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밀라논나의 채널을 즐겨보는 이유는, 자신과 다른 인생의 시기를 살고 있는 사람을 통해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그렇다. 밀라논나(할머니)가 화초 가꾸시는 모습을 보며 ‘봄이 왔으니 나도 화분을 사야겠군' 생각했다.
작년에 학사 논문을 쓰며 어렵다면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논문 쓸 때는 논문 생각만 한다.
'참고 문헌이 어렵네, 내일 글쓰기 센터 면담은 어떡하지?
교수님 면담 약속을 잡아야 하는데.
오늘 계획한 공부는 다 했나?'
논문을 쓰며 지적 호기심이 채워지고 글이 술술 써질 때도 있지만 그런 날은 얼마 안 된다. 논문 쓰는 대부분의 시간은, 오욱환 교수님의 표현대로 '인내를 요구하는 노역'이다. 노역을 하다보면 노역에 매몰될 때도 있다.
노역에 매몰되지 않는 방법은, 인생의 다른 시기를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나보다 어려도 좋고 나이가 많아도 좋다.
작년 10월, 독일 성당 모임에 참가했다. 70대 노신부님과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다. 다양한 연령 대의 사람들이 함께했다. 40대 여성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살게 될 삶을 떠올렸다. 50대 여성은 건강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린 시절을 프랑스에서 보낸 60대 아저씨는, 외국인인 나를 항상 배려해주었다. 70대 할아버지는 자식과의 관계, 귀여운 손자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매일 저녁, 삶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내가 논문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은 지금 이 나이라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0년 후에는 다른 삶을 살 테고 70대가 되어서는 다른 계획(인생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을 세울테니 말이다. 내가 어떤 직업을 갖을지, 어떤 사람을 만날지, 어떤 삶을 살게 될지 모르는 이유는 아직 젊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때이기도 하다.
작년 말 자원봉사자 교육을 받았다. 한인 1세대 어르신들의 일상 생활을 돕는 자원봉사였다. (1960, 70년대 간호사와 광부로 독일에 오신 분들이 나이가 들어 거동이 불편하거나 치매로 독일어를 잊어버리신다고 한다.) 독일인들과 대화를 나누었던 성당 모임과는 달리, 자원봉사 교육에서는 한국인을 만났다. 부모님을 따라 독일에 온 10대 학생부터, 대학 신입생, 한국에서 학사를 졸업하고 석사를 공부하기 위해 독일어 공부를 하는 학생, 남편의 직장을 따라온 여성, 독일 유학을 마치고 20년 가까이 살고 있는 분, 30년 전에 이민와서 살고 있는 분 등. 토요일마다 나갔던 그곳에서 과거의 나를 만났고 미래의 나를 그려보았다.
고등학생의 이야기를 들으며, 타지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던 나를 떠올렸다. 독일어가 너무 어렵다는 어학원생 이야기를 들으며 독일에 처음 왔던 나를 떠올렸다. 대학에 갓 들어간 신입생을 보며 독일 대학에 입학하고 설레어하던 나를 만났다. 유학생으로 와서 독일에 오래 살고 계신 분을 보며, 언젠가 공부를 끝내고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는 나를 떠올렸다.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이민을 온 분을 보며, 아이를 낳고 사는 미래의 나를 그려보았다.
인생의 다른 시기를 사는 사람을 만나니, 나의 고민(논문)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고민이 있어 기뻤다. 그토록 바랬던 독일어 시험에 통과했고, 대학을 무사히 다녔으며, 고대했던 졸업을 위한 논문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의 나에게는 논문이 가장 큰 걱정거리지만 5년 혹은 10년이 지나면 논문을 쓰던 시간을 그리워할 것이다. '현재에 충실하자. 논문은 끝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현재. 논문이 끝났다. 시간 내에 잘 제출했고 2개월 후 통과 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현재의 나는 다른 삶(소논문을 쓰고 있으니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을 살고 있으며 다른 계획과 고민거리를 갖고 있다. 하지만 이 계획과 고민은 논문을 통과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도 '현재에 충실하자. 이 순간에 살자.'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