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1등들'> 정답만 모인 곳에 왜 감동은 머물지 않는가
최근 지상파 방송사에서 야심 차게 준비한 새 예능 프로그램 소식을 들었습니다. 각 방송사 오디션 프로그램의 우승자들, 즉 '증명된 1등'들만 모아 다시 왕좌를 가린다는 기획입니다.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출연진, 화려한 조명, 압도적인 가창력까지. 수치상으로는 실패할 수 없는 완벽한 조합입니다. 하지만 거실 소파에 앉아 그들의 무대를 마주하는 우리의 손가락은 자꾸만 리모컨 위를 서성입니다.
문득 십수 년 전의 어느 금요일 밤이 떠오릅니다. '슈퍼스타K'의 결승전을 보기 위해 TV 앞으로 모여들던 그 시절 말입니다. 그때의 화질은 지금보다 거칠었고 무대 조명은 어딘가 조잡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출연자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함께 숨을 죽이었고, 그가 흘리는 눈물에 같이 코끝이 찡해졌습니다. 그때 우리가 기다렸던 건 단순히 '노래 잘하는 기계'가 아니었습니다.
지금의 무대는 너무나 매끈해서 오히려 마음이 미끄러져 나갑니다. 음정 하나 틀리지 않는 고음과 화려한 퍼포먼스는 넘쳐나는데, 이상하게도 그 무대가 끝나면 기억에 남는 잔상이 없습니다. 혹시 우리도 모르는 사이, 무언가 소중한 것이 빠져버린 것은 아닐까요? 우리는 지금 최고의 기술을 구경하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누군가의 삶에 공감하고 있는 걸까요?
이 프로그램이 '올드하다'고 느껴지는 진짜 이유는 제작진이 시대를 오독(誤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여전히 시청자가 '최고의 기능'을 원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기능의 시대가 아니라 맥락의 시대입니다. 우리가 오디션을 소비하는 본질은 상품이 아니라 그 상품이 만들어지는 태도와 과정에 있습니다.
과거 '1등만 기억하는 세상'에서 오디션은 피라미드의 정점에 오르는 서바이벌 게임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런 수직적인 성공 서사에 더 이상 매혹되지 않습니다. 정보가 넘쳐나고 모든 것이 투명해진 디지털 환경에서, 이제 '1등'이라는 지위는 절대적인 신뢰의 보증수표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이미 증명된 이들의 완벽함보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이 자신의 한계를 깨트리려 애쓰는 탐구의 과정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합니다.
'왕들의 전쟁'이 파급력이 없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그들이 이미 왕이기 때문입니다. 성장이 멈춘 상태에서의 경연은 기술의 전시에 불과합니다. 바닥에서 시작해 조금씩 빛을 찾아가는 그 지루하고도 위대한 '서사'가 빠진 자리에, 도파민만을 자극하는 하이라이트 영상만 남았습니다. 기술을 판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걸었던 '동행'의 기억을 팔아야 했습니다.
이제 대중은 각자의 '취향'이라는 잣대로 자신만의 1등을 가슴속에 품습니다. 1등이 한 명뿐인 세상은 지났습니다. 누군가에게는 10등의 음색이 1등보다 소중하고, 누군가에게는 예선 탈락자의 진솔한 가사가 더 깊은 경험의 흐름을 만듭니다. '사람 IP'의 시대란, 방송국이 정해준 순위가 아니라 개인이 직접 발견한 신뢰의 관계가 주도하는 시대를 의미합니다.
디지털 시대의 인본주의란, 효율적인 결과물 뒤에 숨겨진 인간의 취약성을 긍정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방송이 해야 할 역할은 이미 완성된 자들을 모아 다시 서열을 매기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직 무대를 찾지 못한 수많은 '고유한 목소리'들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고 동행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을 만드는 것이어야 합니다.
서열화된 경쟁 대신 상생과 공존의 관점에서 오디션을 재정의해 보면 어떨까요? "누가 더 잘하는가"라는 이분법적 질문을 넘어, "이 가수의 목소리가 우리 삶의 어떤 결여를 채워주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시청자는 이제 구경꾼으로 남기를 거부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발견한 원석의 성장을 돕는 '조력자'이자 '파트너'로서 무대에 참여하고 싶어 합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압도적인 1등의 탄생이 아닙니다. 나의 불완전함과 닮아있는 누군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자신의 노래를 불러내는 그 평범하고도 비범한 순간입니다. 그런 무대만이 디지털의 차가운 속도 속에서 우리를 잠시 멈춰 서게 하고, 다시금 인간적인 온기를 회복하게 합니다.
과연 우리는 세상이 정해준 1등의 화려한 기교에 감탄하고 싶은 걸까요? 아니면 서툴지만 나만의 해답을 찾아가는 누군가의 발걸음에 나의 마음을 포개고 싶은 걸까요? 어쩌면 우리가 진짜 기억하고 싶은 것은 1등의 이름이 아니라, 그와 함께 호흡하며 느꼈던 성장의 감각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