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alinetus Sep 04. 2021

귀여운 동물에겐 권위적인 이름을!

함세스가무사히 돌아오길 바라며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 도시 중 하나인 트루빌을 여행하던 중이었다. 다른 도시로 넘어가는 버스 시간을 기다리며 동네를 산책하고 있던 중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는 전단지 한 장을 발견하게 되었다. 



'872FXG'라고 새겨진 함세스가 트루빌-쉬어-메어의 오트풀 147번 대로에서 달아났습니다. 

8월 14일 토요일 밤 11시 15분 


사진 아래에는 주인의 전화번호가 있었던 실종 전단지




파라오의 이름을 가진 늠름한 고양이다. 이제껏 다양한 실종 전단지들을 보아왔지만 이 전단지가 유독 눈에 들어온 이유 역시 멋진 이름 덕분이었다. 옆에서 친구가 '함세스'라고 발음했다. 불어 철자 R의 특유한 발음을 위해 목구멍을 천천히 좁히며 목을 약간만 긁는 발음으로 '하암'을 발음한 다음 '세스'로 끝을 낸다. 영어 Ramesses와 철자가 다르기도 하지만 e에 악센트가 붙은 것 역시 새삼스레 달리 보인다. 나 역시 함세스라고 불러보았다. '함세스'가 사라졌구나. 눈밑에 검은 줄이 있는 걸 보아하니 우리 고양이 꺌리넷과도 많이 닮았다. 아래에서 위로 쳐다보는 각도의 사진이라 그런지 더욱 여려보이는 와중 '함세스'라는 이름이 주는 여운이 계속 내 기억속을 맴돈다. 




중학생 시절, 람세스 2세의 일대기를 바탕으로 한 크리스티앙 자크의 소설 '람세스'에 흠뻑 빠졌었다. 그 당시에는 이 사람이 이집트학자 인지도 심지어 프랑스인 인지도 몰랐다. 세월이 흘러 노르망디 여행 중 우연히 발견한 고양이 실종 전단지로 인해 중학생 때 쉬는 시간마다 람세스를 읽어 내려가던 추억이 되살아났다.



 

런던 대영 박물관의 람세스 2세 흉상 (위키피디아 사진)




다시, 트루빌의 고양이 '함세스'에게로 생각이 돌아왔다. 그의 안위에 대한 걱정이 들었다. 나도 우리 고양이꺌리넷을 참 애지중지하기 때문이다. 걱정이 가장 크지만 한편으로는 조그만 고양이에게 이집트 파라오의 이름을 준 주인의 작명 센스가 마음에 들었다. 역사적이고 권위적인 이름을 귀여운 동물에게 주니 그 대비 효과로 인해 더 귀여워 보이는 효과가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우리 고양이 꺌리넷도 가끔은 '꺌리네투스' 와 같이 로마시대 장군님(?)과 같은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더 나아가 '꺌리네투스 막시무스'라고 치켜세워지기도 한다. 큰 이유는 없지만 그래서 귀여운 것이다! 




동행하던 친구와 귀여운 동물에게 권위적인 이름을 지어주는 것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보았다. 


'함세스, 이름이 멋지다. 귀여운 동물들에게 줄 수 있는 다른 멋진 이집트 이름들이 뭐가 있을까?'

'네페르티티 Néfertiti 어때?'




줄여서 티티라고 불러도 좋고 불어에서는 Néfer 부분이 짧아져 결과적으로 titi가 통 통 튀는 인상을 준다. 긴 이름인데도 나름 경쾌한 인상. 기원전 13세기 이집트 여왕의 불어식 이름을 멋대로 평가해보는 21세기 한국인 여행자가 여기 있다. 더불어 언젠가 우리의 새로운 가족이 될 수도 있는 한 암컷 고양이를 마음껏 상상해보았다. 슬그머니 미안한 마음이 일어 트루빌의 고양이 '함세스'가 무사하길 다시 한번 바라며 버스 정류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베를린 신 박물관에서 본 네페르티티 흉상 (위키피디아 사진)



네페르티티라고 하니, 대번에 생각나는 기억이 있다. 처음으로 베를린에 여행을 갔을 때, 박물관 섬에 들러 베를린 신 박물관을 둘러보았는데, 그때 네페르티티 흉상을 보게 되었다. 오직 이 흉상만을 위해 하나의 홀을 비워놓고 강철 유리로 철저하게 보호를 해놓았던 디스플레이 역시 인상적이었다. 이 흉상은 기원전 14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발굴 당시 색감을 비롯하여 보존 상태가 아주 훌륭하여 화제가 되었다. 기원전 14세기이면 이 여왕이 실제로 살았던 세기와도 같은데 생존 당시 만들어졌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그때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기력을 보충하기 위해 서둘러 박물관 카페에서 에스프레소 한잔을 마시던 것이 또 추억이라면 추억이다. 여하튼, 네페르티티는 클레오파트라보다 더 고양이에게 적합한 이름이라는 결론! 




사실, 나는 고양이뿐만 아니라 가지고 있는 작은 인형들에게 사뭇 진지한 이름들을 지어주는 것을 좋아했다. 




나의 악어인형 라오꽁




몇 년 전, 프랑스의 다이소 격인 에마 HEMA에서 2유로 주고 산 귀여운 악어인형에게 '라오꽁' Laocoön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적이 있다. 일단, 한국에서는 '라오콘'이라 배웠던 이 그리스 신화 인물의 프랑스식 발음 '라오꽁'이 귀여웠다. 사진 속 인형 뒤에 있는 이미지는 바로 이 라오콘과 죽어가는 그의 두 아들을 표현한 '라오콘 군상'이다. 내 악어인형과 같이 두면 좋을 것 같아 작게 인쇄해놓았다. 




이 조각 작품은 그리스 미술에서의 파토스, 즉 비애감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입을 한껏 벌리고 있는 내 악어인형에게 미술사의 거대한 주제 중 하나인 파토스를 대입시키는 것 역시 즐거웠다. 언젠가 귀여운 동물을 만나게 되면 그 아이 이름도 라오꽁으로 해줄까 하다가, 라오꽁의 인생은 평탄하지 않았기에 안 좋은 이름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였다. 




트루빌의 고양이, 함세스의 주인도 필시 파라오처럼 용맹한 고양이로 성장하란 뜻에서 이름을 지어주었을 것이다. (귀여운 효과도 있지만!) 전단지를 보았을 때가 8월 27일이었는데, 함세스가 지금은 돌아와 주인과 함께 창밖의 바다를 바라보고 있기를 다시 한번 바라본다. 트루빌은 노르망디 해변으로 잘 알려진 도시이다. 

작가의 이전글 프랑스 남부 75km 도보 여행(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