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기다려온 그의 발렌시아가 쿠튀르 컬렉션이 공개되다
발렌시아가 하우스에 집중하기 위해 자신의 브랜드인 베트멍을 떠난 뎀나 바잘리아. 기성복 컬렉션은 물론 동시에 쿠튀르 컬렉션까지 선보이기 위해서 시간과 집중을 필요로 했던 그에게 자신이 만들어낸 레이블인 베트멍을 떠나는 것이 정말 어려운 결정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언젠가는 해야만 할 일이 조금 일찍 자신에게 찾아온 것이라고 말했죠. 그렇게 우리에게 제공된 발렌시아가의 쿠튀르 컬렉션은 숨죽이며 기다려온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여러 의미로 말이죠. 원래대로라면 지난 2020년 가을·겨울 시즌을 통해 공개되어야 했지만 팬데믹 사태로 인해 취소가 되었고 뎀나 바잘리아는 2021년 가을·겨울 시즌에 맞춰 디자인을 새롭게 수정해야만 했습니다.
그는 하우스의 쿠튀르 라인에 다시 불을 지핀 이유를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가 쌓아온 유산에 대한 의무감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동시에 고객들에게 최고 수준의 제품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발렌시아가라는 역사적인 하우스에 다양한 비전을 가져올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죠. 또한 우아함과 정교함에 대한 확실한 개념을 제공하고 순수한 예술을 담아낸 작품인 동시에 현대적인 패션 디자인의 생존과 발전에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쿠튀르의 존재성을 강력하게 느낀 뎀나 바잘리아는 자신의 첫 번째 쿠튀르를 많은 사람들이 보고 즐기길 원하고 있습니다.
다양하고 자유로운 창의성을 상징하는 쿠튀르 디자인은 뎀나 바잘리아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일이기도 합니다. 그 일을 발렌시아가 하우스를 통해 선보일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감을 감추지 못했을 정도죠. 현대적이고 현실적인 방법으로 패션 업계에 부흥을 가져다줄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그의 결과물은 어땠을까요? 53년 만에 다시 부활한 발렌시아가의 쿠튀르 컬렉션에 대한 이야기를 이번 컨텐츠를 통해 자세히 만나보세요.
뎀나 바잘리아가 선보이는 발렌시아가의 가을·겨울 시즌은 항상 종말론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2020년에는 불길이 천장을 가로지르고 모델들은 물이 가득 찬 바닥을 걸으며 종말에 가까워진 세상의 모습을 담아냈죠. 하지만 이번 쿠튀르 컬렉션의 가을·겨울 시즌은 평소 그의 모습과는 달랐습니다. 하우스의 설립자인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의 오리지널 살롱을 새롭게 꾸며낸 런웨이 무대는 깨끗하게 정돈된듯한 분위기의 카펫이 깔려 있었으며 그가 가장 좋아했던 빨간 카네이션을 관객들이 앉을 의자에 부착시켰죠.
53년 만에 다시 선보이는 발렌시아가의 쿠튀르 컬렉션인 만큼 프런트 로우에는 셀러브리티들로 가득 찼습니다. 안나 윈투어와 로렌 산토 도밍고 그리고 벨라 하디드와 같은 패션업에 종사하는 이들은 물론 제임스 하든과 루이스 해밀턴 같은 스포츠 스타도 발렌시아가의 쇼를 보기 위해 모였죠. 그리고 익명의 누군가도 이곳을 찾았습니다. 실크 스카프로 얼굴을 모두 가린 한 남자가 가드들의 경호를 받으며 쇼장에 입장했죠. 그는 칸예 웨스트가 아디다스와 함께 제작한 폼 러너와 갭과 함께 한 재킷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가 칸예 웨스트였다는 것을 말이죠.
최근 몇 시즌 동안 뎀나 바잘리아는 람슈타인과 루폴과 함께 컬렉션 무대에 깔릴 음악을 함께 만들어왔습니다. 저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번 쿠튀르 컬렉션 또한 이들과 함께 음악을 만들 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이번 쿠튀르 쇼는 관객들이 누르는 카메라의 셔터 소리와 목청을 가다듬는 소리 그리고 모델들의 걷는 소리만 들렸을 뿐 그 어떤 음악도 재생되지 않은 채 진행됐죠. 사실 이 부분은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의 예전 쿠튀르 쇼를 상기시킬 뎀나 바잘리아의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관객들은 의상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죠.
사실 뎀나 바잘리아의 쿠튀르는 그동안 그가 선보였던 기성복 컬렉션과 크게 다른 점이 없었습니다. 유니크한 실루엣으로 만들어진 테일러드 슈트와 뒤틀린듯한 디자인의 워싱 데님 그리고 소련의 젊은 남성들이 즐겨 입었던 트레이닝 웨어에서 영감을 받은듯한 의상들이 모두 그대로 쿠튀르에 담겨 있었죠. 튕겨져 나갈 듯이 과장된 어깨도 포함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뎀나 바잘리아는 쿠튀르 컬렉션인 만큼 완벽한 마감과 커팅 그리고 디테일에 온 집중을 기울였습니다. 유일하다고 볼 수 있는 차별점이었지만 웨어러블한 쿠튀르를 상상했다는 그의 의도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죠. 그가 이번 쿠튀르를 통해 보여준 이 부분은 그 어떤 장인이 보아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을 겁니다.
하지만 그가 베트멍과 발렌시아가에서 주로 선보였던 디자인만 이번 컬렉션에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우스의 설립자인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에게 경의를 표하는 듯한 디자인도 분명히 있었죠. 날카롭게 각진 어깨와 슬림한 펜슬 스커트 그리고 눈부시게 반짝이는 슬립 드레스에서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램프의 갓처럼 생긴 챙이 넓은 모자 또한 미래 지향적인 분위기를 담아내어 마치 뎀나 바잘리아와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의 협업을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