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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또비됴 May 29. 2024

실화의 힘을 살리지 못한 밋밋한 추격전!

영화 <시민덕희> 리뷰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실화가 참 많은 세상이다. 지난 2016년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세탁소 주인이 국제 보이스 피싱 조직의 총책을 검거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한 일이 벌어졌다. 경찰도 못하는 이 일을 해낸 평범하지만 용기 있는 시민. 하지만 정작 본인은 사기당한 3,000만원도 못 찾고, 큰 포상금도 못 받는다. 이 이야기를 모티브 삼은 <시민덕희>는 실화의 힘을 동력삼아 적절한 각색으로 영화적 재미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 재미가 오래가진 못한다.


<시민덕희> 스틸 / 쇼박스 제공


세탁 공장에서 일하는 평범한 중년 여성 덕희(라미란)에게 악재가 겹친다. 집은 불타고, 홀로 키우는 아이들과 갈 곳도 없고, 여기에 보이스피싱까지 당한다. 손대리(공명)라는 보이스피싱범에게 전달한 금액은 무려 3,200만원. 경찰서에 신고하지만 담당자인 박형사(박병은)는 기다려 보라는 말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손대리에게서 전화가 온다. 쌍욕을 해도 모자를 판인데, 그에게서 중국 칭다오의 보이스 피싱 조직에서 자신을 구해주면 돈을 되찾을 수 있을 거라는 제안이 온다. 이 사실을 박형사에게 전하지만, 다른 일에 치여 듣는 둥 마는 둥. 할 수 없이 덕희는 어떻게든 자신의 피 같은 돈을 찾기 위해 공장 절친 동료인 봉림(염혜란), 숙자(장윤주)와 함께 칭다오로 넘어가고, 그곳에서 택시 기사인 예림(안은진)과 합세해 손대리가 있는 미싱 공장을 찾아 헤맨다.


<시민덕희> 스틸 / 쇼박스 제공


<시민덕희>는 제목 그대로 평범한 이들이 범죄자를 잡는 시민 영웅의 이야기다. 덕희가 가진 능력이라곤 빠른 추진력인데, 영화는 캐릭터의 장점을 오롯이 가져오듯 빠르게 앞만 보고 달린다. 보통 영화 초반부에는 주요 인물들의 전사를 충분히 보여주고 이를 바탕으로 전개하는 방식을 취하는데, 박영주 감독은 최소한의 상황 설정만으로 인물을 설명하고, 초반부터 사건에 집중한다.


이런 전개 방식은 보는 이들에게도 시원한 스토리 전개를 전하는데, 특히 중년 여성이자 홀로 아이를 키우는 엄마 이미지 보다 돈을 갈취한 이들을 꼭 잡고야 말겠다며 고군분투하는 인물로서 부각된다. 이로 인해 범인을 추격하는 추격자로서 덕희를 바라보게 되고, 영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흥미진진하게 진행된다.


<시민덕희> 스틸 / 쇼박스 제공


영화는 덕희가 있는 한국과 더불어 손대리가 있는 중국 칭다오 미싱 공장을 또 다른 주요 공간으로 삼는다. 감독은 덕희를 통해 시민 영웅의 면모를 보여주고, 손대리를 통해 보이스 피싱 조직의 체계적 수법과 악랄함을 만천하에 공개한다. 덕희와 반대로 손대리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은 다수의 영화에서 봐왔던 범죄집단의 이야기와 별반 다르지 않아 새로움은 떨어진다. 이곳에서 손대리가 더 큰 위험에 처해야 덕희의 스토리가 산다는 건 알겠지만, 때때로 그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부분이 보인다. 마치 덕희의 감정을 뒤흔들고, 추격 시 등장하는 장애물을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비춰질 때도 있다.


<시민덕희> 스틸 / 쇼박스 제공


이런 공간 쓰임의 불균형과 더불어 가장 아쉬운 건 덕희 동료들이다. 극 중 덕희가 총책을 잡을 수 있는 건 본인 자신의 힘이 아닌 함께 칭다오에서 고생하는 동료들 덕분이다. 하지만 이 또한 너무 기능적으로 소비한다. 봉림은 중국어, 숙자는 현장 사진, 예림은 운전 등 각자가 가진 능력만 부각한다. 한 팀으로서 보이기 보다는 조력자로서만 이들이 보이기 때문에 기대보다 디키타카를 통한 재미는 덜하다.


이런 아쉬움에도 끝까지 추격전을 지켜보게 하는 건 배우들의 힘. 특히 라미란의 연기는 덕희가 가진 사회적 약자로서의 무시, 억울함을 호소하는 감정선을 충분히 와닿게 한다. 이 때 그녀만이 가진 보편성이 힘을 발휘하는데, 후반부 성과 힘의 차이가 남에도 총책 앞에서 “나? 피해자다.”라며 물러서지 않고 기지를 발휘하는 덕희의 모습은 팍팍한 현실을 잊게 하는 시원한 사이다처럼 느껴진다. 이처럼 중년 여성의 진솔한 얼굴을 가진 라미란의 연기는 영화의 뷰 포인트다.  


<시민덕희> 스틸 / 쇼박스 제공


장르 영화의 쾌감과 더불어 보이스 피싱의 심각성을 다루는 영화는 비록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지는 못하지만, 피해자들이 겪는 고통을 어떻게든 담으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극 중 덕희가 피해자를 찾아가 이야기를 듣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범죄가 사회적 약자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피해 대상자가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불러 일으킨다. 자칫 다큐처럼 보일 수 있는 부분임에도 이 장면을 감독이 넣은 건 이 작품이 가진 의미를 강조하기 위함이라 볼 수 있다.


이 영화가 동일한 소재를 다룬 <비키퍼>의 제이슨 스타뎀처럼 끝까지 악인을 쫓아가 처단하는 카타르시스를 전하는 건 아닐지언정, 보이스 피싱 피해자들의 마음은 충분히 위로하고도 남는다. 마지막까지 돈에 휘둘리지 않고 평범한 시민으로 걸어가는 덕희의 뒷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


평점: 2.5 /5.0
한줄평: 실화의 힘으로 달려가지 못한 밋밋한 추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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