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튼 아카데미> 리뷰
국내 개봉 전부터 기다렸던 작품이다. 알렉산더 페인과 폴 지아메티가 조우했다는 사실은 물론, 폴 지아메티와 도미닉 세사, 더바인 조이 랜돌프의 연기가 좋다는 호평, 그리고 연말 시즌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따뜻한 영화란 찬사는 기다림을 기대감으로 바꿨다. 올해 2월 개봉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절이 지나 연말에서야 이 작품을 만났다. 늦게 마주했지만, 크리스마스 전후로 이 작품을 만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알렉산더 페인이 직조하고 세 배우가 엮는 이 따뜻한 영화는 연말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왓 더~~”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가진 기숙학교 바튼 아카데미의 역사 선생님 폴(폴 지아마티)과 학생 털리(도미닉 세사)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불운이 겹친다. 폴은 가족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크리스마스 방학 당직 교사가 되어 집에 가지 못하고 학교에 남는 학생들을 돌봐야 한다. 까칠한 우등생 털리 또한 융통성 없는 폴과 연휴에도 함께 지내야 한다. 산타할배가 도왔는지, 털리를 뺀 나머지 학생들은 이곳에서 탈출하고, 그는 폴, 급식 주방장 메리(더바인 조이 랜돌프)와 텅 빈 학교에 남는다. 폴과 털리는 마치 톰과 제리처럼 지내지만, 같이 있는 시간이 많을수록 서로의 아픔을 알게 되고, 메리 또한 이들과 자식 잃은 슬픔을 공유하며 가깝게 지낸다. 이후 폴은 산타처럼 털리, 메리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학교 밖으로 현장체험학습을 떠난다.
알렉산더 페인이 우리를 데려간 시기는 1970년대다. 그 느낌을 살려 아메리칸 뉴웨이브 시네마 형식을 차용한 영상은 영화를 수놓는다. 개인적으로 그 시대의 영화를 본 사람은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그때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영화사 로고부터 1.66: 1 화면비, 거친 필름 질감 등 한 마디로 예스럽다. 마치 오늘날의 관객에게 과거 자신이 향유했던 그 시절의 향수를 전하는 듯하다.
알렉산더 페인의 영화를 쭉 지켜본 이들이라 그가 매번 로드무비 형식을 취하는 걸 알고 있다. <어바웃 슈미트>는 고향으로의 여행, <사이드 웨이>는 캘리포니아 와이너리 여행, <디센던트>는 아내의 불륜남을 찾기 위한 여정 등 주인공 남자들은 언제나 자신의 공간을 떠나 새로운 길을 떠난다. 공간의 여정이었던 전작과 달리, 이번 영화는 시간의 여정을 떠난다. 감독의 첫 시대극이라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그는 그 시절 실제 있을 법한 역사 선생 폴을 관객에게 소개하고 인물의 성장통을 보여준다. 그리고 지금 보다 모든 면에서 딱딱했던 사회를 배경으로, 그의 의미 있는 결단을 지켜보게 한다. 어쩌면 영화는 그가 진정으로 어른의 모습을 갖추는 과정을 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 인터뷰에서 폴 지아메티는 자신이 연기한 ‘폴’은 일종의 위선자라고 말한 바 있다. 극 중 폴을 보면 규칙과 규율에 맞게 학생들을 교육하는 선생이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자신이 세운 기준에 맞춰 학생들을 재단한다. 하지만 정작 그는 기준 미달이다. 매일 술독에 빠져있고, 자신감 결여에 역사 선생 아니랄까 봐 과거에 매여 산다. 그런 그가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이런 그는 털리와 함께 지내면서 점점 변한다. 서로 다른 성향의 두 인물이 얽히고설킨 에피소드를 경험하면서 서로의 단점, 결함을 알게 된다. 일명 ‘앙트레 누’(entre nous, between us, 우리끼리의 이야기)가 쌓이면서 서로에게 가진 편견의 벽이 허문다. 폴은 자신의 몸에서 왜 비린내가 나는지, 어느 쪽 눈이 보이는지, 과거 하버드에 입학했음에도 이 학교에 온 이유 등을 소개하고 털리 또한 그동안 왜 자신이 까칠하고 껄렁한지, 그토록 집에 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서로의 상처는 신뢰로 바뀌고, 초반과는 전혀 다른 둘도 없는 사제(또는 유사 부자)가 된다. 아무리 가까운 부부지간이라도 서로를 잘 모르기 마련. 사제지간이라면 더 모르는 게 당연한데, 메리를 통해 알게 된 부부 퀴즈 TV 프로그램처럼, 폴과 털리는 문제를 틀리면서 서로에 대해 점점 알게 된다.
