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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linetus Aug 29. 2021

프랑스 남부 75km 도보 여행(1)

상 자크 드콩포스텔Saint Jacques de Compostelle

바캉스를 맞이하여 프랑스 남부 시골집에서 8월을 보내는 중에 도보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사실 프랑스의 이번 8월 날씨는 한국의 그것과 많이 달랐다. 꽤 많이 서늘하고 비도 자주 내려 마치 9월 초가을을 연상케 하였다. 무려 프랑스 남부에서까지 서늘한 8월을 겪게 될 줄도 몰랐고. 이와 같은 날씨 덕분에 애초에 계획해놓은 여행, 물놀이 등을 하나둘씩 미루며 집안에서 보내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던 중, 이례적으로(?) 한 낮 기온이 35도까지 올라가는 주를 맞이하게 되었고 우리는 지금이야 말로 여름 햇살을 제대로 느끼며 캠핑을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여기고 예정보다는 좀 서둘러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4일 동안 75km를 도보로 이동하는 것은 나와 같은 초보 도보 여행자에게 있어 결코 쉬운 코스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감도 별로 안 잡히는 거리였다. 평소에도 종 종 3시간도 걸리는 산책을 해왔지만 내가 총 몇 km를 걷는지 등은 한 번도 체크해본 적이 없다. 나는 막연히 걷기를 좋아하니 그리 힘들진 않겠다고 생각하고 여행 계획에 별 의견 없이 동의를 하였다. 여행 동반자인 남자 친구가 캠핑, 야영 등에 워낙 익숙하여 모든 것을 맡기고 유유자적한 것이 미래의 나에게 죄(?)라면 죄..!




상 자크 드 콩포스텔 

Saint Jacques de Compostelle 


상 자크 드 콩포스텔 (위키피디아 사진)


우리가 걷게 된 길은 상 자크 드 콩포스텔 Saint Jacques de Compostelle 이라는 규모 있는 성지 순례 길의 일부분이다. 상 자크 드 콩포스텔은 성인 자크의 성묘가 있는 스페인 도시 이름이다. 프랑스에서 스페인까지 가로질러 수많은 교회, 성당, 예배당 등을 거친 다음 최종 목적지인 상 자크 드 콩포스텔까지 가는 긴 여정이다. 과거에야 물론 신자들의 여행길이었지만 오늘날은 도보, 심지어 캠핑카까지도 동원하며 각자 방식대로 여행을 즐기는 형태이다. 




상 자크 드 콩포스텔을 끝까지 마치려면 당연히 몇 개월을 잡아야 한다. 그러려면 체력 소모도 어마어마하기에 넉넉하게 몇 년에 걸쳐 이 여정을 끝마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와 같은 단기간 여행자들은 이 긴 여정의 일부분만 선택하여 여행을 할 수 있다. 상 자크 드 콩포스텔은 로마, 예수살렘과 더불어 세계 3대 순례길이라 길 표시가 명확하고 곳곳에 숙소들이 많아 도보 여행에 아주 적합하다. 산속 곳곳을 돌아다니는 경우가 많고 슈퍼 하나 없는 산동네를 주로 거치기는 하지만 숙소만큼은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텐트로 야영하는 것을 선택했고 텐트 부지를 제공하는 지트(도보 여행자 전용 숙소), 캠핑장들을 예약했다. 




여행 첫날! 

숙소까지 23km 걸어가기 


첫날 걸어야 하는 길은 23km. 사실 길이는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정말 우리를 힘들게 한 것은 느닷없이(?) 찾아온 8월 한낮 더위였다. 최고 기온을 만나기 전에는 견딜만했는데 기온이 서서히 올라가더니 35도에 육박하자 정말 지옥이 따로 없었다. 그늘 없이 땡볕 한가운데를 걸으니 죽을 맛이었다. 가장 힘들었던 구간은 저 멀리 숙소가 보이는데 아직 40여분 정도를 더 걸어야 했던 때였다. 서늘한 8월 날씨들에 몇 주간 익숙해있던지라 한여름 더위를 잠시 망각한 채 그 주를 선택한 것을 후회하였다. 이 날 이후, 도보 여행은 되도록이면 가을에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다음 날부터는 땡볕을 피하기 위해 새벽 6시부터 도보를 시작했다. 




