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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또비됴 Mar 05. 2023

<타르>가 클래식한 유니버설 픽쳐스 로고를 사용한 이유

영화 <TAR 타르> 리뷰

불이 꺼지고 곧이어 영화가 시작되었다. 첫 장면부터 ‘어!’ 하는 소리가 나왔다. 말문이 막힐 정도로 기가 막힌 장면이 나왔냐고? 아니, 올해 개봉한 영화임에도 그에 걸맞지 않게 ‘클래식’한 유니버설 픽쳐스 로고가 보여서 였다. (추측컨데 1960년대 판인 듯) 레트로가 유행이라서 무작정 따라한거라 생각했다가 바로 접었다. 케이트 블란쳇 주연, 토드 필드 감독이 연출했는데, 이 단순한 이유로 로고를 변경했을까? 그렇다면 <TAR 타르>에서는 왜 이 로고를 사용했을까?



| ‘클래식’을 향한 감독의 빅픽쳐?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리디아 타르(케이트 블란쳇) ⓒ 유니버설 픽쳐스


로고에 관한 의문은 이 영화가 어떤 이야기를 담았는지 알면 풀린다. <TAR 타르>는 클래식 음악에 관한 작품이자 현시점에서 바라보는 예술과 권력을 다룬다. 클래식 음악이 주요 소재이니 깔맞춤의 의미로 클래식한 로고가 쓰인 듯하지만, 단순히 ‘클래식’이란 공통분모만으로 사용한 것은 아닐 터. 감독은 클래식이라고 해서 다 좋은 것이냐는 의문을 지닌 채 예술영역에서 클래식이 가진 권력을 탐구한다. 영화도 예술의 한 영역으로서 그 의미를 부각하기 위해 이 로고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제목이자 주인공의 이름인 ‘타르(TAR)’ 또한 ‘예술(ART)’이란 단어의 변주로서 이를 다르게 보고 뒤집어 보자는 감독의 생각이 투영되었다.   


영화 제목이기도 한 이 인물은 누구이길래, 로고까지 변주하게 만든 걸까? 그 주인공은 바로 리디아 타르(케이트 블란쳇)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첫 여성 상임 지휘자 역임, 여성 음악인들을 위해 ‘아코디언’이란 재단을 설립한 그녀는 커밍아웃한 레즈비언으로 단란한 가정을 이루며 남부럽지 않게 살아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제자 중 한 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 후, 그녀의 삶에 균열이 생기고, 자신이 갖고 있던 권력의 힘도 점차 약해진다.  


마에스트로라고 불리고 싶다 말하는 초반 인터뷰 장면 ⓒ 유니버설 픽쳐스


<TRA 타르>는 여성 지휘자로서 성공하기까지의 삶이 아닌 성공한 이후 나락으로 떨어지는 삶을 그린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정상의 자리에서 가진 권력으로 인해 자신의 인생을 망치는 이야기인 셈이다. 클래식 음악처럼 오랜 시간 동안 견고하게 쌓은 예술 영역일수록 무대 안과 밖의 보이지 않는 권력은 생각보다 크다. 타르만 봐도 알 수 있는데,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를 얻은 그녀는 성(sex)을 지우고 과거 거장으로 불린 클래식한 남성 권력자들이 되려고 노력하며 사고한다. 그가 과거 거장이었던 노 교수에게 선의를 베푸는 장면, 초반 인터뷰 장면에서 ‘마에스트라’가 아닌 ‘마에스토로’라고 불리고 싶다고 말하는 장면은 이를 잘 나타낸다.  



| 도덕적으로 타락한 예술가, 그의 예술은 추앙받아 마땅한가?

녹음을 앞둔 말러 교향곡 5번 연주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타르 ⓒ 유니버설 픽쳐스


일에 관해 무한한 권력을 지닌 타르는 자신의 이점을 충분히 활용해 살아간다. 그녀가 원하는  바를 이끌어내려는 방법으로 주변인들을 감언이설로 교묘하게 조종하며, 불륜도 서슴지 않는다. 이처럼 영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타르의 인간적 결함과 도덕적 타락을 보여준다. 그리고 녹음을 앞둔 말러 5번 교향곡 연주 완성도를 위해 한 음 한 음 지적하고 온 힘을 다해 지휘하는 예술가적 모습도 비춘다.


