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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또비됴 Mar 12. 2023

과연 영웅은 누가 만드는 것인가?

영화 <어떤 영웅> 리뷰 

“가방을 찾으면 주인한테 돌려주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 교도소에 복역중이었다가 귀휴를 받은 남자는 양심의 가책을 받고 이를 행동에 옮긴다. 이 일로 한 순간 영웅이 되지만, 이내 큰 실수를 범해 나락에 빠지고 만다. 과연 그는 영웅이 되고 싶었던 것일까? 과연 영웅은 누가 만드는 것인가? 


▲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촬영 때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의 모습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은 매 작품마다 ‘도덕과 윤리에 관한 딜레마’를 안겨준다. 치매인 아버지를 침대에 묶고 외출을 한 가정부는 죄가 있는지(<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아내를 습격한 범인에게 모욕과 경멸감을 주려는 사회 편견덩어리 남편의 행동이 옳은 것인지(<세일즈맨>), 딸이 납치된 후, 가족이란 관계가 망가진 건 누구의 잘못인지(<누구나 아는 비밀>) 관객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사건과 관련 인물들을 보며 명확한 판단과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할 수 있는 건 한 숨을 내쉬는 것 뿐이다. 


답답함을 안기는 데 장인인것 같은 이 감독의 놀라운 점은 딜레마를 전하는 빌드업이 촘촘하다는 데 있다. 겹겹이 쌓이는 사소한 사건을 펼쳐놓는 것에 그치지 않는 감독은 그 안에 저마다 사연 있는 인물들을 엮어 이야기를 진전시킨다. 거기에 계급, 종교, 차별 등 이란 사회의 문제를 담고 확장한다. 자칫 사회 비판적 시선으로 드라마적인 이야기가 함몰되지 않을까 걱정하지만 안전하게 보편성을 유지하며 공감대를 형성한다. 그래서 영화가 인간적이고, 극 중 인물들이 당면한 딜레마를 쉬이 넘어가지 못한다.  


▲ 라힘은 말더듬이 아들과 함께 살고 싶은 마음에 영웅이 되기로 결심한다.  /  영화사 진진 제공


그런 의미에서 도 남일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혼 후 아들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고 싶은 라힘(아미르 자디디)은 빚을 갚지 않아 수감 중이다. 힘들게 귀휴를 받은 그는 여자친구가 주운 금화를 팔아 보석금을 내려다 이내 주인에게 돌려준다. 돌려주는 이유는 낮은 금 시세 때문. 보석금에 못미치는 돈을 받는 것보다 주인을 찾아줘 착한 일을 빌미 삼아 수감일을 줄이겠다는 심산이었던 셈아더. 그래서 돈 주인에게 알려줄 전화번호도 자신의 핸드폰 번호가 아닌 교도소 직통 번호였다. 그 전화로 돈 주인에게 전화가 오고, 라힘은 그가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영웅 대접을 받는다. 


▲ 미디어와 재단 관계자는 하루 아침에 영웅이 된 라힘이 아닌 그의 이미지를 활용하는 데 집중한다. / 영화사 진진 제공


‘라힘은 영웅인가?’ 라는 질문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선의를 무시할 수 없다. 하루 빨리 고모집에서 외롭게 지내는 말더듬이 아들과 함께 살고 싶었기 때문에 이 일을 벌였다는 걸 알게 되면 그를 쉽게 내치지 못한다. 그가 영웅 대접을 받는 것 또한 돈을 모을 수 있고, 직장을 구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라힘의 속사정을 통해 그가 행한 일들이 이해되는 순간, 관객은 이 질문에 도착한다. ‘그럼 영웅은 누가 만드는 것인가?’ 그 질문에 답하는 듯 감독은 ‘라힘을 이용해 이미지를 쇄신하려는 교도소장, 특종이라 생각하며 몰려드는 미디어, 선한영향력을 보여주고자 라힘을 위한 모금행사를 여는 자선단체 등 ‘영웅’이란 이미지를 이용하는 이들을 보여준다. 특히 말더듬이 아들이 미디어에 등장하거나 자선 기부 행사 무대에 서서 말을 하는 장면을 통해 영웅은 나타나는 게 아닌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 하루 아침에 영웅이 됐다가 하루 아침에 나락에 빠진 라힘의 인생 / 영화사 진진 제공


문제는 라힘의 추락에 이들 모두 책임이 있지만, 그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지 못하는 것에 있다. 라힘 또한 이들의 행동에 담긴 의미를 알고도 자신의 이득을 위해 용인했기 때문이다. 책임 소재를 묻기에 너무나 얽혀있는 관계라는 점에서 그가 거짓말로 인해 이미지가 실추된 이후 이들은 하나둘씩 발을 빼고, 잘못을 그에게 돌린다. (불순한 의도가 담겼을지언정) 선행에도 이익에 반하는 순간 바로 외면하는 주변인들의 모습은 사회적 약자를 보듬어주지 못하는 사회의 이면을 넌지시 드러낸다. 여기에 전처와 장인간의 이야기, 금화를 가져간 묘령의 여인의 비밀, 복잡한 절차와 증거를 요구하는 행정 공무원과의 대립 등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엮어지면서 라힘의 추락은 그 속도감을 낸다. 


이런 상황속에서 라힘의 마지막 선택은 인간으로서,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지켜야 하는 윤리와 도덕적 행동을 수행한다. 그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다수의 기억에서 잊혀진 ‘어떤 영웅’이 아닌 단 한 사람의 기억속에 남는 ‘진짜 영웅’이 된다. 그 대가가 그와 그의 가족에겐 크지만, 명예를 지키는 것에 만족하며 쓸쓸히 퇴장한다. 


▲ 홀로 쓸쓸히 교도소에 수감중인 라힘 / 영화사 진진 제공


분명, 라힘은 ‘영웅’이 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 순간 잃었던 행복을 다시 찾고 싶은 마음 뿐이었겠지.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흘러가는 세상을 바라보며 가장 답답했던 건 라힘 아닐까. 선의와 양심을 지키는 게 소용없는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이건 이란 사회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별점: ★★★★(4.0)

한줄평: 영웅은 나타나는 게 아닌 만들어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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