이들의 관계 지형 변화에 영향을 주는 건 메리의 역할도 크다. 대학 입학금 마련을 위해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세상을 떠난 아들의 일은 언제나 그녀를 옥죄지만, 그 시절 인종차별을 견디는 것처럼 견디고 인내한다. 그런 상황에서도 매번 맛있는 음식을 내어줄 정도로 정이 넘친다. 자신이 인정한 사람들에 한해서지만. 이런 메리의 성향상 소원한 사이인 이들에게 꼭 필요한 가교 역할을 자처한다. 후반부 보스턴으로 현장 학습을 가는 것도, 메리 덕분이다.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연말에 이르러 각자 방어기제로 사용한 옹고집, 은따, 무덤덤을 내려놓고, 오롯이 새해를 맞는 이들의 모습이다. 여러 일들을 함께 겪은 후, 서로의 빈 부분을 채워주는 이들은 비로소 느슨한 연대를 맺는다. 유사 가족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순간 온기조차 없는 학교 안을 이들의 따뜻함을 채운다. 이런 부분에 있어 이 영화는 연말 최적의 영화라 말할 수 있다.
이 따뜻한 여정을 함께 해서인지, 극 후반부 폴의 결심은 비로소 그가 진정한 선생으로서 제자를 위해 행동을 한다. 비로소 자신이 아닌 의미 있는 이타적 행동을 하는 폴은 그 순간 어른으로 성장한다. 알렉산데 페인의 남자 주인공이 그러했던 것처럼.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 선생, <굿 윌 헌팅>의 맥과이어 선생이 떠오른다. (아이러니하게도 두 인물 모두 로빈 윌리엄스가 맡았다.)
보편적인 이야기를 특별하게 만드는 감독의 재주 아래, 폴 지아메티와 도미닉 세사, 더바인 조이 랜돌프의 연기는 빛난다. 극 중 외사시(外斜視)로 등장하는 폴 지아메티의 눈동자 연기, 대선배와의 호흡에서도 뒤처지지 않고 티키타카를 보여주는 도미닉 세사, 슬픔과 담대함을 동시에 연기하는 더바인 조이 랜돌프의 조합은 최적의 조합이라 말할 수 있다. 참고로 폴 지아메티는 골든글로브를 더바인 조이 랜돌프는 오스카를 받았다.
<바튼 아카데미>는 스스로 자신을 가둔 한 남자가 비로소 그 벽을 깨고 어른이 되는 과정을 그리는 동시에, 상대방을 쉽게 평가하는 사회 풍토의 문제점도 지적한다. 그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려는 노력도 하지 않은 채, 아주 빠르게 디지털 데이터로, MBTI로 등급을 매기거나 사람을 분류한다. 온전히 그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천천히 알아가야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처럼, 감독은 자기 생각을 오롯이 펼칠 수 있는 과거로 회귀하지 않았을까? 좀 더 자신을 내려놓고, 이타적인 마음으로 상대방을 생각하는 연말이 되기를 바란다. 폴과 털리, 메리와 함께~
평점: 4.0 / 5.0
한줄평: 유독 추운 연말, 서로의 온기가 되자는 결심!
* <바튼 아카데미>는 넷플릭스, 쿠팡 플레이, 웨이브, 애플tv +, 유플러스 모바일 tv, 왓챠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