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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않아도 챙겨주는 짓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생색을 내야 하더라

by 이다한



일에서도 관계에서도 무언가를 말하지 않아도 필요할 것 같은 순간에 알아서 해왔다. 애써 티 내지 않고 챙겨주는 게 진짜 마음이라고 믿었기에, 그렇게 조용히 곁을 지켰다. 바라지도 않았고, 티내고 싶지도 않았다. 다만 그들이 조금 더 편했으면, 조금 더 웃었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한 행동들이 그들에겐 당연해지는 걸 느꼈다. 고맙다는 말은커녕, 점점 더 요구가 많아졌다. 어느새 나는 챙겨주는 사람이 아니라, 챙기는 게 ‘역할’이 되어 있었다. 그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애써 맞췄던 것들이, 돌아보니 나만 지쳐가는 일이 되어 있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만두지 못했다. 내가 멈추는 순간, 관계도 멀어질까 봐. 하지만 결국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이들에게 마음을 쓰는 일은, 스스로를 깎아먹는 일이란 걸 뒤늦게 깨달았다. 내가 말을 하지 않았기에, 그들은 그 마음의 무게를 모른 채 계속 가벼워졌던 거다.


이제 와 생각한다. 처음부터 그러지 말 걸. 말 안 해도 챙겨주는 짓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내가 먼저 그렇게 행동했기에, 그들도 그 마음을 가볍게 여겨도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표현하지 않으면, 그 마음은 없는 게 되고, 결국엔 나 혼자만의 일이 되어버린다.


다음부터는 내 마음을 감추지 않으려 한다. 챙기고 싶을 땐 말할 거고, 힘들 땐 도와달라고 말할 것이다. 조용한 배려도 좋지만, 진짜 소중한 관계는 말과 감정이 오가는 데서 시작된다는 걸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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