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냐 존재냐> - 에리히 프롬
학창 시절 내 싸이월드 미니홈피에는 유명한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그것은 바로 ‘초심을 잃지 말자’였다. 당시 나는 춤에 빠져있었고, 잃지 않고자 했던 초심은 ‘세계 최고의 비보이가 되자’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여러 경험을 하면서 ‘초심’이 내 발목을 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에 다른 즐거움을 준 ‘코딩’을 만나고서였다. 내 관심은 점점 코딩 쪽으로 치우쳐졌다. ‘초심’을 잃는다는 사실은 죄책감이 들게 한다. 아마 내가 스스로 저 문구를 외치며 나를 옥죈 탓일 수도 있겠다. 여하튼 나는 초심을 던져버렸다. 그리고 만족스러운 방향의 삶을 이어 나갔다. 그 뒤로 ‘초심을 잃지 말자’라는 문구는 사용하지 않았고 시시때때로 변화해왔다.
내가 위 얘기를 한 이유는, ‘소유’와 ‘존재’ 그리고 ‘살아있는 관계’와 ‘죽어있는 관계’랑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목표’를 가지는 게 나쁘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초심’과 ‘목표’는 다르다. 초심의 뜻은 ‘처음에 먹은 마음’이며, 그것은 조정될 수 없는 성질이다. 한 번이라도 수정된다면 그것은 ‘초심’의 의미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목표’는 삶에서 얻는 새로운 정보들과 경험들로 인해서 계속 재조정 될 수 있다. 프롬이 말했듯 살아있는 것처럼 항상 ‘재창조’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살아있는 것은 변한다. 그래서 목표의 변화도 피할 수 없다. 그런데 ‘초심’은 변하지 않는다. 나와 초심은 ‘죽어있는 관계’가 된다. 내가 초심을 만들고 소유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에 매이는 순간 초심이 우리를 소유하게 되고, 우리는 옴짝달싹 못 하게 된다. 프롬의 말대로 반대의 관계가 되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그 반대의 관계도 있을 수 있어서, 그것이 나를 소유하기도 한다.” - 116
그러니 ‘초심’은 잊지 말되 잃어야 하는 것이다. 사람은 그렇게 성장하고 자신을 찾아간다. 계속 수정되는 ‘목표’와 살아있는 관계를 맺으며 나아가야 한다. 내가 끝까지 ‘초심’을 고수했다면, 개발자로 일하지 못했을 것이다. 퇴사하고 1년간 책을 읽겠다는 다짐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초심’을 잃어 왔기에 더욱 나다워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