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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랑 Apr 30. 2024

K-시어머니들 며느리 뭐라고 저장해 놓으셨나요?

얼마 전에 시어머니 생신이라 오랜만에 부산 시댁에 내려갔다. 2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에 있기도 하고 교대근무하시는 시어머니와 남편의 스케줄이 겹치는 날이 별로 없어서 자주 왕래하진 않기에 오랜만에 내려가 아이와 남편이 같이 먹을만한 음식을 내려가기 전날 집에서 해서 바리바리 싸들고 내려갔다.


시어머니 말투는 참 나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다. 나와 성향이나 기질이 반대이기도 하고 이해할 수 없는 발언들로 결혼 전부터 지금까지 많은 트러블들이 있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조금 일찍 출발해서 어머니 퇴근 전 시간에 우리는 도착했고, 어머니 퇴근시간에 맞춰 신랑과 아이와 같이 생일상 겸 저녁상을 준비했다. 어머니가 오시는 소리가 대문 밖으로 들렸고, 저녁상이 맛이 없을까 봐 내심 걱정이 되기도 했다. 조금 탄 부추전과 탱글함이 살짝 죽어있는 잡채가 좀 신경 쓰였다. 그래도 LA갈비에 미역국 그리고 시금치 장아찌는 성공적이다.


저녁을 먹고 났더니 어머니가 참외를 깎아주신다. 밥은 내가 차리고 설거지는 신랑이 하고 어머니는 과일을 깎아주시고, 나는 아이와 함께 소파에서 좀 쉬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고부갈등이 심각한 집에 비하면 참 다행인가 싶은 장면이지만 나의 예민버튼은 이 장면에서 한번 눌렸다.


"일하고 왔나? 일하면서 만들기 힘들었을 건데, 아이고.(여기까지만 했으면 됐다..) 일찍 내려왔으모 집에서 사부작사부작했으면 됐을낀데.."


나는 어머니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는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하는 말투와 내게 하는 말투가 확연히 다르구나 느꼈던 적이 여러 번 있었기도 했고, 그 말 뜻 안에는 여러 의미를 꼭 내포하여하시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나는 늘 한번 꼬아서 듣거나 아니면 어떤 의미 일까 해석하는 방어기제가 생겼다.


"아, 내려와서 하면 제 주방도 아니고 맛있게 못할 거 같아서요. 그리고 내려와서 저도 좀 쉬고 차리기만 하면 되니까 겸사겸사 해왔죠."


생신이라고 해서 아무 일 없이 다녀오길 바랐다. 어머니는 내 1차 예민버튼을 누르셨고, 2차 예민버튼은 동시에 누른 일이 하나 더 있었다. 엄마 생일인데 나가서 드라이브나 좀 하고 오자는 아들의 제안에 살짝 짜증이 나셨는지, 일하고 오셔서 힘드셨는지 모르겠는 표정으로 "블라인드도 주문 좀 하고 창고에 넣을 선반이랑 소파도 주문해야 되는데 가긴 어딜가노." 나한테 부탁하신 일을 해야 되는데 또 나가면 언제 하냐는 짜증 섞인 말투였다.


줄자를 들고 이 정도면 되겠냐고 나선 나다. 우리 엄마도 인터넷 주문은 번거롭고 어려워하셔서 자주 도와드리는 일 중 하나였고, 큰 힘이 드는 일은 아니었기에 인터넷 주문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 핸드폰에 카드를 등록하고 주문하려고 가족 카톡방에 링크를 보내고 클릭했는데 내 눈에 들어온 하나가 있었다.


울가족~♡이라고 되어 있는 카톡방 안에

♡♡울 장남~♡♡

♡♡울 막내~♡♡

라고 저장되어 있는 아들들의 이름

그리고 내 이름 성까지 붙여진 내 이름 풀네임 '손주희'라고 되어있는 걸 보고 그게 뭐라고 그 순간의 감정은 서운함, 치사함, 어이없음, 과거의 기억들 등이 치밀어 올랐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감정을 쓰기 싫어서 신랑한테 가서 털어버리고 말려고 말했다.


"어머니 핸드폰에 나 뭐라고 저장되어 있게?
울장남 하트하트, 울 막내 하트하트 사이에 내 이름은 '손! 주! 희!' 다~"


저녁 먹으면서 술 한병 드신 옆지기님은 그 얘길 듣더니 눈치도 없이 갑자기 빵 터져서는 깔깔대고 웃고는 별일 아니라는 듯 아이와 놀더니 다시 투덜대는 내게 말한다.


"어머니 손주희가 뭐예요 정 없게 저도 울 주희
이런 걸로 바꿔주세요~라고 말해보지~"


유레카였다. 아 정말 그래볼걸. 나 지금 상처받았어. 어어? 지금 나한테 선 넘고 계십니다.라고 한 번도 말해본 적이 없다. 내가 마치 천벌이라도 지은 거처럼 행동했었다. 어머니가 나를 그렇게 저장한 이유에는 많은 이유가 있을 수도 있겠다. 이해해 보자면, 가족 이외에 모든 사람을 다 실명으로 저장하는 사람이었을 수도 있겠고 아니면 나랑 아직 안 친해서 그랬을 수도 있고 아니면 내 성까지 제대로 기억하시려고 그랬을 수도 있는데 그 상황에선 아무도 내게 상처를 주지 않았는데 나 혼자 상처받은 꼴이었다.


어머니가 불편하게 하면 불편한 걸 말하면 된다. 노파심에 걱정하는 어머님의 발언이 거슬린다면 감정을 담아 말할 것이 아니라 저는 그 정도까지 허용이 불가한 사람이라는 걸 알려주고 대화를 했어도 됐었다. 나 혼자 어머니와의 대화에 앞서 전투태세를 하고 있던 것도 나 자신이고 일촉즉발, 5분 대기를 하며 날을 세우고 있던 것도 나다.


바리바리 싸가면서 좋은 말만 해줄거라는 기대를 해던것도 나고 마음으로 우러나서 했던 어떤마음으로 했던 주고 기대했던것도 나다. 내가 만들어 논 틀안에서 벗어났다고 그 사람을 미워하고 나쁘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는 남편과 친한거지 어머니랑 친해지려고 하지 않았다. 내 마음에서부터 어머니는 그냥 어머니로 계세요. 저한테 선 넘지 마세요. 혼자 내 마음속으로 생각한걸 그녀가 어찌 알꼬. 남편의 너스레에 내가 또 한 번 성찰한 느낌이었다.


모든 상황에서 유연하게 넘기고 말고는 내 마음먹기에 따라 다르다. 어머님이 아닌 타인이 내게 그랬다면 내 성격에 바로 말했을 거 같다. 왜 그렇게 말씀하시는지 물어봤을 거다. 그리고 오해가 있다면 그건 아니라고 말했을 나인데, 벽은 내가 치고 있었구나. 결국 이 상황도 내 마음먹기에 따라 달렸다.


그녀가 내가 살아온 세월을 다 모르듯이 나도 그녀의 일생을 모른다. 내 관심사 이외에 관심이 없는 나 같은 사람이 아닐 수도 있고 나와 반대의 세상에서 산 사람을 이해하기까지 과정은 힘들다면 적어도 왜?라는 질문은 물어볼 수 있지 않을까. 혼자만의 생각으로 나를 가두지 말자. 공식과 답이 없는 게 인생이라 하지 않던가. 불편함은 피할게 아니라 흘러가게 두자. 매번 부딪힐 때마다 긴장하고 있다면 그것도 피곤한 인생이 아닌가. 처음은 어렵겠지만 적어도 경직된 몸은 풀고 있도록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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