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를 만지는 일을 합니다.

[ 시선 시리즈 3 ] 보내는 일에 대하여

by 졔하


오랜만에 써본다.

정리해서 남기려고 이미 마련해 두었던 공간인데,

그동안은 계속 비켜서 있었다.

지금은 이 일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 하나를 남겨본다.




내가 해온 일에 대하여


내가 해온 일은

청년 발달장애인이

자기 삶을 설명할 언어를 갖기 전,

그 언어가 생겨나기까지의 시간을

곁에서 함께 걷는 일이었다.


말이 되지 않던 생각을

조심스럽게 꺼내볼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고,

글이 되지 않던 경험을

문장으로 옮겨 적는 시간을 함께 보냈다.


발표의 무대를 마련하고,

사진과 기록으로 하루를 남기며,

‘나도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되는 사람’이라는 감각이

조금씩 몸에 남도록 돕는 일이었다.


나는 앞에서 방향을 정하기보다

옆에서 속도를 맞췄고,

결론을 대신 말해주기보다

스스로 말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한 사람이

자기 삶을 자기 언어로 부르기 시작하는

아주 느린 순간들을

여러 해에 걸쳐 지켜보는 일을 해왔다.




2019년부터 지금까지,

나는 그렇게 청년 발달장애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배우고,

표현하는 시간을 만들어왔다.


그 시간들 속에서

말을 처음 꺼내는 사람이 있었고,

자신의 이야기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 장면도 있었으며,

조금 다른 하루를 살아보려는 선택도 생겨났다.


그 변화들은 아주 크지 않았다.

하지만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하고,

나 역시 무언가를 해내고 있다는

감각을 알아차리며,

그 깨달음 앞에서

조심스럽게 기뻐하는 장면들이

분명히 그 안에 존재했다.


어떤 이에게는

‘성장’이 목표가 아니라

하루를 살아내는 방식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늘 그 곁에 있었다.

앞에서 이끌지도, 뒤에서 떠밀지도 않은 채

이야기가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조금 비켜서서 자리를 내주는 사람으로.




보내는 일


하지만,

이 일이 늘 따뜻하거나 보람 있는 얼굴로만

남아 있지는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된다.


성장의 시간 뒤에는

떠남이 따라왔고,

그 장면이 반복될수록

마음 한쪽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혼란이 쌓여 갔다.


이제는

“모임을 나가고 싶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흔들렸다.

성장의 끝에 남는 것이

다시 시작이라는 감각 때문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함께 머무는 일처럼 보였지만,

실은 계속해서

보내는 역할을 해오고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자각하게 되었다.


떠나고,

일을 시작하고,

다른 삶의 단계로 옮겨가는 순간들.

그때마다 나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시간을 다시 쌓아야 했다.


이 반복은 생각보다 훨씬 버거웠다.

성과로 남지 않는 시간,

기록으로 설명되지 않는 감정,

그리고

이게 정말 맞는 일인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까지.




나는 그동안

공기를 만져왔던 걸까.


돌이켜보면

나는 공기를 만지고 있었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다만 그 공기는

그때의 공기였다.


그 시간을 함께 통과하지 않고서는

그 안에 있던 망설임과 떨림,

조금씩 바뀌어 가던 마음의 온도를

정확히 꺼내 보여줄 방법이 없었다.


어떤 결과물로 요약하기에는

너무 많은 장면이 흩어져 있었고,

지금의 언어로 설명하기에는

이미 다른 시간이 되어버린 것들이었다.


그래서 종종 막혔다.

무엇을 했느냐는 질문 앞에서

분명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만 남고,

그 시간이 어땠는지는

쉽게 말로 옮겨지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까지 뭘 해오신 건가요?


음… 공기를 만지는 일을 해왔습니다.

다만, 그게 공기여서

지금은 정확하게 보여드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 본다.


내가 해온 일은

아직 말이 되지 않은 생각과

말해도 되는지 망설이는 마음,

그리고

자기 삶을 조금 다르게 선택해도 될지

가늠해 보는 순간들 곁에

오래 머무는 일이었다.


그래서 이 일은

성과로 증명되기보다

사람 안에 남는 일에 가까웠다.

떠난 뒤에야 비로소 작동하고,

다음 단계로 옮겨간 후에야

조용히 드러나는 변화들처럼.




그 사실을 알면서도

마음은 자주 흔들렸다.

이 모든 것이

정말 남기고 있는 일인지,

아니면 그저

사라질 공기를 만지고 있는 건 아닌지.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려 한다.


내가 만지고 있던 것은

아무것도 아닌 공기가 아니라,

한 사람이 다음 단계로 이동하기 직전의 ‘압력’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이 일의 완성은 어디일까.

이 자리에 남아 있을 때일까,

아니면 떠날 수 있을 때일까.


여전히 그 질문 앞에 서 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성장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그 등을 바라보며 보내는 일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많은 마음과 망설임을 요구한다는 것.


그리고 나는,

그 혼란 속에서도

이 일을 계속 생각해 보려는 사람이라는 사실만은

부정하지 않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