그녀의 양면성을 보여준 감독은 도덕적으로 타락한 예술가의 (음악을 포함한) 예술을 어떻게 바라보겠는가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그중 하나가 10분이 넘는 롱테이크로 유명한 타르의 줄리아드 마스터 클래스 장면이다. 음악의 아버지 바흐와 그의 음악을 놓고 타르와 한 남학생이 첨예하게 대립한다. 남학생은 여성 혐오적인 삶을 산 바흐의 음악이 싫다고 말했고, 타르는 음악가는 편견 없이 음악과 정면으로 마주 봐야 한다며 피아노로 거장의 아름다움을 설파한다. 하지만 이 학생의 곧은 심지를 꺽지 못했고 타르는 끝내 흥분하며 화를 표출한다. 이 장면에서 관객은 시대에 맞춰 예술을 바라보는 시선이 변화하고 있다는 점, 타르로 표현되는 클래식 음악은 그 시선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과거의 유산만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을 마주한다.


(위부터) 프란체스카(노에미 메를랑)와 올가(소피 카우어)는 타르와 클래식 음악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을 반영한다. ⓒ 유니버설 픽쳐스


시선 변화는 타르 곁에 있는 두 여성 프란체스카(노에미 메를랑)와 올가(소피 카우어)를 통해 이어간다. 아코디언 출신으로 타르의 모든 잡일을 맡아 해결하는 프란체스카는 성추문 등 타르의 이면을 알고 있음에도 권력자의 눈 밖에 날까 두려워 이를 묵인하고 그녀를 도와준다. 예술가의 도덕성과 예술을 따로 떼놓고 보는 과거의 시선을 대변하듯 말이다. 이와 반대로 신입 부원인 올가는 타르의 애정과 수혜에 따른 대가를 내놓거나 눈치를 보지 않는다. 극 중 솔로 연주의 기회는 특혜라 생각하지 않고 모두 자신의 능력으로 만들어 낸 결과물이라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꼭 함께 밥을 먹거나 일 외적으로 대화나 교감을 나누지 않는다.


이들의 시선은 스마트폰 화면과 메시지를 통해 재차 확인된다. 프란체스카는 거장이 묵었던 호텔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며 지인에게 감탄의 메시지를 보내고, 올가는 비행기에서 자는 타르(혹은 예술)를 촬영하며 친구와 나누는 대화 메시지에 농담 소재로 활용한다. 이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예술이 가진 권력은 붕괴되고 있고, 새로운 시각으로 재평가 받는다고 말하는 셈이다.



| 청각 과민증인 지휘자가 못 느끼는 나락의 소리


아침 러닝 시 의문의 비명소리를 듣는 타르 ⓒ 유니버설 픽쳐스


극 중 말러 교향곡 5번은 온전히 연주되지 않는다. 완벽한 연주를 위해 리허설을 거치고 조율해 나가는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연주되는 게 다다. 관객에게는 이 찰나의 순간 들리는 연주 음악에 감탄을 표하겠지만 정작 타르에게는 소음이나 마찬가지다.


이 영화에서 ‘소리’(또는 소음)는 타르의 삶이 점차 붕괴되어가고 있는 것을 묘사하는데 적극적으로 사용된다. 청각 과민증인 타르는 아주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다. 매일 잠을 설칠 정도다. 강박에 가까운 그녀의 행동은 일에서만큼은 전문가다운 모습으로 비춰지지만, 일상생활에서는 비정상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메트로놈 소리부터 시작해 아침 러닝 시 들리는 비명, 작업실 건물에서 새어 나오는 의문의 소리 등 이곳저곳에서 미치도록 들린다.


