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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행지를 추천하지 않는 이유

가장 좋은 여행지는 당신의 마음속에 있습니다

by 쥰쓰

"혹시 어디가 좋아요?"

여행업에 종사한다고 밝히면 어김없이 듣게 되는 질문입니다. 친한 친구부터 처음 만난 자리까지, 많은 분들이 제 경험을 통해 더 나은 여행의 힌트를 얻고 싶어 하시죠.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누군가의 시간과 노하우를 빌려 소중한 여행을 더 풍요롭게 만들고 싶은 것은 당연한 바람일 테니까요.


하지만 저는 되도록 여행지를 선뜻 추천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수많은 여행의 이면과 변수를 알기에 생긴 직업병 같기도 하고, 동시에 '여행'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에 대한 저만의 확고한 태도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여행을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행은 누군가의 답을 따라가는 일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떠오른 질문을 따라나서는 여정이어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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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병: 아름다움 너머의 현실을 보다


여행업계에서의 시간은 여행지를 보는 렌즈를 바꾸어 놓습니다. 눈부신 자연(관광자원)보다는 그것이 어떻게 여행상품으로 구성되는지, 예상 동선은 어떠한지, 발생 가능한 리스크는 무엇인지 등 소위 '운영자의 관점'이 먼저 떠오릅니다.


따라서 누군가에게는 로망 가득한 곳이 제게는 골치 아픈 클레임의 기억과 연결될 수도 있는 것이죠. 실제로 관광지의 이미지는 객관적인 실체라기보다, 여행하는 개인의 감정과 상황에 따라 주관적으로 형성되는 것(관광심리학의 '주관적 이미지 형성')에 가깝습니다.


그렇기에 "어디가 제일 좋았어요?"라는 설렘 가득한 질문은, 제게는 수많은 변수를 고려해야 하는 복잡한 문제가 됩니다. 사람마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나 추구하는 가치, 방문하는 목적이 제각각이기에, '최고의 장소'라는 보편적인 답은 존재하기 어렵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특정 장소를 정답처럼 추천하는 것은 그래서 망설여집니다.


그 '좋음'의 조건: 맥락이 만드는 특별한 경험


많은 분들이 제게 "어디가 제일 좋으셨어요?"라고 물으며 가장 좋았던 여행 경험을 공유받길 기대합니다. '저 사람이 좋았다면 나도 좋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겠죠. 하지만 여행의 '좋음'이란 결코 장소 자체에만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언제나 '맥락' 속에서 완성됩니다.


제가 '최고'라고 기억하는 여행은, 당시의 제 감정 상태, 누구와 함께였는지, 예상치 못한 날씨 변화,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순간적인 교감 등, 수많은 일회성 요인들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만들어낸 고유한 결과물입니다. 관광학에서는 이를 '상황적 만족도'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그렇기에, 제가 느꼈던 그 특별한 감정을 다른 분에게 그대로 '재현'시켜 드릴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제 추천이 의도치 않게 다른 사람의 기대를 왜곡하거나, 그들만의 발견을 방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여행은 타인의 감탄을 빌려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고유한 시선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느낄 때 진정으로 풍요로워집니다.


"누군가의 최고의 여행이, 또 다른 누군가에겐 그저 그런 하루일 수 있습니다. 여행은, 그 누구도 대신 골라줄 수 없는 자기만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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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의 전환: '어디'가 아닌 '왜', '무엇을' 묻다


그래서 저는 여행지를 추천해 달라는 요청을 받으면, 감히 질문의 방향을 바꾸어 되묻곤 합니다.


"이번 여행을 통해 어떤 감정을 채우고 싶으신가요?" 혹은 "지금 당신의 마음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여행의 만족도는 단순히 '무엇을 보았는가'보다 '개인의 내면에서 어떤 감흥이나 변화가 일어났는가'에 훨씬 더 깊이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관광 소비 역시 단순히 편리하거나 실용적인 측면(기능적 효용)을 넘어, 그 경험이 '나'에게 어떤 특별한 의미를 주는지(상징적 가치)에 기반할 때 진정한 충족감을 선사합니다.


가령 ‘기능적 효용’은 교통·숙박의 편의성이라면, ‘상징적 가치’는 SNS에 남길 수 있는 나만의 순간, 혹은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어떤 기억이죠.


일상의 소음을 피해 오롯한 평온함을 원하시나요? 아니면 낯선 문화 속에서 짜릿한 영감을 얻고 싶으신가요? 느긋한 산책과 사색의 시간이 필요한가요, 혹은 미식의 향연에 흠뻑 빠지고 싶으신가요?


이처럼 질문의 초점이 '장소'에서 '감정'으로 바뀌면, 제가 드릴 수 있는 조언은 단순 추천을 넘어선 '가능성의 안내'가 됩니다.


여행지는 결국 우리가 도달하고픈 감정의 상태, 혹은 만나고 싶은 나 자신을 향해 떠나는 내면 탐구 여정의 이정표일 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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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여행지를 고르는 가장 '나다운' 방법


최고의 여행지를 찾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역설적이게도, 외부의 정보가 아닌 내면의 목소리에 답이 있습니다. '지금 나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여행은 무엇인가?' 이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 그 자체야말로, 수많은 선택지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나만의 목적지를 찾는 첫걸음입니다.


물론, 다른 이들의 경험담이나 전문가의 조언은 훌륭한 참고 자료가 됩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외부의 소음보다 내 마음의 속삭임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그것이 나만의 만족스러운 여행 서사를 완성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기억하세요. 여행은 단순히 지도 위의 점들을 잇는 행위가 아니라, 나에게 필요한 감정, 만나고 싶은 나 자신을 찾아 떠나는 길입니다. 이는 성공적인 '관광 경험 디자인'의 시작이며, 능동적인 '자기 주도적 여행자'의 자세입니다.


제가 여행지 추천을 망설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여행지를 찬양하기보다 그 장소가 사람에게 어떤 감정을 건네줄 수 있는지를 먼저 생각합니다.


"진정으로 좋은 여행지는 정해진 곳이 아니라, 그 낯선 공간 속에서 내가 어떤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싶은지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니 다음번엔, "어디가 좋았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해보는 건 어떨까요?


"글쎄요, 그보다 지금 당신에게 정말 필요한 여행은 어떤 건가요?"



이미지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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