파리의 다듬어진 대로들을 걸어 다니며 나름 걷기에 강하다고 자부하다가 꼬불꼬불한 산길을 따라 걷고 오르락내리락하는 하루를 보내고 나니 정말 탈진이라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지치게 되었다. 도보 여행 초보자의 화려하고 많이 더웠던 신고식을 치르게 된 것이다. 




숙소에서 받은 성지 순례 도장 
우리의 귀여운 텐트
프랑스 남부 음식 캬술레



우리가 여행 첫날 머무르게 된 산속 작은 마을에는 상점이라고는 슈퍼, 음식점, 술집을 겸하는 곳 하나뿐이었다. 그 곳에서 시원한 맥주와 프랑스 남부 음식 중 하나인 캬술레를 함께 먹으니 졸음이 밀려왔다. 다리가 너무 아파 마을을 돌아보는 것은 포기하고 얼른 텐트가 있는 숙소로 돌아왔다. 정신을 차려보니 텐트에서 자보는 게 정말 오랜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거의 성인이 되고 나서는 처음이다. 







텐트 옆 의자에 앉아 어둑어둑해지고 이윽고 칠흑 같은 밤을 맞이하는 마을의 전경을 지켜보았다. 작은 불빛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하루 종일 걸으며 목적이 있는 삶에 대해서 생각했는데 그 생각이 작은 불빛으로 인해 다시 되살아났다. 밤 10시까지 멍하게 불빛을 바라보다가 텐트로 들어가 빠르게 잠이 들었다. 




여행 둘째날 

여름 도보여행은 새벽부터!


그다음 날, 숙소에서 제공되는 간단한 아침 식사를 서둘러 마친 후 부지런하게 텐트를 정리하고 길을 떠났다. 더위만큼은 무조건 피해야 한다는 생각에 새벽녘부터 여행 일정을 시작한 것이다. 덕분에 산속 깊숙한 곳을 새벽녘부터 오가며 초원의 새벽 물안개, 여러 가축들, 해가 뜨는 풍경까지 고스란히 보게 되었다. 







새벽 공기, 계속하여 움직이며 열을 내는 내 몸을 모두 느끼며 풍경을 감상하는 것이 실로 오랜만이었다. '경험'을 하려면 움직여야 하는구나. 아리송하기도 당연하기도 한 말을 곱씹으며 부단하게 걸었다. 







프랑스 시골 풍경중 가장 좋아했던 것 중 하나는 작은 연못과 그 연못을 지키는 역시 작은 집 maisonette를 지나치는 것이었다. 연못들은 주로 농경지들 옆에 위치하여 농업수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기에 시골 여행을 한다면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작은 연못과 집이 있는 풍경이 청아하고 그 자체로 작은 세계와 같아 몇 번이고 고개를 돌려 쳐다보았다. 언젠가는 프랑스 인적 드문 산속 마을에 있는 작은 연못 옆에서 일주일 정도 지내보고 싶었다. 아침, 저녁으로 연못을 지키는 작은 오두막 창으로 하늘과 못을 함께 바라보고 싶다.  




사람이라서 그런 것일까. 마음에 드는 풍경에 집이 한 채 있으면 그 속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고 나 역시도 살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연상하게 된다. 과거에 내가 살았던 집, 미래에 살고 싶은 집까지 복합적으로 많은 생각들이 오간다. 그 내부는 보이지 않더라도 집이라는 존재 하나가 있으면 그곳에서의 삶까지도 순간적으로 그려보게 된다.




다소 험악했던 여행 첫날을 겪었지만 그 이후 빠르게 적응하여 새벽부터 부단히 움직여 큰 더위는 면했다. 

장기간 도보는 그 자체로 힘들었다. 하지만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기 마련인 지형 탐험이 오히려 사람을 묵묵하고 다소 해맑게 만들었다. 땀이 훅훅 나다가도 바람이 조금이라도 불면 선선하니 살 것 같았다. 평지가 나오면 운이 좋다고 좋아했고 산길을 앞두고선 초코 비스퀴를 야무지게 먹었다. 체력 소모를 많이 하니 밤이 되면 텐트에서도 잘만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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