심연의 마음 속에 자리 잡은 두려움과 불안감, 그리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타르 ⓒ 유니버설 픽쳐스


아이러니 한 건 교향곡 연습 중에는 작은 음 이탈을 잡아내는 데 선수지만 정작 일상에서는 이 소음의 진원지를 찾아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는 소음이 그녀 내면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성추문 등 도덕적 결함이 밝혀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제자의 죽음을 방치한 죄책감, 언제든 왕좌에서 내려올지 모른다는 불안감 등이 협연을 이뤄 그녀를 괴롭히고, 이는 의문의 소음으로 들린다. 어쩌면 그녀 자신이 나락의 시그널을 계속해서 보냈다고 볼 수 있다. 이를 외면한 건 그녀 자신이다. 결국 옆집 할머니가 죽은 후, 새로운 집주인이 방문했을 때 자신이 소음의 근원이었다고 알게 된다. 중요한 건 자기 삶이 붕괴된 후 비로소 인지했다는 점이다.



| 케이트 블란쳇, 연기의 마에스트로!


자신의 이름을 지운 채 158분 동안 리디아 타르로 살아 숨쉬는 케이트 블란쳇 ⓒ 유니버설 픽쳐스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를 빼놓고 이 영화를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리디아 타르로 빙의 된 것처럼 그녀는 2시간 30분 동안 리디아 타르로 보였다. 실존 인물이 아님에도 어디선가 살아있을 그 누군가로 표현했다.


“관객들이 이 경험과 교감할 수 있도록 빠져들게 만드는 지점을 찾는 게 어려웠다”고 말할 정도로 타르를 준비하면서 케이트 블란쳇이 가진 고민 중 하나는 관객들과의 공감 포인트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 부분에서 지휘 연기, 독일어 구사, 수트 핏 등 기술적인 부분은 제외하고, 그녀의 연기가 탁월했다고 보이는 건 이 캐릭터를 비난의 시선만으로 볼 수 없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타르의 전사가 명확하게 나오지 않지만, 여성이자 레즈비언, 사회적 소수자로서 남성주의의 예술계에 들어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을 것 같은 이야기를 전한다. 그 과정에서 권력이란 괴물과 손을 잡고, 끝내 왕좌에 오르고, 이후 권력의 힘에 도취되고, 그 힘이 절대 영원하지 않다는 걸 깨닫는 등 캐이트 블란쳇은 타르를 통해 불완전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관객이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한다.


밑바닥까지 내려간 타르, 그 이후의 삶은 어떨까? ⓒ 유니버설 픽쳐스


특히 권력의 중앙에 있을 때보다 그가 고향 집에 돌아와 예전 번스타인이 출연한 VHS 테이프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 후반부 마시지숍 안에서 고개를 숙인 채 앉아있는 젊은 여성 중 자신을 응시한 5번 여성을 보고 토악질을 한 장면(아마 자기 손으로 마무리 못 한 말려 교향곡 5번이 생각났을 것 같다) 등 권력 바깥에 서 있는 타르를 연기할 때 빛을 발한다. 공허한 상태에서 회한과 후회, 자괴감 등 다양한 감정이 밀려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아내는 그녀의 연기는 불완전한 인간의 단면을 제대로 짚어낸다. 이 모든 걸 감내한 후 동남아시아 어느 도시 호텔방에서 온갖 소음을 막지 않고 창문을 열어젖혀 이를 받아들이는 뒷모습은 관객들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과연 이후 타르의 삶은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그리고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 정점은 과연 어디까지 갈 것인가?



덧붙이는 말


앞서 소개했듯 <TAR 타르>는 클래식한 유니버셜 픽쳐스 로고를 사용했다. 영화도 예술의 한 영역으로서 보이지 않는 권력에 대한 의미를 부각하기 위해 이 로고를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생각하며 이 글을 끝까지 읽었다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될 것 같다. <TAR 타르>에 등장한 권력형 성범죄, 미투 운동, 캔슬 컬쳐 등은 클래식 음악 분야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하비 와인스타인’ 사건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예술이란 영역 안에서 클래식이 존중받는 건 이를 직접 실행에 옮기는 1인의 위대함이 아닌 이를 순수하게 받아들이며 향유하는 사람들의 힘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예술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니면 그 누구의 것이 되어서도 안 된다.





별점: ★★★★(4.0)

음악도, 연기도, 권력도 모두 움직인다는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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