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한 끼
엄마가 택배를 보냈다.
상자를 열어 차곡차곡 쌓인 봉지를 살펴볼 때면 어김없이 마음이 복잡해진다. 나에게 화가 나고 엄마에게 화가 난다.
혼자 산 지도 수십 년인데 아직도 본가에서 반찬을 받아먹고 사는 현실에 일단 화가 난다. 그러다 언젠가 엄마가 택배를 보내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지금 감정도 추억이 될 텐데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두려워진다.
반찬 국물이 샐까 봐 두 번 세 번 싼 비닐봉지에 화가 난다. 그지 않아도 평생 방앗간에서 떡 상자 끈을 묶느라 손가락 관절이 아파 뭘 잘 쥐지도 못하면서 국물이 걱정돼 정성껏 싸매느라 얼마나 애썼을지 눈에 선하다.
지긋지긋한 비닐봉지, 택배 속 반찬 봉지만큼이나 뭘 넣었는지도 모르는 검은색 비닐봉지가 엄마의 냉장고에 가득하다. 그 꼴이 보기 싫어 비싼 미국 브랜드 진공포장기 제품을 사드렸다. 그리고 오빠가 아파 한동안 본가에서 지내면서 깨달았다. 그냥 사는 대로 살게 내버려둬야지 괜히 좋은 제품 사 드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살림을 하는 사람은 살림살이의 위치만 봐도 그 사람이 무엇을 자주 사용하는지 안다. 자신의 동선에 맞춰 살림살이가 배치되기 마련이다. 내가 사 드린 제품 중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가정용 제면기다. 신문지를 깐 바닥에 놓인 제면기 주변에 흩어진 밀가루도 제법 수북하다. 수시로 사용한 흔적이다. 엄마는 면을 좋아해서 칼국수를 자주 해 먹는다.
반면 진공포장기는 상자에 담겨 있었다. 자주 쓰지 않는다는 소리다. 가격으로 따지면 제면기의 5배가 넘는 기계다. 진공 포장지도 아까워서 아껴 쓸까 봐 크기별로 한 박스를 사서 내려보냈는데 어이가 없었다. 나도 같은 제품을 사용하지만, 냉장고와 함께 유일하게 전기 코드를 꽂아두는 가전제품일 정도로 자주 사용한다.
비닐봉지 매듭을 풀어 반찬을 정리할 때마다 사드린 진공포장기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오른다.
이번엔 김치 때문에 오만가지 감정이 들었다. 한눈에 봐도 새로 한 김치였고, 끝을 조금 잘라먹어 보니 영락없이 엄마가 담근 김치였다.
김장 김치는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 처음 받아본다. 그러니 이십여 년 만에 받아 보는 것이다. 아빠 때문이라도 매년 20포기씩 김장을 했지만 돌아가시고 나선 방앗간일 만으로도 벅찼고 대학생 자식들은 더는 집에 살지 않았기 때문에 김장할 이유가 없었다.
올해 김장을 한 이유야 빤하다. 아들 때문이다. 아픈 아들이 집에 내려간 지 2년째다. 아들 먹이고 싶어 힘들게 김장을 한 모양이다. 본인 먹거리보다 평생 남편, 자식 거둬 먹이려고 바지런히 움직였을 것을 생각하니 여자로서 엄마의 삶이 너무 불쌍하고 고달팠다. 동시에 화가 났다. 그놈의 아들 아들.
이번엔 김치를 제외하고 반찬이라곤 멸치볶음밖에 없었다.
막 새로 한 김치를 얼른 보내주고 싶었구나.
멸치볶음은 본가에 갔을 때 너무 맛있어서 만드는 법을 물어봤던 반찬인데 생각이 났던 모양이다. 그리고 빡짝장 한 통이 들어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빡짝장 하나면 밥을 두 공기씩 먹었다. 지금도 입맛이 없을 때 종종 끓여 먹곤 한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아는 사람, 어렸을 때부터 먹는 걸 지켜본 사람,
엄마는 엄마다.
마지막으로 임연수. 엄마가 서울에 왔을 때 시장에서 지나가는 말을 했더랬다.
"지난번엔 임연수가 먹고 싶어서 살지 몇 번을 고민하다 말았어."
아주 맛있는 생선구이는 아닌데 어려서부터 고등어보다 임연수를 먹고 자란 탓에 가끔 생각이 난다.
"사지 마. 엄마가 집에 가면 바로 사서 보내줄게."
엄마는 서울 식재료는 믿지 않았다. 특히 생선은 가격도 비싸고 상태도 별로라고 했다. 그때 했던 말을 아직 기억하는지 제철이 되었다고 다섯 마리를 차곡차곡 포개 보냈다.
그걸 또 진공포장을 해 냉동실에 넣으며 욕했다.
-이런 걸 진공으로 포장해서 보내면 비린내도 안 나고 상자 바닥도 안 젖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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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동안 몸무게가 15kg이 빠졌다.
러닝을 많이 한 탓도 있지만 입맛이 없어 뭐가 됐든 잘 먹지 않는다. 밥을 먹었는지 생각이 안 날 때도 있고 배가 고파도 먹고 싶지 않아 거르는 경우도 많았다.
10월에 본 섭식장애에 대한 영화의 영향도 있다. 주인공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건 먹는 걸 조절하는 것밖에 없어서 먹지 않다가 결국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 이른다.
내가 러닝을 하는 이유도 같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다.
성취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 몸에 대한 것뿐이었다. 마침, 영화를 보고서야 먹는 것도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영역임을 알게 된 것이다.
섭식장애는 아니지만 먹는 양과 먹는 횟수를 조절하곤 했다. -집에 물을 제외하곤 먹을만한 게 없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평소 좋아하던 삼겹살은 냄새가 비려서 먹을 수 없게 되었고, 라면도 아무 맛이 나지 않아서 굳이 먹지 않는다.
오늘은 자다가 새벽 1시쯤 일어나 계엄령 뉴스를 보았다. 곧장 일어나 김장 김치를 꺼내 흰쌀밥에 얹어 밥 한 공기를 먹었다.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택배 상자를 정리하며 화가 나고 슬프고 안쓰러웠던 감정이 한데 어울려 허기가 졌다.
여전히 입맛이 돈 건 아니지만 맛있는 밥 한 끼를 오랜만에 먹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엄마표 반찬이 효과가 있구나.-
김장하느라 애쓴 노모에게 화가 나면서도 아직은 얻어먹을 수 있음에 감사해하며 부지런히 먹었다.
계엄령.
밥 벌어먹고 사는 것, 밥을 한 끼 먹는 것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 때문에 아이러니하게 밥을 챙겨 먹었다. 내 삶은 내 멋대로 살아지지 않는데 평생 제멋대로 하고 산 사람 때문에 화가 나 밥을 먹었다. 겨우 밥 한 끼 먹느라 모두가 애쓰고 사는데 운이 좋아 잘 먹고 잘 살아온 자가 애들 총싸움하듯 총기를 겨누지 말았으면 좋겠다.
사진 출처: 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