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lerie Perrotin 갤러리 빼호땅
정말 오랜만에 Perrotin을 방문했다. 이 곳은 창립자 에마뉴엘 빼호땅 Emmanuel Perrotin이 1990년에 설립한 세계적인 현대미술 갤러리이다. 참고로 한국 대표 작가 중 한명인 박서보가 이 갤러리의 소속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몇 년 전에는 여기서 한국 단색화가전이 열리기도 했다.
파리, 뉴욕, 도쿄, 상하이, 서울, 홍콩에 총 7개의 지점들을 두고 있으며 파리에는 두 군데가 있다. 이번에 들른 곳은 마레지구에 있는 갤러리이고 3층짜리 건물 전체가 전시 공간이다. 파리에는 수많은 현대미술 갤러리들이 있고 그 중 대표적인 곳들 중 하나가 이 빼호땅. 오랜만에 갤러리 전시들을 체크해야겠다고 다짐했을 때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올랐던 공간이다.
2개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인 LES YEUX CLOS, 직역하자면 ‘감은 눈’. 전시가 마음에 들었다. 작가 다섯명의 페인팅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페루와 런던에서 페인팅을 전공한 90년생 젊은 페루 출생 작가, Paolo Salvador의 유화 작품들이다. 지금까지 페루, 베를린에서 4차례 개인전, 수많은 단체전들에 참가했고 현재 베를린에 거주하고 있는 작가이다.
왼쪽에 있는 유화가 오래도록 눈에 들어왔다.
Paolo Salvador / Origine / 유화 / 200 x 250cm / Unique
띠 아래로 희미하게 바다가 펼쳐져 있다. 이 띠에 함께 손을 대면 하얀 동물이 말하고 싶은 이야기를 알 수 있고 교감할 수 있는 것 같다. 동물 위에 올라탄 남자는 떨어질세라 몸을 꼭 밀착하고 있지만 정작 동물은 달리고 있는 것 같지 않다. 흩날리는 띠들, 옆으로 연장된 꼬리로 인해 앞으로 나아가는 속도감이 생겨난다. 그러나 땅에 고정된 하얀 두 다리에선 시간이 멈춘듯한 긴장이 느껴진다.
신화, 민담에서 바다는 창조와 생명을 뜻한다. 이 하얀 동물은 남자에게 작품의 제목 Origine처럼 기원, 시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다. 희미하게 출렁이는 듯한 바다 물결이 마치 머나먼 원시적 과거의 한 잔상처럼 느껴진다. 과거의 조각이 교감의 기회를 빌어 불쑥 현재에 나타난 것 같다. 우뚝 멈춰 선 하얀 동물은 인간에게 원시적 세상을 보여주는 매개자의 역할을 한다. 그가 멈춰주었기에 인간은 흐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위쪽을 바라보고 있는 동물의 눈동자는 그 역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있음을 말해준다. 눈동자의 색깔 역시 남자의 피부색과 같다. 남자의 신체 아랫부분은 하얀 색감이 덧입혀져 있어 아래 동물과의 일체감이 드러난다. 이 작가가 페루의 민속 신화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는지 궁금해졌다.
그림이 있는 공간이 쾌적하다. 모든 갤러리들이 이렇게 큰 창문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빼호땅에 오면 확실히 신선한 느낌이 살아난다. 솔직히 환기가 잘 안 되는 곳에서 작품들에 집중하고 있으면 머리가 아픈 경우가 많다. 특히 대형 미술관, 박물관의 경우 2시간만 봐도 힘들 때가 많다. 작업이 손상되지 않는 한에서 환기를 잘 시킬 수 있는 공간을 둔 갤러리는 흔치 않다.
다른 창가에서 찍은 사진. 오후 2,3시 경이라 햇빛이 쨍하다. 이날 파리 날씨가 너무 좋았다.
밖을 내다보니 토요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계속 들어오고 있다. 주중에 계속 일만 하고 저녁 6시에 외출 금지 시작되기 전에 장만 서둘러 봐 오는 생활을 반복하다 보니 이렇게 사람들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른 작가 Simon Martin의 작품도 좋았다. 유화 끝부분에 처리한 진한 색감 작업으로 인해 측면에서 볼 때 부각되는 물성이 마음에 들었다. 머리와 손이 따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어떤 행동을 취하는 한 사람을 옆으로 세워둔 것 같으면서도 각 신체가 분리되어 있는 몽롱한 상태 같기도 하다.
옆에는 크기가 더 크면서도 환한 라임색이 돋보이는 작품을 배치해놓았다. 전시장에 풍성히 들어오는 자연채광이 더더욱 노란색과 푸른색 사이의 조화를 부각하는 오후였다.
마찬가지 같은 작가의 그림이 맞은편 벽면에 걸려있다.
다른 전시의 작품이 있는 풍경. 나는 작업 그 자체도 좋지만 사람들과 전시장의 풍경이 함께 보이는 장면들도 좋아한다.
Perrotin의 서점은 옆의 벽돌 건물 반지하층에 자리 잡고 있다. 갤러리 입구로 들어설 때 가끔 서점 안에 사람들이 있는데 그 장면을 바라본 후 갤러리로 들어서는 순간이 좋다. 나는 작품뿐만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고 어딘가 집중하는 사람들의 모습까지도 관람한다.
현재 전시 중인 작가들의 작품집, 이미지를 비롯하여 여러 현대미술 및 크리틱 매거진 등 다양한 책들이 판매되고 있다.
앞서 소개한 분홍색 회화, Origine의 작가 Paolo Salvador의 작품들을 더 보고 싶은 사람들은 아래 화가의 사이트를 천천히 구경해보실 수 있다.
https://www.paolo-salvador.com/
p.s.
Les yeux clos 즉, 감은 눈은 프랑스의 유명 화가 중 한 명인 오딜롱 르동의 유명한 그림 제목이기도 하다. 이 전시 큐레이터가 참여 작가들의 그림들을 본 후, 꿈과 명상, 내면으로의 침잠을 표현한 오딜롱 르동의 그림을 떠올렸을까? 예전에 오르세에서 본 적이 있다. 공공기관 집합 금지 해제가 내려지면 오르세 미술관도 조만간 갈 수 있기를 바란다.
Odilon Redon / Les yeux clos / 1890 / 유화 / 44 × 36 cm / 오르세 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