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그러면서 나는 말했다
"새내기 때는 형을 되게 어른스러운 선배로 바라보곤 했어. 고학번이라 놀리기도 했지. 근데 웃긴 건, 전역하고 내년에 복학하면 내가 그때의 형 나이가 된다는 거야."
"그 때 그 배 위의 경험은 어디에도 없을 거야. 우린 남들에겐 없는 특별한 추억을 공유하는 거라고. 풍경도 생활도 모두 인상깊어. 앞으로도 못 잊을거 같아."
"마치 가면들처럼 사람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대하기로 했어. 대화 내용이든, 말하는 어조든, 마음의 태도든간에. 상대에 따라 맞춰가는게 필요하다 싶어."
"별안간 이런 생각이 들더라. 아직도 우리 인생이 다하려면 지금껏 살아온 세월의 3배를 더 살아야될텐데 도무지 엄두가 안나는거야. 그러다보니 부모님들이 새삼 대단하다 느꼈어.
"이제는 조금 후회하기도 해. 개강초에 너무 철없이 나서고 떠들어댔던 것 같아. 애써 인싸가 되려했던 나의 새내기 시절이 지금에 와서는 흑역사처럼 다가오기도 하네."
"군대에 들어가고나니 이전엔 몰랐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어. 또 지내면서 사회생활의 축소판을 몸소 느끼기도 하고. 아마 얼마 안되는 장점 중 하나이지 않을까."
"내게 생겨난 이런 변화들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 오히려 긍정적으로 보고 있지. 아마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면 좀 놀랄 것 같긴 해."
… B. 한편 그들이 이야기했다.
"우리들, 별거 아닌 부분에도 웃음이 너무 잘 튀어나오는 것 같아. 감정이입 자주하고 또 서로 리액션 잘 받아주고. 너희와 나누는 이런 이야기 흐름이 진짜 웃기고 유익해."
"딴건 몰라도 너의 입시나 학교생활에 대해선 걱정이 안됐어. 너 분야엔 늘 열심이었으니깐. 근데 군대에 간다고 하니 그땐 걱정이 많이 되더라. 너랑 정말 안 맞는 곳인걸 아니깐."
"전역하고 나니 부대에 있던 때가 오히려 마음은 편하고 재밌던 것 같아. 물론 다시 돌아가라고 하면 절대 안 갈거지만. 그래도 지금처럼 고민이나 현실적인 문제가 깊진 않았어."
"내가 보기엔 너의 진로가 완전히 바뀐 건 아니라 생각해. 결국엔 너가 관심을 갖고 어느정도 해왔던 영역에서 새로 결정하게 된거니 말이야. "
"솔직하게 말하는거지만, 너하고 이야기할 때에는 성별 그런거 상관없이 격없이 편하게 이런저런 것들을 털어놓을 수 있게 돼. 몇 안되는 사람 중 하나야."
"언제 이토록 나이를 먹어버린걸까. 서로 취해서 밤길에 챙겨주던게 엊그제 같은데. 아직 우린 그대로인 것만 같은데 사회는 우리보고 어른이 되어야 한대. 믿기지가 않아."
"가만보면 다들 본인만의 길로 서서히 나아가고 있는것 같아. 고등학교 다녔을때는 몰랐었지. 몇 년만에 이렇게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 줄이야."
…
많고 많던 대화 속 기억에 고스란히 보존된 내용은 사실 드물다. 몇개는 일부 왜곡됐을테고 몇개는 가물가물하다.
왜 담화는 이리도 쉽게 휘발되는 것인지 원망스럽지만 그래도 진심으로 좋았다. 적어도 그 말을 주고 받는 과정 사이에는 진심만이 가득했으니 말이다. 현재를 진단하면서도 추억을 서술했다.
디테일하진 않지만 그 갖가지 이야기들은 한가지로 향하는 듯 하다.
"세상은 각박해. 시간은 매서워. 사람은 어려워. 삶이란 버거워. 하지만 그럼에도 괜찮을거야."
흐리고 희미한 시야 속 그 불투명한 희망이 우리에겐 아직 실마리처럼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