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ZESSTYPE May 10. 2016

제스타입 작업일지 #13

전시 후기

#


4월 22일부터 5월 8일. 2주의 기간 동안 진행한 개인전이 막을 내려 전시장을 정리하고 돌아왔다.  독립 디자이너로서 활동을 시작한 작년 4월부터 지금까지. 일 년 조금 넘는 시간을 뒤돌아본다. 뭐랄까. 일단 알차게 보냈다. 그 어느 때보다. 졸업작품을 준비하던 그때보다도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직장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거나 해외전시를 준비할 때보다도 더 높은 집중력과 지구력을 발휘하여. 쉽게 말하자면 그 어느 때보다 빡새게 작업을 진행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초에 내가 그렸던 그림에는 절반도 도달하지 못했지만. 물론 그럴 줄 알고 있었다. 생각처럼 쉽게. 잘 될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으니깐. 애써 아등바등해보았지만. 하다 보면 느슨해지고 나태해지기 마련이다. 아무튼. 네 번의 그룹전을 치르고서 첫 번째 개인전을 진행했다. 유명한 갤러리는 아니더라도. 지금의 나에게는 딱 좋은. 너무 크지도. 너무 작지도 않은. 이태원과 경리단길 사이. 가파른 언덕을 올라 주택가 사이에 자리한 호호호 플레이스. 분에 넘치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주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 스스로의 부족함을 잘 알고 있다. 




첫 번째 그룹전은 형편없었다. 심지어 제안을 받고 참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참가비 명목으로 돈을 갈취당했고. (아무리 생각해도 갈취라는 말 이외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작업도. 전시도. 그 무엇도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그 전시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내 지인들 중에는 단 한 사람만이 그 전시를 잘 보았노라고 전해주었다. 두 번째. 세 번째 그룹전은 비슷한 시기에 진행되었다. 두 번째 전시에는 나름의 가치가 있었고. 세 번째 전시에는 의미를 두었지만. 전시 자체로는 영 시원찮았다. 준비도. 진행도. 그다지 매끄럽지 않았고. 전시를 통한 영향도 아주 굉장히 미비했다. 늘 제안을 받고 진행하지만 정작 그룹전을 진행하다 보면 늘 들러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누구를 탓할 수 있는가. 당장의 내가 그 정도. 엑스트라인 것을. 때로는 아쉽기도 했고. 분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칼을 갈면서. 다음에는 한걸음만 더. 한 걸음씩만 더 나아가 보자. 하고 스스로의 각오를 굳혔다. 그 후로 한 동안 그룹전 제안은 모두 거절했다. 그 시간에 내 작업과 폰트 제작에 힘을 쏟는 것이 더 좋았다. 사실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서 폰트 제작하느라 다른 곳에 할애할 시간이 없기도 했지만. 무리하면서까지 그룹전에 참여할 의사는 없었다.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끝날 즘 네 번째 그룹전 제안이 들어왔고. 이번에는 그나마 이전까지 진행했던 그룹전들과는 달랐기에. 제법 긴 시간을 들여 준비했고. 전시 자체도 만족스러웠다. 나쁘지 않았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내 작업을 알아봐주었다. 그룹전을 진행하면서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나를 아는 사람이 있다니. 얼마나 놀라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이 나를 안다니. 이전까지는 그룹전의 전시 오프닝에 참여한 적도 없었고. 다른 디자이너 혹은 아티스트들과 이야기를 나누지도 않았다. 내성적이라거나 낯을 가린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말재주도 없고. 애초에 말보다는 글이 편하고. 약간의 불편함. 그런 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불편함이 되었을 것이다. 사실 나는 몇 년 전부터 이런 나의 태도를 후회했다. 말 몇 마디 나누면서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데도 왜 그렇게 귀찮다고 피해왔는지. 한숨이 다 나온다. 그렇게 지내오면서 지난 몇 년 간 나는 교류를 잃어버렸다. 늘 혼자서 작업에 열중했다. 아무튼. 네 번째 그룹전에서는 태도를 달리했다. 사람들과 인사를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술잔을 부딪치며.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였다.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작업을 하는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사람이라는 것이 한 순간에 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서. 그리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은 아니지만. 아아. 앞으로는. 조금 달라져야겠다고 생각했다. 



