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없는 걱정을 가끔 한다. 십 대 때 기우 중 하나는 화장실에서 하게 되었다. 화변기가 설치된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 있노라면 가끔 ‘물기 있는 타일에 발이 미끄러져 주저앉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을 했었다. 그런 걱정 때문이었을까. 화변기에서 일을 볼 때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다리에 힘을 더 주는지 다행스럽게 아직 단 한 번도 그런 걱정은 현실화하지 않았다.
이십 대 때는 이런 걱정을 했다. 나는 ‘나름’ 동안형 얼굴이‘었’고, 사람들은 나의 실제 나이보다 대여섯 살 정도 어리게 보곤 했다. 신빙성을 높이기 위해 실례를 몇 가지 들자면, 대학생 시절 과외 때문에 문제집을 살 때 서점 주인이 내가 중학생인 줄 알고서 학생 할인을 해주었다. 또 내 나이 스물아홉에 알게 된 동생들이 나를 막 편하게 대하기에, 원래 이 친구들은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격의 없이 편하게 대하는 개방적인 친구들인가보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자기들보다 어린 스물세 살의 동생인 줄 알아서 그랬다며 사과를 하는, 뭐 누구에게나 한 번쯤 있는 기분 좋은 일들이 나에게도 있었다.
이십 대 동안 줄곧 동안이라며 착각하고 살던 어느 날, 나는 인류사에 남을 정도로 말도 안 되는 걱정을 진심으로 진지하게 했었다. ‘나이가 들어도 이 얼굴 그대로 어리게 생기면 어떡하지?’ 정말 대단한 기우다. 그때의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나는 서른이 되자마자 얼굴에 ‘삼십 대’라고 적어둔 것 마냥 누가 봐도 삼십 대의 얼굴을 하고 있었고, 매일 거울 속 마주하는 얼굴이 그때의 걱정은 내가 한 기우 중 으뜸가는 기우였다고 굳이 하루하루 증명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