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트> 리뷰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궁금했다. 광활한 사막을 배경으로, 강렬한 비트 사운드를 삽입해 어떤 지옥도를 보여줄지 그 실체가 보고 싶었다.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았으니 보기 쉽지 않은 영화이겠지만, 그럼에도 이 작품이 보여주는 잔혹한 여행을 함께하고 싶었다. 드디어 만난 영화. 심장을 터지게 만드는 비트가 온몸을 감싸더니 어느 순간 잔혹한 사막으로 인도했다. 그리고 벗어날 수 없는 고통의 순간이 이어진다. 마치 지구상 영원히 끝나지 않은 전쟁의 공포가 다시 되살아난 듯이.
아무것도 없는 사막 한가운데에서 펼쳐지는 레이브 파티. 스피커를 타고 울리는 비트에 몸을 맡긴 사람들은 모두 미친 듯이 춤을 춘다. 다섯 달 전 집을 떠난 뒤 행방이 묘연한 딸을 찾기 위해 전단지를 나눠주는 부자(父子) 루이스(세르지 로페스)와 에스테반(브루노 누녜스 아르호나)만 빼고. 딸을 봤다는 사람은 없어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이들은 파티 참가자들로부터 사막에서 다른 레이브 파티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러던 중 돌연 군대가 들이닥치며 파티는 종료된다. 군인들의 지시에 따라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하지만 일부 참가들은 그 행렬에서 도망치고, 루이스 또한 딸을 찾기 위해 그들의 뒤를 따라간다. 하지만 그 선택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는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시라트(sirât)’는 이슬람에서 천국과 지옥 사이를 잇는 좁고 위험한 다리를 말한다. 그냥 다리도 아니고 머리카락보다 좁고, 칼보다 날카로운 다리다. 루이스 부자와 일부 레이지 참가자들은 군대의 시야를 벗어나 자신들이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향해 행렬을 이탈하는데, 그 이탈은 곧 자유의 길이 아닌 지옥의 길로 향하는 꼴이 된다. 워낙 험난한 길임에도 자신들이 원하는 삶을 추구하려는 그들의 의지는 한순간 자신들의 무덤을 판 꼴이 된다.
영화에서 자세하게 설명되지 않지만, 세상은 전쟁이 벌어지기 전이다. 내전 혹은 제3차 세계대전이 벌어질 것 같은 분위기가 암시된다. 이런 상황에서 대열에 이탈한 이들은 자유가 아닌 전쟁 상황을 회피하고 도망가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루이스 부자가 따라나선 이들은 팔, 다리가 없고, 자의든 타의든 가족을 잃어버린 과거가 있는 등 전쟁을 통한 상흔이 꽤 깊다. 그 상실의 고통을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은 이들은 자신만의 피난길에 오른 것. 그러나 그들의 망각은 곧 마주할 현실이 전쟁이란 지옥에 휩싸여있다는 것까지 잊히게 만들며 그들이 가장 공포스럽게 생각하는 상실의 고통을 안긴다.
동행자들과 결은 다르지만 루이스 또한 자식을 찾아 헤매는 그 상실감을 어느 정도 알고 있고, 이들과 함께 다니며 그 고통을 몸소 체험한다. 스포일러라서 말할 수 없지만 그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어느 순간 주인공들은 자신들이 전쟁을 피해 달아난 게 아니라 원래 전쟁이란 지옥으로 들어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럼에도 이들이 행하는 건 결국 잊기 위한 몸부림이다. 모든 게 사라진 사막 한 가운데, 모든 걸 잊게 하는 물 한 모금과 레이브 파티에서 구해온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비트에 몸을 맡기는 것. 하지만 초반부 레이브 파티에서의 춤과 사뭇 다른 이들의 춤은 곧 죽음의 무도처럼 느껴진다.
영화는 이들의 지옥 여행을 통해 전쟁은 없어진 게 아니라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걸 환기시킨다. 평화는 잠시뿐이며, 우리에게 지옥은 언제나 찾아올 수 있다는 걸 강조한다. 우·러 전쟁,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 등 평화롭던 세상이 한순간 풍비박산 날 수 있다는 건 여러 매스컴에서도 볼 수 있는데, 그 위험은 뉴스를 마주할 때 일뿐, 정작 보는 이들은 자신의 세상은 안전하다는 안도감을 느끼며, 전쟁의 공포를 쉽게 잊는다.
감독은 그 위험성을 경고하며 사막이란 공간과 레이브 파티에서 흘러나오는 비트의 이중적인 면을 강조한다. 평화로운 시대의 사막은 파티를 즐길 수 있는 곳이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그 자체로 인간을 고립시키는 지옥의 땅이 된다. 영화의 초반과 후반부 대척점을 보이는 사막의 모습은 이를 강조한다.
이 작품이 관객의 마음을 요동시키는 건 비트를 통한 사운드 효과의 쓰임새다. 폭풍 같은 비트는 심장을 요동치게 만드는 데, 이 또한 상황에 따라 이 비트가 요동에 그치는 게 아닌 심장을 터지게 할 수 있다는 이면을 멋스럽고 잔혹하게 그린다. 이는 앞서 소개한 것처럼 초반부와 후반부가 달라져 보이는 인물들의 춤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이 영화의 완성도를 평가하는 절대적 기준이 되는 건 아니지만, 이 상을 수여한다는 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영화의 의미는 두 가지로 축약할 수 있는데, 하나는 현시대가 또다시 전쟁의 위험성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 그리고 사운드 효과가 이를 전달하는 다리 역할을 맡았다는 것이다. 특히 극 중 선보인 음향의 다층적 극대화는 영화가 곧 현 시대의 문제점을 전하는 스피커 역할로서 기능한다는 것을 방증한다.
누군가에게는 진입장벽이 높을 수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종국에 펼쳐지는 최대치의 공포와 아찔한 서스펜스는 이런 류의 영화를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숨죽여 지켜보게 만든다. 조지 밀러의 <매드맥스> 등 그 어떤 블록버스터보다 압도하는 서스펜스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결코 해피엔딩을 그리지 않는다. 물론, 칼보다 날카로운 다리를 건너오고, 그 다리의 숫자가 늘어남에 따른 안도감은 있지만,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이 사막에서 레이브 파티가 열릴 수 있을까? 그때 들었던 비트에 온전히 춤을 출 수 있을까? 전쟁은 현재 진행 중이다.
덧붙이는 말
1. 이 영화는 무조건 극장에서 봐야 한다. 이유는 극 중 들리는 비트를 온몸으로 체감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운드가 관객을 지배하는 영화의 매력을 오롯이 느끼고 싶다면 무조건 우수한 음향 설비를 갖춘 상영관을 가기 바란다. 참고로 시사회는 롯데시네마 광음시네마에서 진행했는데, 진절머리 날 정도로(매우 긍정적인 표현) 사운드의 쾌감과 공포가 온전히 전해졌다.
2. ‘전쟁은 현재 진행중이다’라는 영화의 메시지는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의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와 관통한다. 다가오는 핵공격에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인물들의 얼굴은 <시라트>의 주인공들과 오버랩된다. <시라트>를 보기 전이나 후,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를 보기 바란다.
사진 출처: 찬란
평점: 4.0 / 5.0
한줄평: 전쟁의 공포를 알리는 잔혹한 스피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