#


아쉽게도 전시장을 찾아와 준 모든 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었다. 먼저 찾아와 준 분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나중에 오신 분들께는 제대로 인사도 드리지 못하고. 이 부분이 참 어려웠다. 사실 그리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는 것은 아니지만. 얘기하다 말고 다른 분께 인사하기도 참 그렇고. 전시장에 상주하며 작업을 진행하려던 계획도 생각처럼 수월하지 않았고. 다음 전시 작업을 진행하고 있기에 전시에만 시간을 할애하기도 어려웠다. 그러고 보면 나 자신이 참 여유가 없구나. 하고 느낄 수 있었다. 시간이 아니라.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늘 불안하고. 다급하기에. 하나에 신경을 기울이면. 다른 것들은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고. 그렇다고 여유를 갖자니.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작업에 있어서도 많은 부족함을 느끼지만. 내가 가장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은 작업이 아닌 그 외의 것들이다. 인간관계. 교류. 조금 더 인간적이길 원하면서도. 늘 작업에 온 신경을 기울인다. 다른 것은 나중에. 우선은 작업 먼저. 이러한 욕심이 결국 끝이 없다는 것을. 매듭지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별다른 수가 없다. 다만. 조금씩 나아지길 바라면서. 조금씩 노력을 하고 있을 뿐이다. 열심히 열심히. 전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계획했던 작업들은 아쉽게도 제대로 진행할 수 없었다. 욕심이 앞섰던 걸까. 이것저것 고민하지 말고 하나라도 제대로 할 것을. 책을 편집하고 제작하려 했지만. 아직인가 보다. 열심히 한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니깐. 물론 될 때까지 하면 되긴 한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지만.



#


다시 돌아와서. 막을 내린 개인전은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 분명 더 잘할 수도 있었다. 2주간의 준비 기간 동안 나는 최선을 다 하지 않았다. 물론 할 만큼은 했다. 이런 생각 끝에 더 잘하고 싶었던 것은 욕심이고. 결국 지금 이 상황이 내 레벨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씁쓸하지만. 어쩌겠는가. 더 잘할 수 있었다는 생각 자체가 오만이라는 것을 느꼈다. 나는 지금 이 정도인데. 스스로를 더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다 보면 아직 형편없구나. 갈 길이 정말로 멀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 지난 일 년이란 시간 동안 나는 분명 나아가고 있다. 일 년 전과 비교하면. 아니 비교가 되질 않는다. 막 회사를 나와 아무것도 없었던 그때와 지금은 분명 많이 다르다. 그리고 내가 바라보고 있는 시기는 2018년. 그때까지 반드시 도달해야만 하는 목표가 있다. 그리고 조금씩 다가가고 있다. 차근차근 나 아가다 보면. 분명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


내가 허황된 것을 쫓고 있나. 이렇게 살면 안 되는 걸까. 문득 그런 생각들이 들고는 한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불안해지고. 현실적인 고민과 걱정들 속에서 괴로워하면서. 그런 현실을 외면하고자 작업에 몰두한다. 생각해보면 내가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원동력은 그러한 괴로움이 아닐까. 물론 그런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어떤 멍청이의 말처럼. 즐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매번 고비를 마주하고. 어떻게든 넘어왔다. 때로는 돌아오며. 때로는 무너지기도 하면서. 지난 일 년을 버텨왔지만. 내가 그린 앞으로의 3년을 버텨낼 수 있을까. 물론 최선을 다하겠지만. 일 년이 지난 지금 나는 점점 자신감을 잃고 있다. 밑 빠진 독처럼 아무리 작업에 매진하고 노력해도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다. 그게 자신감인지. 성취감인지. 무언 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현실을 마주하고 고민할 때마다 이런 허무함. 공허함이 찾아온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느낌보다는. 도망치는 느낌.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느낌이 더 강하다. 조금 더. 보다 더. 작업에 열중할수록 나는 지쳐가고 있지만. 3년만 버텨보자. 거기에 모든 것을 걸었다. 도달하지 못하면. 지극히 현실적인 삶을 살아갈 수밖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서. 꿈을 접고서. 




매거진의 이전글 제스타입 작업일지 #1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