·메타·알리·테무·쿠팡 등이 상거래를 좌지우지하는 디지털 플랫폼으로까지 진화가 이루어졌다. 이렇게 물물교환에서 가상공간으로 시장의 영향력 진화가 계속된 이유는 그것이 참여자들에게 보편적으로 큰 이익을 주기 때문이었다.


한편 인류가 심지어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라고 불릴 정도로 지배적 지위에 도달하는 데 기여한 또 하나의 제도적 핵심은 ‘국가 또는 정부’(이하 ‘정부’)라는 조직(organization)이다. 인류가 처음 지상에 출현한 후, 다른 종들과의 생존경쟁 과정에서 정부라는 조직이 태동했음이 분명하다.


사람은 동물 중 신체적 취약성이 가장 큰 존재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 스스로 할 수 있는 유일한 게 어머니 젖을 빠는 것이다. 심지어 그조차 어머니가 젖꼭지를 입에 물려야 한다. 또 걸음마를 시작하는 데만 1년여가 필요하다. 스스로 먹이를 구하는 것은 더 장구한 세월을 요한다. 이는 송아지가 낳자마자 일어서서 즉각 어미의 젖을 찾아 스스로 빨고 얼마 되지 않아 풀을 뜯는 데 비하면 엄청 열등하다. 또 사람은 맨피부로 태어난다. 다른 동물들이 털로 덮여 태어나 스스로 보호할 수 있는 데 비하면 이 또한 큰 약점이다. 더구나 다른 맹수나 짐승보다 빠르거나 싸움을 잘하지도 못해서, 스스로 보호할 수 있는 육체적 힘도 강하지 못하다.


이런 약점 아래서 생존을 위해 사람은 본능적으로 군집·밀집해서 협력하는 것을 택했으리라. 사람이 ‘사회적 동물(social animal)’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설파는 그래서 사람의 본질 설명의 핵심이다. 이렇게 사회를 이루어 자신의 생존을 보장받으려는 사람의 인센티브는 씨족·부족사회를 거쳐, 빠르게 정부라는 ‘계급질서(hierachy)’로 진화했다. 이러한 계급질서의 확장과정 또한 사람들이 스스로 이익을 확대하려고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이다. 물론 정부를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택했다는 주장에 반대할 수 있는 다양한 역사의 기록이 존재한다. 전쟁을 통한 정복과 지배, 착취와 억압 등이 정부라는 조직의 전형적 행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도 정부라는 계급질서에 입각한 조직이 백해무익하다거나 불필요하다고 결론 내지는 못한다. 오늘날처럼 개인의 자유·권리·선택이 거의 최대한인 시대에도 개인의 안전·평화·번영 보장의 기반수단으로 사람이 찾아낼 수 있는 게 정부를 통한 집단적 안보와 사회질서 유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에게 두 제도가 모두 이렇게 이익을 주는데도 불구하고, 시장과 정부는 그 작동과 결과에서 트레이드-오프(trade-off)를 보이는 경우가 빈번하다. 그래서 “시장이냐, 정부냐”에 대한 수많은 논쟁이 있다. 이런 상태에서 경제학은 가격으로 거래가 가능한 경우 각자 시장활동으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으므로, 이에 다른 사람이나 정부가 개입하는 것이 불필요하다는 데 기반하고 있다. 즉, 시장가격으로 물건이나 서비스가 교환될 경우를 ‘최상(first-best)’으로 본다. 그러므로 정부의 기능은 시장거래로 해결이 불가능하거나 비효율적인 것들에 대한 조달에 국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이 경제학의 시장과 정부의 경계에 대한 주장은 오늘날 많은 도전을 받고 있다. 이 도전의 핵심에는 시장과 정부의 작동에 대한 사람들의 불신이 있다. 전자는 시장이 소득과 부의 불평등을 초래하는 근원이며 약육강식이라고 비난한다. 후자는 정부가 시장의 효율성을 침해하고 불평등을 더 강화함은 물론 자유와 권리와 선택을 제약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주장들은 외눈박이의 것이다. 시장도 정부도 다 협력으로 사람의 생존과 번영을 지구라는 영역에서 최고위 포식자로 누리게 한 핵심 제도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다양한 형태의 시장과 정부가 지나갔고 그 평가도 다양하다. 그러나 인류가 시장과 정부를 떠나서 번영한 때는 없었다. 그러므로 지금 국내외 정치·경제 상황이 너무 복잡하고 소모적인 양태를 보일지라도 우리는 시장과 정부의 경계에 대한 보다 합리적인 조정으로 이 상황을 타개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대개 역사는 좌파든 우파든 전체주의적 반시장적 상황을 강화하는 이데올로기에 경도되면 보다 많은 사람이 삶에 고초를 겪었다. 번영과 평화, 자유와 혁신은 축소되거나 사라지고, 정체와 전쟁, 억압과 퇴보가 나타났다. 21세기 전반부 4반세기를 지나가는 지금, 우리는 이런 전체주의적 역사의 반복을 걱정하는 기로에 서 있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이를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에 대한 방책을 가진 사람들이 지도자로 나타나는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이런 지도자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앙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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