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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랑 Aug 22. 2024

엄마라는 이름으로

엄마로 살면서 나를 키운다.

부모를 미워했다. 30년이 넘도록 마음 한편엔 아직도 미워하는 마음을 넘어 증오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내가 엄마로 살고 있다.


부모로 산다는 건 나이기를 포기하고 자식이 우선인 인생을 살게 된다고 하더라, 나 혼자 살아갈 때와 달리 중요순위가 달라지고 책임감이 생기는 일이라 우리네 인생 선배들은 말한다. “자식을 낳아봐야 새로운 인생을, 혹은 인생의 가치를 알게 된다.” 고 말이다.


나는 이혼가정의 자녀이자 재혼가정의 자녀로 자랐다. 내가 이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이러한 두 개의 타이틀은 나를 동정하는 시선으로 보거나, 나이에 비해 철이 많이 들었다는 말과 시선을 늘 느끼며 살아왔다. 그게 엄청나게 부당한 일인것만 같았다. 세상을 바라볼 때 매우 비판적이고 부정적이며 피해의식을 느끼며 살게 되었다.


몸은 늘 경직되어 있고, 불안도는 높으며, 예민한 데다가 공격적이었다. 내 인생이 꼬여가면 남 탓, 내 인생이 잘 풀리면 내 탓을 하면서 말이다. 나는 늘 유기경험, 낮은 자존감, 불안도 높음, 피해의식, 높은 자존심, 인정욕구를 끊임없이 갈구하고 내 자신을 부정하며 나를 갉아먹는 인생을 살고 있었다.


인간에겐 생물학적 부모가 존재한다. 이 생물학적 부모는 자식과 애착형성을 쌓으며, 돈독한 가족이 된다. 나는 그 온전한 가족의 울타리를 느껴보지 못했다. 조부모 밑에서 자라면서 나와 11개월 차이인 이종사촌 동생(나와 비교했을 때 안정적인 가족의 비교 대상)과 늘 잠재적 경쟁의식을 느끼며 살았고, 아버지의 부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미워만 하고 살았다.


고등학교 2학년 학기가 시작될 때였나, 18년 만에 친부에게서 연락이 왔었다. 내가 잘 따르던 막내이모와 친부가 우연히 마주쳤는데, 내 번호와 사진을 건넸다고 했다. 친부의 음성을 처음 들었던 순간이었다. 나는 너무 무서웠고, 엄마에게 이 사실을 즉시 알렸다. 엄마와 계부는 친부를 만났다고 했다. 내가 성인이 되면 만나라는 말과 지금 와서 아비의 노릇을 하고 싶으면 치아 교정이 필요한 시기니 그 정도만 해주라는 기회를 주었다는 것이다. 계부는 그것조차 말렸고, 계부 그러니까 현재 나의 아빠가 교정이고 뭐고, 지금의 아빠는 본인이니 내가 해준다고 했다고 한다.


그 후로 친부는 나에게 그간 18년의 부재를 한 번에 해주고 싶었는지, 금전적으로 내게 다가왔다. 나 또한 친부에게 그럼 줄 수 있을 만큼 줘봐라 하는 못된 심보가 분출되었고, 나는 그 일이 정당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어느 날 엄마의 일기장에 꽂힌 친부의 각서를 보았던 게 생각나서였다. [본인 ㅇㅇㅇ는 앞으로 자녀 ㅇㅇㅇ가 성인이 될 때까지 매달 양육비 50만 원씩을 지불한다.]라는 각서.


단 한 번도 준 적이 없는 걸로 알고 있었다. 그런 사람이 18년 만에 자기가 친부라고 감히 전화를 하는 그 사람의 꼬락서니가 보기 싫었다. 나는 분노와 증오를 표출하기보다 교활하게 친부를 망하게 하고 싶었다. 그게 금전적이든, 심리적이든 어떻게 해서든 당신도 똑같이 느껴보라는 마음뿐이었다.


그런 사실을 엄마가 알게 되었다. 엄마는 내게 크게 배신감을 느꼈고, 나는 그 후로 엄마랑 남보다 못한 사이로 지내게 되었다. 내 얘기를, 내 마음을 들어보지도 않은 채 엄마는 내게 자식에게 할 도리만 지키기로 한 것처럼 내게 그 어떤 것도 묻지 않은 채, 등을 돌렸다.


엄마는 내게 이혼에 대한 모든 것을 언급해주지 않았다. 지레짐작 친부가 나쁜 사람이었다는 것만 알고 있는 내게 외가 친척들은 네가 엄마한테 잘해야 된다고만 얘기했다. 나로선 답답해 미칠 지경 아니 답답해서 돌아가실 지경이었다. 엄마에게 사과를 할 기회도, 말을 할 기회 조차도 주지 않았기에.


아이를 키우다 보니 알게 된다. 어떤 마음으로 나를 키웠을지 어떤 마음으로 나를 지켜냈는지,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지만 내가 아는 엄마라면 나를 지켜내는 최선의 선택들을 하며 살아오셨을 것이라 감히 지레짐작 생각해 본다.


