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의 언어를 감각의 언어로 번역한 JAL의 디자인 혁신
신용카드는 본래 ‘기능의 언어’로만 존재하던 차가운 사물이었습니다. 몇 퍼센트의 캐시백, 어떤 가맹점의 혜택, 연회비는 얼마인지. 오직 숫자와 조건으로만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던 시대였죠.
그러나 최근, 단 한 장의 카드가 그 견고했던 기능의 세계에 균열을 냈습니다. 일본항공(JAL)이 내놓은 이 카드에는 비행기 창문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작고 동그란 창문이 뚫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작은 창문이야말로, 기능의 언어가 감각의 언어로 번역될 수 있음을 증명한 가장 강력한 상징입니다.
2025년 5월, 일본항공(JAL)이 선보인 ‘JAL Pay 프리페이드 카드’는 단순한 결제 수단의 재설계를 넘어선, 감각의 재탄생이었습니다. 카드 정면에는 항공기 창문을 닮은 원형의 구멍이 뚫려있고, 전체는 JAL 항공기의 매끄러운 기체처럼 순백의 프레임으로 감싸여 있습니다. 그 위에는 어떠한 숫자나 소유자의 이름도 없습니다. 모든 기능 정보는 뒷면에 조용히 자리를 잡았죠. 마치 카드의 앞면을 오직 ‘경험의 창’이자, ‘기능 너머의 감성’만을 위해 비워둔 공간처럼 말입니다.
이제 사람들은 이 작은 창문을 통해 하늘을 찍고, 저 멀리 펼쳐진 바다를 담으며, 눈앞의 풍경을 포착합니다. 평범했던 결제 수단이, 어느새 ‘일상의 순간을 특별한 장면으로 기록하는 프레임’으로 작동하기 시작한 겁니다.
이는 단순히 돈을 쓰는 행위를 넘어, 여행의 기대를 미리 맛보고 그 감성을 타인과 공유하는 ‘기대의 의식’으로 확장됩니다. 작은 구멍 하나가 소비자의 마음속에 깊은 파동을 일으키며, 무미건조한 결제의 순간을 ‘추억을 향한 여정의 시작’으로 자연스럽게 환기시키는 것이죠. 그런데 JAL은 왜 이토록 감각적 설계에 집중했던 걸까요?
혹시 항공권을 결제할 때 그 묘한 설렘을 느껴본 적이 있으신가요? 카드를 꺼내는 그 순간부터 이미 여행이 시작된다는 그 느낌 말입니다. 대부분의 여행은 바로 그 ‘결제’라는 행위로 시작됩니다. 여행자들은 첫 소비의 순간에 여행의 실감을 얻고, 미지의 여정에 대한 감성적 기대치를 설정하곤 하죠. JAL Pay 카드는 바로 그 결정적 장면에, 브랜드만의 섬세한 감각을 예기치 않게 개입시킨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은, 이 시도가 단순한 마일리지 프로그램의 확장을 넘어선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여행의 시작점, 즉 ‘결제’라는 가장 비감성적인 단계에서부터 감성 중심의 설계를 시작했습니다. 이는 브랜드 경험의 첫 접점을 ‘디자인의 언어’로 재구성하여 여정 전체를 설계하려는 치밀한 구조적 전략으로 읽어야 합니다.
지금의 여행 산업은 ‘예약의 편리함’과 ‘가격 경쟁력’이라는 기능적 가치에 매몰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여행자가 진정으로 기대하는 것은 여전히 가슴 뛰는 감성적 파장과 생생한 경험의 기억입니다. JAL은 바로 그 감각의 우위를 꿰뚫고, 가장 비감각적인 수단이었던 ‘카드’의 디자인을 통해 디지털 경험의 맥락을 완전히 재해석한 것입니다.
물론 우려도 있습니다. 이런 감성적 접근이 실제 서비스 품질보다 포장에만 치중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문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감각’이며, 그 감각은 늘 ‘무언가를 강렬하게 떠올리게 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부정하긴 어렵습니다.
JAL Pay 카드의 작은 창문은 바로 그 장면을 만드는 스위치였습니다. 기술 발전의 속도만을 좇는 것을 멈추고, 인간 본연의 ‘여행이 주는 설렘의 순간’이라는 핵심 가치에 집중해야 할 필요성을 이 작은 창문이 보여준 것입니다. 이제 여행은 이동과 숙박의 조합이 아닌, 가장 강력한 ‘기억의 언어’로 재구성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미지 출처: 본문 내 카드 사진(JAL PAY 공식 사이트) /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