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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무드 May 01. 2024

시어머니 말투는 똥막대기

경상도 사람들이 무뚝뚝하다지만, 경상도 사람들을 싸잡아서 무뚝뚝하다고 정의하긴 어렵다는 걸 대구 와서 살면서 알게 됐다. 대부분 성향이 그렇다는 말이지 살아보니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다. 어머님은 예외였다. 그냥 그런 사람이라는 걸 알기까지 15년 정도가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김창옥 스타강사가 라디오스타에 나와서 김구라 MC에게 방송적인 모습은 '저 사람은 말투가 왜 저렇게 똥막대기처럼 하지?'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본인 강연에 왔을 때는 아내를 위해 이벤트를 준비할 줄 아는 사람이었구나 생각했던 적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김창옥 강사가 여기서 말하는 똥막대기는 푸세식 화장실에서 배변을 건져내는 엄청 중요한 역할을 하는 물건인데 배변이 묻어있으니 그걸 사람들은 더럽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비유를 한 것 같다. 이걸 보고 든 생각인데 나한테 어머니는 똥막대기처럼 하는 분이다.


남편의 표현으로는 어머니는 막내며느리이지만, 고모님들한테 시댁살이를 많이 당하셨다고(?) 표현한다. 내가 만삭일 때 아버님 제사가 있던 날이다. 입덧이 심했어서 음식 하는 일을 도울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결혼 후 아버님 첫 기일이니만큼 나도 아버님의 대한 추억이 떠오르면서 뭐라도 도우려고 했다. 그런데 고모님들은 내가 맘에 안 드셨는지, 만삭인 내 몸이 둔해서 도울일도 없는데 걸리적거린다는 마음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맘에 안 든다는 표현을 '심통'으로 표현하셨다. 어머니도 거기서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시고 구석에서 조용히 나물만 무치셨다. 나는 망부석처럼 냉장고 앞에 가만히 서서 일하는 걸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는 아마 호르몬에 지배받고 있던 임신 시기라서 어머니도 불편한 자리에서 내가 어머니에게 그렇게 해주시지.. 하는 바람이 있었던 것 같아 이 일은 생각은 가끔 나지만 굳이 상기시키려고 하진 않았다. 하지만 어머님이 나의 예민버튼을 누를 때마다 생각나는 옵션 같은 기억이랄까.


하루는 어머니가 우리 집에 놀러 오신 적이 있다. 남편과 나 셋이 밥을 먹고 있었고, 남편은 어색한 분위기를 풀려고 했는지 갑자기 키 얘기를 시작했다. 우리 아기는 엄마 닮아서 키가 커야 한다는 얘기를 한다. 처갓집 가면 장인어른이랑 동생들이 다 크다고 자기 엄마한테 자랑하는 신랑이다. 가만히 식사하면서 듣고 계시던 어머니가 입을 여신다.


"결혼식 때 나한테 인사하기던 한복 입으신
분은 친부 쪽 큰엄마가? 농사지으시나?
아유 어찌나 90도로 인사하시면서 나한테
잘 부탁드린다고 하시는데 민망해가.."


'친부 쪽 큰엄마'

'민망'

‘농사지으시나?’


똥막대기 같은 발언이었고 셋 사이에는 정적이 흘렀다. 결혼식에 친부 계부가 둘 다 오셨다고 생각하셨던 건가 키 작은 자기 아들이 키 때문에 속상해하는 마음을 보고 나를 무시하고 싶었나? 농사지으시냐는 질문은 큰엄마 행색을 비하하시는 건가? 여기서 나는 뭐라고 해야 하지? 화를 내야하나? 어떤 의미로 물어보시는 거냐고 물어봐야 하나? 이건 나의 자격지심인가? 머리가 터질 거 같고 어떻게 표현해야 할 다음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 먹고 있던 음식물을 버리고 오겠다고 하고 나가서 한참을 동네를 걸어 다녔다.


한 시간 반정도 흘렀을까? 신랑한테서 전화가 왔다.

"어디야? 나간 지 좀 오래된 거 같은데 안 들어와서.."

"들어갈게"

어떤 점에서 화가 난 지 정확히 정의하기 어려웠다. 기분이 상하면 얼굴에 드러나는 나는 "어머니 저는 일 좀 할게요" 하고 식탁에 노트북을 탁 펼쳤다. 어머니가 가시기 전까지 나는 일을 했던 것 같다. 싹수없게 보였을 수도 있겠다. 나는 이런 어머니의 똥막대기 같은 발언이 너무 격하게 싫다.


이 외에도 상견례에 고모를 데리고 오신다는 말, 우리 집이 재혼가정인데 더 화목하더라라고 하는 본인 아들에 면전에 화를 내셨다는 어머니 지난 과거 행동들이 차곡히 빼곡히 쌓이고 쌓여 나는 어머니와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다. 그녀와 진짜 피와 살을 나눈 가족이 되거나 딸 같은 며느리가 되고 싶은 생각은 추후에도 없다. 하지만 적절한 선에서 '배려'라는 기본 베이스는 좀 장착하고 계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개인적인 바람이지만 그것 또한 욕심일까 생각했다. 가족이 아닌 타인에게 대하는 방법은 알아가고 있는 중인데, 어머니의 경우는 대처방법이 생각나지 않는다. 옆지기에게 물었다. 투정이 아닌 질문으로 물었다. 객관적으로 설명을 잘하는 사람이기에 변호가 아닌 진짜 방법이 필요해서였다.


“내가 생각하기엔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모두
다 어른이 되는 거 같진 않아. 만약 이런 부분이 또 생긴다면 직접 물어봐도 될 거 같고,
혼자만의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될 거 같아. “


정말 그래도 될까? 의문이 들었지만, 지금의 상태보단 나아질 거라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나라는 사람은 상처를 스펀지처럼 잘 빨아드리는 예민한 기질의 사람이다. 사람의 표정을 잘 파악하고 대부분 내가 생각하는 그게 맞았다. 나부터가 성격이 유하지 못하다. 꽁하고 있는 스타일도 못된다. 바로 직설적으로 말해야 하는데 말투에서는 벌써 감정이 묻어나 상대의 기분을 더 나쁘게 만들고는 했다. 그런 나를 알기에 어머니의 말투는 더욱 거슬릴 수밖에 없었다.


‘지레짐작’ 이게 문제다. 문제에는 해결책이 분명 존재한다. 나는 어떠한 해결책도 꺼내 들지 않았다. 나 혼자 생각해 버리고는 잡아먹히도록 놔둔다. 이젠 “왜 그러세요?”보다는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저는 그 질문이 조금 당황스럽습니다. 어떤 의도로 물어보시는 건지 궁금합니다. “라고 말해봐야겠다. 좀 편하게 살자. 지레짐작은 내게 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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