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 GALLIANO'S DIOR COUTURE
프랑스를 대표하는 럭셔리 하우스인 디올에서 컬렉션을 선보인 최초의 영국 디자이너인 존 갈리아노가 임명된 1996년 1월 21일은 패션 업계의 역사에 기억될만한 날일 겁니다. 이전에 몸 담았던 지방시에서의 재임 기간은 짧았지만 그동안 그는 오트 쿠튀르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으며 패션 디자이너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에 대해 알려줘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존 갈리아노를 선임한 디올 하우스에 온 시선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죠. 이후 존 갈리아노는 15년 간 디올 하우스를 이끌며 현대의 디자이너 중 가장 혁신적인 인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물론 반유대주의적 사상에 대한 발언을 하기 전까지는 말이죠.
존 갈리아노를 떠올려보자면 지금 몸 담고 있는 메종 마르지엘라의 해체주의적인 디자인을 떠올릴 겁니다. 사실 디올에서의 디자인도 크게 다른 점을 찾기란 어렵습니다. 하우스의 헤리티지를 살리기 위해 약간은 고풍스러운 무드를 느껴볼 수 있을 뿐이죠. 하지만 그의 이러한 디자인은 센트럴 세인트 마틴에서 존 갈리아노의 지도 교사를 맡았던 셰리든 바넷의 영향이 컸습니다. 마리 앙투아네트와 파리의 매춘부들 그리고 오래된 만화 작품에 영감을 받은 졸업 작품을 전시했던 그에게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그녀는 그의 상상력을 끄집어내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죠. 훗날 기술적으로 부족했던 부분도 그녀에게서 많은 배움을 얻었다며 셰리든 바넷에 대한 감사함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존 갈리아노는 무대에 오르는 모델들을 단순히 자신의 작품을 입는 역할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의 캐릭터로 생각했죠. 그들에게도 이 점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모델들은 평범한 워킹이 아닌 시즌의 테마에 맞게 무대를 배회했으며 독특한 포즈를 취하기도 했습니다. 하나의 공연을 대중들에게 선사한 것이죠. 그 무엇보다도 변화에 대한 예술을 담아내는 것이 패션이라는 생각을 항상 가슴에 품고 살았던 존 갈리아노가 디올 쿠튀르 컬렉션에서 보여준 가장 멋진 순간들을 이번 컨텐츠를 통해 만나보세요.
디올의 2000년 봄·여름 쿠튀르 컬렉션은 존 갈리아노가 매일 조깅을 하면서 만났던 난민들에 대한 내용들로 펼쳐져 모델들을 낡아 보이는 옷차림에 술병을 들고 무대를 활보했습니다. 그리고 6개월 뒤 발표한 2000년 가을·겨울 쿠튀르 컬렉션은 사회를 지배하는 이들에게 시선을 돌렸죠. 부르주아 판타지에 초점을 맞췄던 이 컬렉션에서는 결혼식을 떠올리게 하는 연출과 성직자들의 가운으로 성스러운 분위기도 담아내어 존 갈리아노 특유의 복잡한 스토리 텔링으로 구성됐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이외에도 해군 장교 제복과 로마의 검투사 그리고 간호사와 가정부들에게서 영감을 얻은 디자인에서도 그의 특별함을 가득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2003년 봄·여름 쿠튀르 컬렉션은 당시에 논란이 되었던 작품입니다. 3주 동안 중국과 일본을 여행한 그가 각 나라의 대표하는 공예품과 전통 예복 그리고 역사에 대한 내용을 뒤죽박죽 섞어놨기 때문입니다. 컬렉션은 중국의 소림사를 떠올리게 하는 무도인들의 행진으로 시작되었으며 이어서 게이샤 메이크업과 기모노를 떠오르게 하는 의상을 입은 모델들이 줄지어 무대를 걸었습니다. 뉴욕 타임스는 이 컬렉션을 두고 정치적인 문제로도 번질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으며 사치와 권력을 상징하는 루이 14세의 베르사유 궁전을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컬렉션은 쿠튀르 사업의 연간 수익을 증가시켰으며 많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 언론의 우려와는 다른 결과를 보여줬습니다.
세상을 떠난 자신의 아버지에게 바치는 컬렉션이었던 이 시즌은 플라멩코 문화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창의적인 매드맨 그리고 위대한 쿠튀리에라고 불리는 그의 독보적인 디자인을 담아낸 의상으로써 말이죠. 외계 도시의 쇼걸과 카바레의 쇼걸 그리고 플라멩코 문화를 대표하는 집시들을 떠올리게 하는 디자인을 그야말로 화려함의 극치를 달렸으며 당시 디올 쿠튀르의 메이크업을 담당했던 팻 맥그래스의 그라데이션 기법은 이 화려함의 방점을 찍기도 했습니다. 존 갈리아노는 컬렉션이 끝나고 진행된 인터뷰에서 "우리 가족은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플라멩코 춤을 췄어요. 아버지를 평생 기억하기 위해서 이 컬렉션을 만들었습니다."라고 말하며 그리움과 존경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매번 풍부하고 화려하게 언급됐던 존 갈리아노의 역사를 다루는 방법이 빛을 발했던 시즌이었습니다. 오프닝은 이집트의 왕비인 네페르티티를 떠올리게 하는 의상으로 시작되었으며 무대에 깔린 비욘세와 션 폴의 곡인 BABY BOY는 꽤나 어울렸죠. 계속해서 이집트를 상징하는 파라오와 고양이 그리고 수염 장식이 황금색을 메인으로 이어졌으며 존 갈리아노는 이집트의 화려한 문화를 포토그래퍼인 리처드 아베돈과 어빙 펜의 우아한 분위기에 녹여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작품으로서의 가치는 인정받았을지언정 옷의 역할을 충실히 행하는가에 대한 의문점에 대한 지적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당시 보그의 디렉터였던 수지 멘키스는 존 갈리아노를 두고 역사상 가장 놀라운 쿠튀리에인지 아니면 무대용 의상을 제작하는 사람인가에 대해 묻기도 하는 해프닝도 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