그 일 이후 엄마는 내가 엄마의 틀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면 그건 니 천성이 그래서 그렇다고 얘기한다. 잘못된 길과 잘못된 선택을 하면 늘 넌 친부를 닮아서 그렇다고 했다. 지금의 나이가 돼서야 엄마를 이해해 보지만 미성년자일 때부터 그런 얘기를 듣고 자란지라 역경에 처하면 나는 도무지 제대로 된 선택지를 찾을 수 없었다.


대학을 선택할 때도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도 결혼을 할 때도 결혼해서 보금자리를 마련할 때도 늘 엄마가 지켜보고 있고, 지금 하는 내 선택이 맞는 건지 자꾸 뒤돌아보고 후회라는 날로만 지새웠다. 그렇게 나가 나를 의심하고 낭떠러지로 몰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고 나는 내 아이가 18개월이 되던 시기에 19평 아파트에서 24평 아파트로 이사 가야 된다는 결정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그 누구의 조언도 듣지 않고 걱정도 끼치지 않는 선에서 내가 나를 믿고 시행한 첫 번째 일이었다. 남들은 그게 무슨 대단한 결정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 내 인생에서 그 선택은 세상을 향한 첫 도약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나이가 서른한 살이었다. 엄마도 흠칫 놀라는 눈치였다. ‘얘가 이제 나한테 이런 큰 일을 말하지 않는구나.’라는 눈치였다.


나는 그날을 이후로 매일 하루하루 다시 성장하고 있다. 안 그래도 높은 불안도가 아이를 낳고는 더 심해졌었다. 현관문을 열고 밖에 나가는 일조차도 힘들었다. 친구하나 없고 연고 없는 지역에 살다 보니 육아 5년 동안 대인기피증도 생겨 사람들의 눈을 잘 쳐다보지 못한다. 내가 이렇게 나약했나?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나는 하나하나 5살 아이 키우듯 나를 키워간다.


‘오늘 현관문 열고 아파트 단지 한 바퀴 돌았네. 잘했어.’ ‘오늘은 마트도 다녀왔구나, 잘했어.’ ‘요즘 체력이 떨어진 것 같은데 운동 등록한 거 너무 잘했어.’ ‘회사 복귀 못할 줄 알았는데, 이력서 냈네 잘했어.’ ‘것 봐. 할 수 있잖아. 잘했어. 내일은 하나 더 해보자.’ 이러면서 말이다. 오늘은 해가 지고 난 후 산책을 했다. 낮에도 나가기 두려워하던 내가 밤 산책을 하고 오니 엄청난 성취감이 밀려왔다. 매일 눈을 뜨고 밥을 먹고 아이랑 산책을 하고 장을 보고 오는 일. 이런 사소한 일 하나하나부터 이겨냈다.


2020년생 출생한 아이들 엄마들의 커뮤니티에서 마음 맞는 언니를 알게 되고 오프라인에서 만나 벗을 삼으며 친구를 사귀는 법, 마음을 표현하는 법 등 정말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지키려고 하고 극복해나가려고 하니 벌써 많은 성장을 했음을 느낀다.


그간 블로그와 브런치스토리 또는 내 컴퓨터의 워드파일 그리고 수기로 쓰는 일기까지 내 마음과 생각을 기록하듯 남기며 루틴까지 생겼고, 하루를 허송세월처럼 보냈던 시간들을 꼭 해야 하는 일들로 하루에 3가지씩 하기를 지켜내니 이제야 좀 사람다운 인생을 살고 있음이 보인다.


미래에 잃어나지 않을 일까지 걱정하고 살았다면, 오늘만 잘 사는 법으로 루틴을 바꾸고 오늘 해야 하는 일들이 끝나면 핸드폰부터 끄고 잠에 든다. 잘할 수 있는 일과 못해도 해야 할 일, 지금은 중요하지 않지만 언젠가를 대비해해야 할 일등 해야 할 일들만 수두룩 했다면, 지금은 꼭 해야 할 일과 안 해도 큰일이 나지 않는 일로 나눈다.


그런 하루들이 차곡차곡 하루하루 쌓이니 1년이 되고, 2년이 된다. 그런 기록들이 데이터 베이스가 되니 인생이 보인다. 그냥 단순히 오늘을 잘 사는 것. 불안한 미래와 지나간 과거를 현재로 가져오지 않게 되니 살 것 같다.


‘내 인생은 왜 이 모양 이 꼴이야?’가 아니라 ‘아 행복하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하루들을 보내고 있다. 정성껏 만든 저녁메뉴 갈비찜을 너무나도 맛있게 먹어주는 우리 가족을 위해 보낸 귀한 시간. 밥 먹고 나면 배부르다 하면서 같이 나눠먹는 아이스크림. 저녁 야식이 떨어지면 야밤에 셋이 나가 편의점에 갔다 오는 일 이런 것들이 인생의 낙이었다는 걸 알게 돼서 행복하다.


아직 나는 과거를 놓지 못하고 있지만, 좋게 보낸 오늘 하루하루들이 쌓이다 보면 과거들은 흘러가지 않을까 붙들고 있다가 문득 발견된 행복을 놓치는 불상사는 이제 막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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