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 화병의 왕관패모꽃

고흐의 탈을 쓰다

by 채코

작품 속에는 사연을 가진다. 예술가가 인물화, 정물화, 풍경화 중에 '저거 한번 그려볼까?'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세심한 눈을 가진 고흐는 그림 속에 의미를 부여하여 후대의 사람들에게 작품을 바라보는 시각을 다양하게 하려는 마음을 가진다.


'그냥 지저분한 꽃 그림을 그린 것 가지고 야단이냐'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누구에게 영향을 받아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지 예술가의 사연을 알아가는 것도 명화를 읽는 쏠쏠한 재미를 가진다.

900%EF%BC%BFScreenshot%EF%BC%BF20250313%EF%BC%BF054946%EF%BC%BFSamsung_Internet.jpg?type=w580 왕관패모꽃

이 시기는 19세기 따뜻한 5월 봄날이고 프랑스와 독일의 정원에 피는 왕관패모꽃이다. 긴 줄기에 주홍색의 꽃이 세 개에서 네 개 정도 핀다. 구리 화병 속에 갇힌 패모꽃을 과연 누구에게 선물하고 싶었던 건가?


사랑하는 여인이 있다. 눈을 뜨면 그곳으로 출근한다. 늘 입던 지저분한 옷을 툴툴 털고 세수도 하지 않은 얼굴로 슬리퍼를 질질 끌면서 이동한다. 조용한 카페는 벌써 커피향으로 가득하다. 가게 앞마당을 빗자루로 쓸고 있는 세가토리가 멀리서 보인다. 세가토리와 계약을 맺고 정물화, 인물화를 그려주면서 카페에서 신세를 지고 있는 중이다. 그림을 잘 그려주는 대가(주인장 마음)로 식사와 따뜻한 차를 제공받는다. 그것은 나에게 아무 걱정 말고 그림만 그리라고 지원해 주는 테오에게도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그림을 그려 밥벌이를 못하는 신세를 한탄만 할 것이 아니다. 그래서 아침 일찍 카페로 출근하는 길에 오늘은 또 어떤 주제를 선정하여 그림을 그릴지 고심한다. 집에서 카페까지 걸어가는데 마침 정원에 주홍색, [왕관패모꽃]이 활짝 피어있는다. 그 꽃에 다가가 향내를 맡아본다. 봄 날씨와 어우러지게 환하게 핀 꽃을 한 다발 꺾어서 품에 안아 본다. 그녀를 온전히 가질 수 없지만 여왕처럼 아름다운 꽃을 쉬 꺾어서 품에 안을 수 있으니 좋은 기분이다. 꽃을 가지고 카페에 들어가 식탁에 홀로 놓인 구리 화병에 꽃을 넣어 둔다. 가늘고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세가토리와 눈인사를 하고 가만히 의자에 앉아 그때부터 몰입하여 그림을 그린다. 물론 세가토리와 사랑을 하고 연애를 하는 중이지만 나같이 초라하고 인기 없는 예술가를 좋아할 리 만무하다. 이 카페에 드나드는 손님 중에 나이가 지긋하지만 혼자 사는 세가토리를 차지하려는 늑대가 무수히 많이 존재하므로 초라하고 볼품없기에 늘 순위에서 벗어난다. 세가토리 역시 예술가들의 권력과 지배에 눈독을 드리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매일 만나는 세가토리를 참으로 귀하게 여기고 사랑스럽다. 그 느낌 그대로 화폭에 고스란히 담아본다. 기쁨과 슬픔을 표현하기 위해 환하게 비친 꽃이 있고 축 늘어진 꽃을 배치하여 세가토리에게 바칠 그림을 서서히 완성해 간다. 최근에 시그낙의 영향을 받아 바탕을 점묘법으로 완성한다. 주홍색과 대치되는 파란색의 점들을 빠르게 찍어놓고 보니 왕관패모꽃이 흔들흔들 춤을 추게 된다. 내 마음을 담아 사랑의 꽃을 그녀에게 선물한다.


그리하여 한 폭의 명화가 완성된다. 그 꽃은 사랑하는 여인을 생각하는 마음이 담겨있는 고흐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작품이 된다. 세가토리는 그가 하늘로 떠나기 전 마지막 사랑이기도 하다.


그림을 보면 고흐의 모습이 그려진다._채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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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1822366170.jpg?type=w580 뉘넨, 파리, 아를 언젠가는 여행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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