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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또비됴 Feb 27. 2023

신은 없다.
그렇다면 인간은 구원받을 수 있나?

영화 <더 웨일> 리뷰 

(이 글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신은 없다. 이 영화에서만큼은 그렇다. 그러하면 인간은 구원받을 수 있을까? 이 영화에서만큼은 그렇다. 아니 어쩌면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도~


소파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찰리(브랜든 프레이저) ⓒ 그린나래미디어㈜


몸무게 272kg, 혈압 234인 남자 찰리(브랜든 프레이저)는 오늘도 집 소파에 앉아 있다. 그가 하는 일이라고는 먹는 게 대부분이다. 대학 온라인 강의를 통해 에세이 쓰기를 가르치지만, 자신을 돌봐주는 간호사 리즈(홍 차우)가 사다 주는 음식이나 주방 서랍에 있는 초코바, 이곳저곳에 놓여 있는 김빠진 콜라, 전화로 주문한 피자 등 먹는 것에 열중한다. 마치 하루빨리 죽고 싶어 하는 것처럼. 계속 그를 괴롭힌 울혈성 심부전이 심해지던 어느 날, 찰리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딸 엘리(세이디 싱크)에게 연락 한다. 그리고 오랜만에 만난 딸에게 한 가지 제안을 던진다. 자신을 찾아와 에세이 한 편을 완성하면 전 재산을 주겠다고. 


<더 웨일>은 육체적, 정신적 가학을 자행하는 이들이 서로 부딪히고 갈등하며, 끝내 화해하는 이야기다. 주요 인물들이 그토록 자신을 가학하는 이유는 슬픔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그 슬픔과 화해하지 못해 남겨진 가슴 속 울분은 찰리에겐 몸무게로, 리즈에겐 육체적 노동으로, 엘리에겐 세상을 향한 반항으로 전이 된다. 


가장 오른쪽에 있는 사람이 각본가로 참여한 사무엘 D. 헌터 ⓒ 그린나래미디어㈜


영화의 원작인 연극과 이 작품의 시나리오를 직접 집필한 사무엘 D. 헌터는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처리되지 않은 슬픔이 찰리의 밑바닥에 깔려 있습니다. 그는 울혈성 심부전으로 고생하고 있지만, 그가 진짜로 힘든 이유는 자신이 가진 슬픔과 화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과거 학창 시절 고통의 나날을 보낸 작가는 음식과 건강하지 못한 관계를 맺었고, 이 경험을 토대로 만든 게 바로 이 연극이다. 그 또한 자신의 마음속에 침전됐던 슬픔과의 만남을 기피하던 찰나, 가슴 속 각혈을 쏟아내듯 이 작품을 만들며 화해했다. 이로써 그는 구원받았다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신의 믿음으로 마음의 평화를 얻고 구원을 받은 게 아니었기에 영화 속 캐릭터 또한 그 길을 함께 한다. 불완전한 이들이 서로 불편한 만남을 지속하는 건 응어리진 슬픔을 어떻게해서든 해소시키기 위해서다. 


(왼쪽부터) 엘리(세이디 싱크), 리즈(홍 차우), 토마스(타이 심킨스) ⓒ 그린나래미디어㈜


찰리는 사랑하는 남제자와 바람이 나 가정이 붕괴되었고, 사랑하는 연인 또한 죽음의 문턱에서 손 한 번 뻗지 못했다. 그는 자기 잘못으로 인해 생긴 슬픔과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해 폭식을 하고, 딸을 만나 화해를 위한 노력을 한다. 그 화해의 제스처를 받은 엘리는 자신을 버린 아빠에 대한 분노를 퍼붓지만, 채워지지 않는 그리움에 그 집을 계속 찾는다. 찰리의 연인의 여동생인 리즈는 오빠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을 덜고자 찰리가 원하는 음식을 공수하고 최소한의 케어를 한다. 불청객이자 찰리의 은인이기도 한 토마스(타이 삼킨스)도 자신이 생각하는 믿음의 방식을 증명하고자 찰리의 집 문을 두드린다. 


주요 캐릭터들이 이기적으로 볼 수 있겠지만 인간이기에 가능하고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슬픔이라 늪에 빠져나오고 싶은 마음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 선 찰리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엘리와의 화해에 집중하고 그 방법으로 에세이를 선택한다. 


ⓒ 그린나래미디어㈜


신 대신 에세이를 믿는 그는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써내는 에세이야말로 최고의 글이라 생각한다. 이를 증명하듯 어린 시절 엘리가 쓴 소설 ‘모비딕’ 독후감을 죽음의 순간에 듣고 싶은 글이라 말한다. 그만큼 기쁨이든 슬픔이든 자신의 삶을 오롯이 옮긴 글은 삶의 가치를 높이고, 때로는 구원의 빛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 찰리와 엘리의 용서와 화해 그리고 이어지는 기적 같은 구원의 빛은 슬프고도 아름다우며, 장엄하기까지 하다. 신에게 기도하는 게 아닌 나약하고 부족한 인간이 죽음을 앞두고 행하는 일련의 노력으로 구원의 길을 열었으니 그 자체가 기적인 셈. 스스로 한 발짝 움직이지 못하는 이 거구의 남자는 마침내 구원받는다. 홀로 차갑고 외로운 바다에서 살던 큰 고래가 마침내 수면위로 올라와 참고 참았던 거친 숨을 몰아쉬는 것처럼 그의 마지막 모습은 시원함과 애잔함이 느껴진다. 


이 감정을 오롯이 받는 이유 중 하나는 찰리 역의 브랜든 프레이저의 연기 덕분이다. 쉽지 않은 연기임에도 그가 이 역할을 토해내지 않고 멋지게 소화한 것은 인생의 정점에서 나락으로 떨어지고 한동안 벗어나기 힘든 심해 속에서 살아온 개인사의 영향이 있을 것이다. 관객으로서 브랜드 프레이저의 개인사가 찰리의 고난과 겹쳐보이는 건 당연지사. 어쩌면 '인생에 단 한 번 해낼 수 있는 연기'라는 포스터 카피가 마음에 와닿는다. (개인적으로 이 연기는 이제 더 이상 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제 꽃길만 걷길.)


영화 <더 레슬러>의 랜디(미키 루크)


추신: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이 작품을 보고 떠오르는 영화가 있을 것이다. 바로 <더 레슬러>다. 주인공은 퇴물 레슬러인 랜디(미키 루크) 인데, 가족을 버린 남자라는 점, 심장 이상이 생긴 것, 그리고 인생의 마지막 시점에서 상처만을 준 딸과 화해하려는 시도 등 비슷한 구조를 띤다. 다른 건 랜디는 결국 화해 하지 못했고, 찰리는 화해를 했다는 점이다. 감독은 딸(세상)과 화해하지 못하고 사각의 링에서 죽음을 맞이한 이 남자에게 미안했던 것일까? 어쩌면 찰리의 곁엔 랜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별점: ★★★★(4.0)


한줄평: 슬픔을 마주하는 용기 있는 자에게 구원이 있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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