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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 Aug 29. 2016

16.
무주구천동 part 2

스무 살 꼬질꼬질 자전거 여행기  vol. 16


18. 무주구천동 part. 2 

길에서 구한 음식으로 점심을 해 먹고 낮잠을 잤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나른함. 
낮잠을 자고 일어나 심심한 시간이 계속되자, 박진수는 이번엔 화투를 빌려 오겠다고 김치를 나눠줬던 옆의 여자애들 텐트로 갔다. 그러나 그 애들은 자기네들도 써야 한다며 빌려주지 않았다. 

박진수는 빈손으로 돌아왔다. 
아... 박진수가 안 되는 것도 있구나. 

오후 늦게 갑자기 장대비가 쏟아졌다. 여행을 떠나 처음으로 만나는 비다. 
우리는 평소에 이런 상황을 머릿속으로 항상 대비하고 있어서 신속하게 큰 비닐로 자전거를 덮어서 비를 맞지 않게 하고, 텐트로 빗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텐트 주변에 빗물이 빠져나갈 수 있게 땅을 파서 빗길을 만들었다. 군대 용어로는 '배수로 깐다'라고 하는 행동이다. 

우리는 4명이나 있어서 쉽게 배수로를 완성하고, 김치 줬던 여자애들 텐트를 도와주러 갔다. 그 텐트는 여자애들 밖에 없어서 그런지 뭘 해야 할지 모르고 당황하고 있길래 우리가 가서 배수로를 '까'주었다. 
그리고 어떤 텐트는 아저씨 혼자서 화분에 꽃 심는 조그만 삽으로 힘들게 땅을 파고 있길래 또 우리가 출동하여 도와주었다. 


비오는 캠핑장 텐트에 엎드려 비오는걸 구경하는 것도 참 좋았다.



다시 텐트로 돌아와 다 같이 엎드려 텐트 문을 열어놓고 비 오는 걸 구경했다.

혼자 땅을 파던 아저씨는 아주 조그만 텐트에 혼자서 생활하고 있었는데 탈영병 아니면 누군가를 피해 도망치는 사람 같다고 우리끼리 수다를 떨었다. 착한 사람인데 억울하게 범죄자의 누명을 썼다든지... 

그때 텐트 밖에서 웬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요~" 
아까 김치 나눠준 텐트의 여자애들인데 고맙다고 하면서 화투를 주고 갔다. 

은혜를 아는 애들이었다. 혼자 생활하는 아저씨는 아무것도 안 갖다 줬다. 

박진수는 화투 모서리가 뾰족하고 길이 안 든 걸로 봐서 가게에 가서 새 걸 사 온 거 같다고 했다. 우리는 화투가 생기면 재미있게 놀 수 있을 것 같았으나, 나와 치화형이 고스톱 룰을 잘 몰랐고 막상 실제로 화투가 생기니 별로 
재미가 없었다. 


텐트 앞에 앉아있는 치화형. 햇빛에 말리려고 두루마리 휴지, 수건, 칫솔들을 몽땅 꺼내 자전거에 널어놨다. 뒤에 있는 나무가 거미줄이 있던 나무. 



그런데 갑자기! 
내 가슴 쪽에 뭔가 통증이! 

너무 놀라고 아파서 소리도 안 나왔다. 덮고 있던 침낭을 치워보니 새끼손가락 만한 말벌이 있었다! 

아... 내가 말벌에 쏘였구나! 

말벌에 쏘이면 죽을 수도 있다는데... 

난 가슴을 쏘였으니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우선 그 벌을 죽이고 모기 물린데 바르는 약을 발랐다. 그리고 진수의 부축을 받으며 나이트클럽 근처 약국에 갔더니 - 난 병원 응급실로 가라고 할 줄 알았다 - 약국 아저씨는 괜찮다고 일부러 돈 주고 벌침을 맞는 사람도 있다고 그냥 가만 놔두라고 하셨다. 
정말 그대로 놔두니 점점 괜찮아졌다. 

어느새 비는 멈췄고, 날은 점점 어두워졌다. 
텐트 속에서는 신해철 노래가 계속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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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4살에 운영하던 홈페이지에 썼던 글을 조금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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