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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 Feb 01. 2022

그녀의 리버사이드 파크

"산책하러 가자" "그래"

우리는 옷을 대충 주워 입고 리버사이드 파크로 간다.




우리가 함께 써내려간 뉴욕의 첫 장에서, 리버사이드 파크를 빼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그는 나보다 4개월 빨리 뉴욕에 도착했다. 사실 그는 뉴욕살이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다. 모두가 뉴욕에 간다며 부러워했지만, 차분한 그의 성정과 city of city인 뉴욕은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와 내가 5년 전 뉴욕에 왔을 때도 우리는 뉴욕에 대해 정반대의 인상을 가졌다. 그는 처음 뉴욕에 도착했던 새벽을 떠올리며, 차에서 내리자마자 나는 역한 냄새와 길마다 널브러져있는 쓰레기더미들에 경악하며 '정돈되지 않은 도시'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미드타운, 소호, 어퍼이스트사이드, 미트패킹 디스트릭트 등 조금만 동네를 바꿔도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역동하는 그리고 흥미로운 도시'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워싱턴 D.C.에 살면서도 틈만 나면 뉴욕에 가기 일쑤여서 주변 사람들이 '뉴욕에 꿀 발라놨냐'고 할 정도였다.


그런 우리가 뉴욕에서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공간이 있다면 리버사이드 파크일거다. 그가 가을에 뉴욕에 도착하여 자리를 잡아 갈 무렵, 그는 집 근처에 좋은 공원을 발견했다며 내가 오면 꼭 같이 걷고 싶은 곳이라고 했다. 우리는 한국에 있을때도 참 많이 걸었다. 둘다 걷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특히 천변, 강변 등 물가 산책과 연이 깊다고나 할까. 그래서 그가 리버사이드 파크를 나와 걷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나는 내가 도착하기 전에는 리버사이드 파크 사진을 보내지 말아달라고 했다. 그리고 나도 인터넷으로 리버사이드 파크 사진은 찾아보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구글 지도상에서 위치와 크기만 보고, 참 위아래로 긴 공원이구나라고만 생각하고 덮어 두었다.


나는 영화를 볼 때도 예고편을 보는 것을 싫어한다. 감상에 앞서 다른 이들의 평가를 보는 것은 더더욱 싫어한다. 영화는 한 장면도 놓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봐야만 한다. 주어진 그대로의 예술가의 의도를 나만의 방식대로 오롯이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나는 리버사이드 파크 스포일러를 당하기 싫었다. 그와 리버사이드 파크를 걷게 될 그 날까지는 내 마음대로 그곳의 모습을 그려보고 상상하며 기대하고 싶었다. 내게 리버사이드 파크가 주어지는 그 순간에 온전히 느끼고 싶었다.


내가 도착한 첫날 그는 리버사이드 파크 잠깐 걸을래? 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겨울 우리가 함께한 시간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그 질문을 했을 때의 나의 표정이었다고 한다. 설렘과 걱정(그가 한창 바쁜 시즌이었으므로 걸으러 갈 시간이 나나? 싶은 그런 걱정이었다)이 뒤섞인, 오묘한 표정이었다고 한다. 그는 나의 마음을 참 잘 읽는다. 나는 그가 표정에서 정확히 읽었듯이 딱 그 마음이었고, 설렘 반 걱정 반으로 그를 따라 나선다.


일단 리버사이드 파크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참 컸다. 탁 트여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길이로 따지자면 뉴욕의 125번가에서 72번가에 이르는 기다란 공원이다(내 걸음걸이로 1번가당 1분정도 소요되니까, 쭉 따라 걸으면 거의 50분이 소요되는 큰 공원이다). 위아래로 기다란 줄로만 알았는데 폯도 참 넓어서 첫인상으로 말할 것 같으면 '생각보다 크다'였다.


아직 뉴욕의 겨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이라 너무 춥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곳저곳 뛰노는 다람쥐에 시선을 뺏기는 우리였다. 그는 다람쥐 사진을 찍었고 나는 다람쥐를 찍는 그의 사진을 찍었다. 4개월만에 처음 찍는 그의 사진이다.


"뉴욕 오는 비행기 안에서 읽은 프랑수아즈 사강의 짧은 에세이, '봉주르 뉴욕'에서 센트럴파크의 연인들은 다람쥐를 지켜보다가 다람쥐가 사라지면 키스한다던데." 라는 말을 괜히 흘려 보는 나였다.


그렇게 리버사이드 파크와 처음으로 만난 이후로, 우리는 밥 먹듯이 리버사이드 파크에 갔다. 집에서 두블럭만 걸으면 있는 가까운 공원이라 접근성이 한 몫 했다. 우리가 좋아하는 커피숍에서 커피를 사서 한 잔 씩 들고 허드슨 강변(riverside)을 따라 걸어내려가며 수많은 이야기꽃을 피웠다. 날이 맑든 흐리든, 화창하든 비가 오든 눈이 오든 걷고 또 걸었다. 그래서 리버사이드 파크의 이미지는 단 하나로 정의할 수가 없다. 파란 하늘과 리버사이드 파크, 노을이 지는 리버사이드 파크, 눈이 내려앉아 하얗게 변한 리버사이드 파크, 한 번의 산책에 30마리 이상의 강아지들을 볼 수 있는 리버사이드 파크...


한 달만에 이렇게나 많은 리버사이드 파크의 모습을 보았다. 앞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뉴욕의 시간은 최소 5년인데, 또 얼마나 많은 리버사이드 파크의 모습을 보게 될 지 기대가 된다. 새로운 모습도 많이 보게 되겠지만 계절이 반복되다보면 또 보는 모습도 생길 것이다. 그런 모든 모습들을 사랑하게 될 것 같다. 앞으로 함께 할 그와의 시간들에서, 그의 새로운 모습들도 이미 알던 모습들도 모두 사랑할 것 같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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